연약해 보이는 존재가 가진 생명력
가장 연약해 보이는 존재가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봄이다.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나면 연둣빛 세상 태어난다. 사랑스러운 옐로 그린색이다.
그냥 초록색, 연두색보다 더 연하고 어린 노란빛 잎들. 그 잎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렌다. 따스한 봄바람과 푸른빛을 보면, '생명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초록색 중에서도 가장 연한 색인 노란빛 초록을 보며 사실은 가장 강한 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동안 땅 속에서 견디며, 추위를 견디고 싹을 띄운 대견한 친구들. 가장 연한 초록잎은 끝끝내 겨울을 이겨내고 피워낸 강한 생명력을 뜻했다.
때론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날을 맞이할 때가 있다. 언제쯤 이 겨울이 끝날까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아프고 시리던 시절.
나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관계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몰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친해져 온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으니까. 그 친구들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걸로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확실한 건 나의 취향이 일반적이진 않았다. 만화 보고, 그림 그리며 흔한 연예인에게도 관심 없었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 건지, 말을 건 다음 이어갈 말은 있는지, 막상 말을 시작했는데 어색해서 끝맺음을 못하면 어쩌지. 어쩌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관계의 시작이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 혼자에 익숙해지면 되는데, 또 그건 아닌 나 자신에게도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먹잇감이 되었다. 2학년때부터 3학년까지 당했던 한 사람으로부터의 괴롭힘. 겉으로 드러나는 괴롭힘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악의로 하는 행동과 말들. 동조하는 반 아이들. 혹은 모른 채 하는 아이들. 처음엔 내가 예민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나에게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냥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
그 시절은 그렇게 그냥 견뎌내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항상 내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누워 상상을 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 거대한 숲 속에 잠식되는 상상. 아무도 날 건들 수 없는 완벽하게 안전한 공간에 들어가는 상상. 그렇게 숲은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내가 강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강해지는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게 강해지는 건지 몰라서 나를 다치게 했었다. 그리고 깊은 숲 속으로 갔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세상을 강하게 사는 방법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그냥 더 이상 나를 다치게 하기보단, 나를 보호하기로 결정했을 뿐.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나를 잃지 않는 게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막 세상에 나온 잎사귀는 손만 데면 톡 떨어질 것 같은데 매서운 바람에도, 거센 비에도, 그 어느 잎보다 끊질 기에 참 잘 붙어 있다. 가장 여린 연둣빛 잎을 보며 깨닫는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존재가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여전히 강하지 못한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오늘도 이렇게 가장 여린 잎을 가장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피워낸 나무에게 경이로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