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은 후암동이다.
미세먼지가 절정을 이루던 11월의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함께 후암동을 찾았다.
서울역을 등지고 남산 아래에 위치한 이 동네는 빌딩 숲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도착할 수 있다.
도로와 맞닿은 골목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후암동.
후암주방을 방문하기 위해 찾은 후암동,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시간을 기록한다.
가장 먼저 후암주방을 찾았다. 요즘 뜨고 있는 공유 주방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꽤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후암주방 주변을 둘러보면 이곳이 후암동에서 나름 핫한 위치임을 알 수 있다. 후암주방 바로 옆에 후암시장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근처에 마트가 모여 있어 장보기도 편하다. 공유 주방을 이용하기 좋은 주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후암주방은 후암동 일대의 오래된 집을 기록하는 마을 아카이빙 활동으로 시작됐다. 작은 원룸이나 고시원에 살아서 연인, 친구를 초대해 요리와 식사를 맘 편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거 여건의 대안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후암주방은 처음 봤을 때 '모르면 그냥 지나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 집의 외관을 잘 살려두었다.
문을 열고 후암주방 내부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아늑한 공간에 놀라고 아담한 공간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후암주방 냉장고에는 이전에 주방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식재료가 있다. 남은 식재료는 다음에 올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는데 식재료를 남기고 가는 사람이 언제 남기고 간 재료인지 일지에 적어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전 사용자들이 남기고 간 식재료와 근처 시장에서 산 재료를 더해 요리를 만들었다.
함께 후암주방을 찾은 직장 동료 중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 일일 셰프가 되기로 했다.
후암주방에는 다양한 식기구들이 구비돼 있어 식재료만 준비하면 된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면을 삶기 시작하면 작은 주방은 온기로 가득 찬다.
완성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다음에는 누구와 함께 올지 행복한 상상을 했다.
좋은 사람들, 맛있는 음식, 분위기 있는 공간, 이 모든 것들을 후암동에 있는 작은 공유 주방에서 발견했다.
후암주방에서 요리할 음식의 식재료 구매를 위해 후암시장을 찾았다.
후암주방 바로 옆에 있는 식육점에서 고기를 샀는데 식육점 사장님이 후암주방에 왔냐고 물었다. 어떻게 바로 아시냐고 했더니 요즘 후암주방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게에 고기 사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이런 게 바로 상생, 골목상권을 살리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며 사장님이 예쁘게 자른 고기를 받았다.
후암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이른 시간에 방문해서인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더러 보였다. 사람들도, 가게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묻는 것마다 친절하게 답해주는 시장 상인들과 시장 한편에 떡하니 자리한 붉은색 고무대야(일명 고무다라이)가 반가웠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치 못한다고 고소한 떡 냄새에 이끌려 방앗간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각양각색의 떡. 구경만 하려 했는데 결국 후식으로 먹자며 떡 하나를 집었다. 떡 한팩에 2,500원. 반들반들하게 포장된 떡을 들고 한참이나 후암시장을 더 둘러봤다.
저렴한 가격의 먹거리가 가득한 후암시장. 믿을 수 없는 가격, 역시 시장 음식 가격을 따라 올 곳이 없다. 검은색 봉다리를 들고 후암시장의 이곳저곳을 꽤나 둘러본 후에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후암동은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아파트가 있고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진 주택들이 꽤나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후암동을 잠시 둘러보고자 후암주방을 빠져나와 목적지 없이 걷기 시작했다.
후암동 미주아파트를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서 오래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월을 따라 함께 나이 든 간판이 눈에 띄었다.
미주아파트를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눈에 띄는 집을 발견했다. 벗겨진 페인트칠이 세월의 흔적을 알게 해주는 곳. 담장 너머 빨랫줄에 걸린 하얀 셔츠가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길을 걷다 만난 세탁소. 붉은색 세탁이라는 두 글자가 자꾸만 눈에 담겼다. 세탁소에서 나오는 스팀도 세탁소 특유의 냄새도 모두 정겨웠던 시간. 오징어보쌈 식당을 지키고 있던 늠름한 멍멍이가 나를 자꾸만 뒤돌아 보게 만들었다.
강렬한 무언가는 없지만 소소하게 눈길을 끌었던 후암동 골목.
골목을 빠져나와 낙엽이 가득한 장소를 만났다.
단풍은 각자의 절정을 지나 낙엽이 됐다. 낙엽이 가득한 공간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들으려 한참이나 낙엽을 밟았다.
서울은 높은 건물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나도 후암주방에 방문하기 전까지 후암동에 대해 잘 몰랐다.
후암동은 오래된 것들로 가득하다. 빌딩 숲 뒤로 이어진 낮은 건물들이 그렇고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암동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낡은 골목과 아파트, 간판에 녹아있는 시간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후암동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후암동은 과거와 현재를 같이 걷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