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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Dec 22. 2017

일정이라고 쓰고 목적이라고 읽는다

여기저기 걸쳐 놓아야 숨을 쉰다고 여긴다

끊임없이 일정을 메모하겠다고

디지털 달력도 모자라 다이어리까지 구비한다.

글씨로 끄적이는 게 좋아 매년 다이어리를 갖췄으나 한동안 쌓아두기만 하고 지니고 다니질 않았다.

나를 일정에 갇혀 살게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번개처럼 스치며 생각해 낸 것이

즉흥이었다.

그래 즉흥으로 산다.

갑자기 예고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뜻 가는 대로

약속 없이 다닐 곳이 얼마나 많던가.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기분 좋은 날은 그 기분 그대로 살려서

펼쳐 놓은 삶을 말기도 하고

거두어들이기도 하며

털어 내는 것도 자재로워야 한다.

즉흥의 삶은 그래서 찰나의 사고이다.


찰나는 목적을 상실한다.

꿰고 또 꿴 일정은 즉흥의 삶과 대척점에 선다.

목적은 없지만 방향이 있고

지향의 힘으로 동력을 가지는 게 즉흥이다.  

꽉 찬 일정은 사람을 그 안에 가둔 채

뜻 모를 삶의 목적성만 확인해 줄 뿐이다.

방향을 놓친 분주함으로 화려하게 포장한다.

제 일정에 남의 일정을 포개기도 한다.


잠깐 나들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릴까.

이미 뻔하게 들여다 보이는데

차를 마실 때는 차만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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