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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준 Aug 19. 2019

팀장이 막말해도 한마디도 못했던 그녀, 지금은?

진작 이렇게 생각할 걸 그랬어

당신은 솔직히 말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주고 있을 뿐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솔직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말에 꾸밈이 없을수록 담백하고 가식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고나 할까. 인터넷에서는 솔직한 발언일수록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을 수 있으며, 특히 정치인들은 이를 통해 요직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상처가 될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가 그런 사람에 대해 불편함을 표시해도 또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중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이 말은 날카롭게 해도 마음은 여려요”라든지 “솔직한 것이 위선보다 낫잖아요”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행동을 ‘결점보다 장점이 많다’며 미화한다. 또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반박하면 속이 좁아 보일까 봐 걱정되어 마음속으로는 피를 흘리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넘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모두가 이런 행동을 묵인한 채로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들은 솔직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이는 심지어 집단의 습관이나 문화가 되어 나중에는 가시 돋친 말에도 마비가 된 듯 정서적 학대를 받는 것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한번은 어느 수강생이 내 강의에 자신의 팀장을 초대했다. 그 수강생은 팀장이 강의를 들은 뒤 깨달음을 얻고 직장 내 분위기를 바꿔 매일 지옥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지 않아도 되길 바랐다. 

나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난 뒤 일부러 두 사람에게 다가가 팀장을 겨냥한 인사말을 건넸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강의 내용 중에 특별히 느끼신 부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팀장은 고압적인 자세로 말했다.

“글쎄요.”

그 순간, 나는 바로 맞받아치고 싶었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수강생의 얼굴을 보니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 차분히 말했다.

“그렇군요.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은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천만에요. 전 원래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바로 하고요.” 


다음 날, 수강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어젯밤에는 죄송했습니다. 저희 팀장님이 악의는 없으신데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모르세요.” 

솔직히 말해 수강생의 사과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관심이 있는 건 수강생이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자주 이런 조롱을 받느냐 하는 문제였다. 나는 슬쩍 떠보듯 수강생에게 물었다.

“팀장님이 그런 말투로 자주 이야기하시나요?” 

“늘 그렇죠, 뭐. 어제는 아주 사소한 경우인걸요. 예를 들어 평소에 제가 한 일이 마음에 안 드시면 ‘만약 네 교수님이 네가 이렇게 일하는 걸 아신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네가 자기 제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다’ 같은 말을 하세요.” 

“그럼 A 씨는 그런 팀장님의 말을 어떻게 생각해요?” 

“사실 팀장님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가끔은 직원들을 도와주시기도 하거든요.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시긴 하지만, 호의로 알려주시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호의로 알려주려고 한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식은땀이 났다. 이 수강생은 그동안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도록 공격을 받았기에 ‘호의’와 ‘악의’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사실 말을 솔직히 하는 것과 말에 가시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종종 ‘위협’을 ‘직접적’이란 말로 포장한다. 당신도 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두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물건을 왜 이렇게 자주 잃어버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니?” 

“텔레비전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다 눈멀고 싶니?” 

“이런 수준으로 S 대에 갔다니 우리나라에 진짜 인재가 없나 보다.”

“이런 발표 하나 제대로 못 하다니. 너 대학은 어떻게 들어갔어?”


이런 말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비판과 편견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설사 반격을 한다 해도 상대는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고 그래?”라고 말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세게 한 방 맞고도 아프다고 말도 못 하는 꼴이 아닌가. 

말에 가시가 돋친 사람은 칼집도 없이 칼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같다. 곁을 지나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도의를 따지려 하면 오히려 “잘 좀 보고 다녀!”라고 화를 내는 격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를 ‘위협’이 아니라 ‘직접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런 말들로 느끼게 되는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상처를 받았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상대의 행동이 직접적인 것뿐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말과 위협적인 말은 다르다.  

진정으로 솔직한 사람은 자기 생각과 기대를 명확히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따로 추측할 필요가 없다. 정말 솔직한 사람은 같은 의도라 해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네가 물건을 너무 자주 잃어버려서 걱정이야. 다음부터는 좀 더 잘 챙기는 게 어때?”

“텔레비전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나빠질 수 있어. 소파에 앉아서 보는 게 어떻겠니?” 

“이런 업무 능력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힘들겠지만, 좀 더 바짝 따라와야 할 것 같아. 그러지 않으면 금세 뒤처지고 말 거야.”

“발표가 내 기대에는 좀 못 미치네. 핵심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어.” 



이 말들을 보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지 훨씬 쉽게 이해되지 않는가? 앞의 예문과는 달리 내용 자체가 직접적이고 담백하다. 자신의 편견을 솔직함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책임을 ‘타인’에게 교묘하게 전가한다.

당신 주변에 남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뱉는 상처 주는 말에 솔직한 것뿐이라고 변호해주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의 행동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수록 자신을 계속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말로 당신을 화나게 하면 그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지 말고 보다 ‘직접적’으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라고 대꾸해주면 된다. 굳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지 않아도 상대는 당신의 이런 물음에 말문이 막힐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누군가가 반박하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대의 말문을 막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신의 마음에 뿌리내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팀장의 막말을 '그래도 사람이 악의는 없으니까'로 합리화하고 참기만 하던 A씨. 그녀도 결국은 팀장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했고, 그뒤 팀장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참는 건 언제나 답이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무시하면 남도 당신을 무시하고, 자신을 존중하면 남도 당신을 존중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고려할 줄 아는 속 깊은 사람이야말로 당신이 ‘직접적’으로 가까이 지내야 할 사람임을 명심하자. 그의 말에 다칠까 봐 겁내지 않아도 되는, 즉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자신감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존재한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참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등 90년생들을 위한 41가지 현실적인 인생 띵언


*이 글은 <진작 이렇게 생각할 걸 그랬어>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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