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천재 무용가인 그녀가 매일 했다는 새벽 의식

by 김선준
Twyla Tharp2.jpg

미국의 현대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는 창조적 작업을 하려면 일정한 ‘시작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에서 그녀는 하루를 시작하는 자신의 의식을 소개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택시를 불러 뉴욕 퍼스트 애비뉴 91번가에 있는 헬스장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매일 아침 2시간 동안 스트레칭과 달리기를 한다.

그녀가 말하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녀의 시작 의식은 바로 택시를 타는 것이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나의 의식은 끝난다”라고 타프는 말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이런 의식을 해왔으며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헬스장에 가는 매우 간단하고 일상적인 행동이 어떻게 의식이 될 수 있느냐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이에 관해 타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걸음을 떼는 일은 힘들다. 매일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지친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아, 오늘은 정말 운동하기 싫은데’라고 생각하는 날이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의식에 부여한 반종교적인 힘 덕택에 다시 벌렁 누워 잠에 빠지는 일은 없다.”

- 트와일라 타프, 노진선 옮김,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 문예출판사, 2006년, 27쪽.


shutterstock_1221982132.jpg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차를 마시거나 신문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처럼 글쓰기에도 예열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것은 창조적인 동시에 자율적인 작업이다. 글을 쓸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선택이며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창조적인 동시에 자율적인 일은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그래서 물러서거나 미루거나 포기하기 쉽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의식, 즉 자동적이면서도 단호한 행동 방식을 정해둘 필요가 있다.


「불새」와 「봄의 제전」으로 유명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도 매일 아침 스튜디오에서 피아노로 바흐의 푸가를 연주했다. 그가 많은 곡 중에서 왜 하필 바흐의 푸가를 골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한다는 사실에서 그 행위가 일을 시작하는 의식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e505230ba2b14d12be18d0b4d9d20d7.jpg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로 꼽히는 『빌러비드』를 쓴 토니 모리슨은 “작가라면 누구나 뭔가와 접촉해서 자신이 통로가 되는 공간, 즉 창작 습관이라는 신비로운 과정을 시작하는 공간에 다가갈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글을 쓰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습관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도쿄 타워』를 쓴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의 제목과 결말을 모두 욕조에서 결정한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거의 매일 욕조에 몸을 담그고 길게 목욕하는 습관이 있다. 영화 「300」의 원작인 『불의 문』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매일 아침 호메로스 Homeros의 『오디세이』에서 가져온 ‘뮤즈를 부르는 기도문’을 진심을 담아 큰 소리로 외우며 글쓰기를 워밍업했다. 또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은 물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글쓰기를 시작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의식들을 과학적 근거나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효과가 있다면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서른 살 무렵 첫 책을 준비하며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정한 패턴을 만들었다(홍승완). 먼저, 큰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탄다. 그리고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집이든 회사든, 어디서나 늘 이렇게 했다. 이것이 글쓰기 엔진에 시동을 거는 나의 의식이다. 2시간 30분 동안 글을 쓰면서 커피를 두 잔 마신다. 이 책의 초판을 출간하고 지난 10년 사이에 나의 ‘글쓰기 의식’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마흔에 접어들며 담배를 끊어서 흡연은 의식에서 빠졌고, 여전히 커피를 선호하지만 이제는 커피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다만 커피나 차 같은 마실 게 없으면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 애를 먹는다. 내게 마실 것은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종소리와 같다.

나는 이 책의 개정판 작업을 하며 새로운 의식을 만들고 있다. 2017년 가을에 이사를 하며 새롭게 서재를 꾸렸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는 정면 벽에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들어 있는 글귀를 옮겨 적은 종이를 붙였다. 법정 스님의 친필 인쇄본으로 글귀의 내용은 이렇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나는 불교도가 아니지만 법정 스님을 ‘마음속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다. 무엇보다 글귀의 내용이 내가 지향하는 존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서재에서 내가 하는 일과 딱 맞아떨어진다. 서재에서 나는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쓴다. 이 모두는 내게 지적 여행이자 내면 탐험이며, 이를 통해 작은 나를 놓아버리고 진정한 내가 되고자 한다. 나는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이 글귀를 차 마시듯 천천히 읽고 음미하는데, 한 손에는 거의 늘 차나 커피를 담은 큰 머그잔이 들려 있다. 이 의식을 수행하며 내 존재의 지향점을 되새기고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shutterstock_1018241173.jpg "나는 이 책의 개정판 작업을 하며 새로운 의식을 만들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좋아하는 글귀를 묵상하고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에너지를 모은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여행 가는 마음으로 에너지를 모으고 컨디션이 떨어질 때는 탐험을 떠나는 각오로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어떤 행동이든 일단 의식으로 받아들이면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진다. 좋은 의식은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의식이 습관화되면 ‘내가 이 일을 왜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말끔히 사라진다. 또한 의식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생각할 여지도 없애준다.


글쓰기 엔진에 시동을 걸어주는 이런 의식들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어야 한다. 다른 누군가의 의식을 따라 하거나 남이 만들어준 것은 효과가 없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어야 한다.

둘째, 단순해야 한다. 시작 의식은 기도, 명상과 참선, 자기암시와 같이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어떤 행위든 실행에 옮기기 쉬워야 한다. 준비하기 너무 번거롭고 수행하기 어려운 의식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목욕하기, 연필 깎기, 아침 산책, 기도문 외기, 커피 내리기처럼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 엔진에 시동을 걸어주는 자신만의 의식을 만들어보자.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다.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시작 의식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시작할 준비를 마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글쓰기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의례의 기능이란 오로지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의 의미에 집중케 하는 것뿐이다.”

- 조지프 캠벨, 박중서 옮김,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년, 128쪽.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표지(입체).jpg

*구본형이 추천한 유일한 책 쓰기 필독서

*이 글은 <내 인생의 첫 책 쓰기>에서 발췌했습니다.


도서보러가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1206397&start=slayer

매거진의 이전글글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가장 소홀히 하는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