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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섬 Jan 30. 2020

버스 타기

Riding a bus

인생을 살다 보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천리만리 같은데, 우리의 앞길을 멈추는 선택지는 너무나도 많다. 나는 이와 같은 상황이 버스 타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애매한 집안 형편과, 집부터 학교 사이의 거리 덕에 대학생활의 대부분 동안 통학생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예 멀기라도 하면 눈 딱 감고 학자금 대출을 해서라도 자취를 했을 텐데, 한 시간 반의 거리는 아주 멀다기도, 반대로 아주 가깝다기도 하기 참 뭐했다. 이런 애매한 거리만큼 내 대부분의 대학생활 또한 두리뭉실했다.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고 싶었던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결국 비중 있는(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연에 그친 채, 나의 대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던 기간이 지나버린 느낌이었다. 그 기간이 지난 이후론 뭐, 구름처럼 여기저기 가고 싶은 대로 한참을 공중에서 떠돌았던 것 같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샜지만, 결국 내가 장장 3년 이상의 기간을 왕복 3시간씩 통학하며 가장 확실하게 몸에 새긴 사실은 다음과 같다.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 타야 하는 버스를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도착시간이 버스 때문에 지연된 시간보다 배로 늦어진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통학판 '나비효과'인 셈이다. 아침 수업에 가기 위해 출근시간의 버스에 올라탈 때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보통 아침 9시 수업에 가기 위해서 나는 집에서 늦어도 6시 40분에는 나서곤 했는데, 가장 처음으로 타는 버스를 타냐 놓치냐에 따라서 도착 시간이 8시 10분에서 8시 50분까지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버스 한 번의 시간은 지하철 한 번을 놓치게 하고, 놓친 지하철 한 번 동안의 시간이 다시 학교 앞 역에서 스쿨버스 앞에 긴 줄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좁은 지하철 속,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나는 출근시간마다 우리나라의 인구밀집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나. 수많은 인생들 속에 한 줌 실낱같이 보이는 나. 이 지옥 같은 출근길은 내가 겪는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루의 시작을 서두르지 않으면 딱 버스 하나 정도의 간격으로 그날의 기분과, 어쩌면 그날의 전부가 달려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더 치열하고 아니고로 따위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모두의 삶은 각자의 시선에서 치열하다.


우리 인생도 결국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도착지를 향해 나서는 길이라고, 나는 넌지시 생각한다

우리를 어렵게 하는 문제는 도착지점이 아닌 방향이다.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이 방향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이것이야말로 핵심이다. 방향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순서의 문제다. 맞는 방향만을 고민한다면 평생을 헤매게 된다. 

확신이 없는 방향은 철자 하나 차이로 방향이 아닌 방황이 된다. 

내 발걸음에 먼저 확신을 싣자. 어디에 도착하든 좋다. 

내가 나아가는 길에 대한 확신은, 결국 내가 도착하고자 하는 지점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만든다. 

어디에 도착하든 간에 그대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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