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n
내 우울함이 / 정녕 어느 누구에게 전해진다 해도 / 그 쓸쓸함은 남아 / 누누이 위안의 힘이 되는 것이므로, // 나는, / 어둠의 길이 환해질 때까지 / 달빛 기우는 / 새벽으로 서 있어야 한다.
박종영 [새벽의 노래] 中
고요한 밤. 아직 잠들지 않은 희미한 불빛들이 깜빡거린다. 날짜는 넘어갔지만, 아직 마음은 채 오늘로 넘어오지 않은 그런 시간. 사각사각 샤프펜슬의 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의 합주를 들으며 조용히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을 수 있는 시간, 새벽 한 시 무렵의 그 시간이 나는 좋다.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잠에 들지 않는 밤. 늦게 자면 키 안 큰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일까, 나는 다 커서도 청개구리 같다. 덕분에 내 키는 그리 큰 편이 아니지만 나는 그 이유가 오로지 늦게 잠들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 수많은 새벽마다 내 마음의 키를 키웠다고 치자.
새벽은 신비한 힘이 있다.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데려와, 책상 앞에 앉히고 스스로와 대면할 시간을 준다. 하루 중에서 가장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매일을 새벽에 기록해놓고선 다음날 잊어버리곤 한다. 이렇게 새벽은 내게, 비망록의 반대되는 역할을 한다.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감정의 응어리를 담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 금방 잊는다. 사람을 대할 때는, 응어리를 마주하며 대하는 것보다는 사람으로 대하는 게 더 깔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그런 감정들은 어딘가 치워두지 않으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해서 감정의 근육통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새벽은 나와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해왔다. 대학에 입학해서 목표 없이 놀기만 하다가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숙사로 돌아와 한참을 울던 그날도, 시험 전날 초조함과 불안함 속에 밤을 새우며 공부하던 그날도, 입대 전날 막연함과 아쉬움에 잠이 오지 않던 그날도, 새벽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한참을 끝없는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 출구 없는 터널 속을 헤맬 때, 새벽은 조용히 내게 물었다. 너, 지금 잘하고 있냐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이 대신 답했다. 누구보다도 잘하고 있다고. 당신의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고. 새벽은 그렇게 내가 기쁘던 슬프던 상관없이, 언제나 다음날을 내게 보내주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슬프고 서운한 일들이 있었다면 나는 그 감정들을 새벽 속에 담아둔다. 기쁘거나 즐거운 일들 또한 마찬가지로 담아둔다. 다음 날에 찾아올 새로운 감정을 위해 나를 비워둔다. 미처 나누지 못한 말들은 새벽이 다시 찾아오면 회한을 풀기로 약속하자. 솔직하게, 또 덤덤하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새벽은 내 모든 투정을 묵묵히 받아줄 테니까. 새벽은, 내게 그저 새벽으로 존재하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