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걸쳐 놓아야 숨을 쉰다고 여긴다
끊임없이 일정을 메모하겠다고
디지털 달력도 모자라 다이어리까지 구비한다.
글씨로 끄적이는 게 좋아 매년 다이어리를 갖췄으나 한동안 쌓아두기만 하고 지니고 다니질 않았다.
나를 일정에 갇혀 살게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번개처럼 스치며 생각해 낸 것이
즉흥이었다.
그래 즉흥으로 산다.
갑자기 예고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뜻 가는 대로
약속 없이 다닐 곳이 얼마나 많던가.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기분 좋은 날은 그 기분 그대로 살려서
펼쳐 놓은 삶을 말기도 하고
거두어들이기도 하며
털어 내는 것도 자재로워야 한다.
즉흥의 삶은 그래서 찰나의 사고이다.
찰나는 목적을 상실한다.
꿰고 또 꿴 일정은 즉흥의 삶과 대척점에 선다.
목적은 없지만 방향이 있고
지향의 힘으로 동력을 가지는 게 즉흥이다.
꽉 찬 일정은 사람을 그 안에 가둔 채
뜻 모를 삶의 목적성만 확인해 줄 뿐이다.
방향을 놓친 분주함으로 화려하게 포장한다.
제 일정에 남의 일정을 포개기도 한다.
잠깐 나들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릴까.
이미 뻔하게 들여다 보이는데
차를 마실 때는 차만 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