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언어는 참 섬세하다. 같은 단어를 뱉더라도 그 말을 뱉는 장소, 사람, 분위기의 조합에 따라 그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마치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조미료 한 스푼 덜 넣고 더 넣었을 뿐인데 맛도 향기도 달라지곤 한다. 이 세상에는 글과 말만으로도 먹고사는 사람도 있을 만큼, 언어의 힘은 강력하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당시에는 별 것 아닌 말 같았지만, 한참을 걷고 나서야 생각나는 말들이 있다. 나는 이런 뒤끝 있는 말들을 좋아한다. 밥 먹을 때 음식을 꼭꼭 씹어먹듯이, 나는 이런 말들을 곱씹으며 내가 살아있음을 체감한다. 영양가 있는 말들은 길이와는 관계없이 그 깊이만으로 내 인생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취미로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던 이유도, 미숙한 솜씨로나마 남들에게 맛있는 말 한 그릇을 대접하고, 그로 인해 인생을 곱씹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체험을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같은 일종의 릴레이 운동을 시작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단순히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늘어놓는다고 해도,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들이 그러했듯이 문장에서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작가들만이 가지고 있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붙이면 문장이 살아 움직이는 마법의 풀이라도 있는 건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비밀에 관해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수 십 번을 고치게 되는데, 그 문장이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는 그 문장을 쓰기 위해 지워져야만 했던 모든 문장들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임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내 생각들과 마주할 용기, 그리고 내 생각이라고 당당하게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용기.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써놓은 글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묘한 각오조차 생기고 말았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나라는 세계에 흐트러져 있는 것들 중 몇 가지를 잘 추슬러 내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언제나 남에게 나를 내보이는 것은 부끄럽고 또 조심스럽다. 그러나 내 글에게는 부끄럽지 않아야겠다고 항상 다짐한다.
애석하게도 글이란 것은 쓰인다고 해서 모두 읽히거나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읽히지 않은 글은 쓸모가 없느냐, 나는 아니라고 답해주고 싶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 어차피 죽는 삶, 뭣하러 살아가냐고 묻는다면 그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라고 답하겠다. 그러므로 나에게 글이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아가는 여행 중에 남긴 흔적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의 모든 행동들이 그렇다. 지금 당장은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일지라도, 저 멀리에서 내가 남긴 인생의 궤적을 바라보고자 하면 하나의 멋진 그림이 완성되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 그림이 외계인이 남긴 미스터리 서클과도 같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한 획씩 그어나가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테니까.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거짓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니까.
내게도 바람이 하나 있다. 선선하고 화창한 가을 날씨처럼, 내 글이 만나는 모든 것들에게 기분 좋은 울림을 주는 것. 차지 않을 정도로 시나브로 스쳐가는 것.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좋으니, 그대에게 있어 어떤 날의 기분 좋은 바람 정도였으면 한다. 나를 키운 것 또한 팔 할이 누군가의 바람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