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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Nov 21. 2017

채근담 차인020, 여유를 두고 다하지 마라

일마다 약간의 여유를 두어 다하지 않는 뜻을 남긴다면

채근담, 前集_020. 여유를 두고 다하지 말라 

  

일마다 약간의 여유를 두어 다하지 않는 뜻을 남긴다면

조물주도 나를 꺼리지 못하고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모든 일에서 만족을 구하고

공이 반드시 가득하기를 바란다면

안으로부터 변고가 생기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바깥으로부터 근심을 부르게 된다. 

  

事事留個有餘不盡的意思,

사사유개유여부진적의사,

便造物不能忌我, 鬼神不能損我.

변조물불능기아, 귀신불능손아. 

若業必求滿,

약업필구만

功必求盈者,

공필구영자

不生內變,

불생내변

必召外憂.

필소외우

  

020.有餘不盡

020.유여부진


[차인 생각]  

차를 마시다가 끝물을 담가 두고 찻주전자를 재운다. 외출 후 목을 적시거나 새벽에 자리끼로 쓸 요량이다. 그러니 항상 어디를 다녀오면 찻주전자에 눈길이 머문다. 비워두었는지 담겨져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러나 왠만하면 충분히 우려 곧바로 찻주전자를 깨끗하게 비워두는 게 바람직하다. 비워내지 않고 찻주전자에 남겨져 뜻하지 않게 잊고 있다 열어보면 확인되는 게 있다. 녹차든 대용차든 좋은 차는 찻잎이 그대로 땡글땡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녹아내리듯 풀어지고 짓눌린 잎으로 쩔어 있는 차는 특별히 주의해서 사용한다. 일을 하면서 여유작작한 마음을 수양으로 삼으려 애쓴다.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욱 '여유' 하면서 단어를 떠올리며 지키자고 스스로에게 다그친다. 채근담의 가르침은 또한 얼마나 섬세한가. 여유를 가지고 그 일을 조금씩 남겨 두며 일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조물주나 귀신을 포함한 누군가가 나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최소한 나를 꺼리게 하여 사회생활을 불편하게 한다는 말이다. 일의 결과까지도 만족스러움을 향해 나아가지 말라고 한다.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워도 공이 완전하지 않아도 여유를 두고 남겨두라는 이치다. 뭘까, 어차피 일에서 멀어질 수 없을 바에야 그 일을 남겨 두어 서서히 애틋하게 음미하면서 오래도록 씹고 또 씹어 즐기라는 게다. 그러니까 쉬는 일도 한꺼번에 소진시키지 말고 남겨둘 일이다. 일도 쉼도 남겨서 즐기는 게다. 일을 하는 건지 쉬고 있는 건지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즐겁게 매사를 지닐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 내 안에서 아프던가, 바깥으로부터 근심이 찾아온다.  


2011년 9월 11일. 온형근(시인, 캘리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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