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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Nov 12. 2015

덩굴손이 수줍다

생각의 크기로 담을 넘어서는 나무

가을 붉은 단풍과 영롱한 흑청색 열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남쪽 현관의 붉은 벽돌에는 내가 심은 담쟁이덩굴이 무성하다. 원래 현관 양쪽을 같이 식재하였는데, 한쪽만 잘 자라고 있다. 줄기에 흡반이 있어 시멘트 블록이나 벽돌, 암석 등에 잘 달라 붙어 면을 덮는 효과가 크다. 잎은 세 부분으로 갈라지고 윤채가 난다. 가을 붉은 단풍과 영롱한 흑청색 열매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도시의 삭막한 벽면 녹화에 담쟁이덩굴은 크게 기여한다. 담쟁이덩굴을 벽면 식재로 사용하면 건물 복사열을 낮추게 하는데 효과가 크다. 특히 담쟁이덩굴의 열매는 야생 조류의 먹이로 훌륭하다. 물론 다람쥐의 먹이감으로도 좋아 사람에게 심리적 편안함과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현관 옆 의자 앉아 있다 보면 다람쥐나 새들이 연신 바쁘게 들락거린다. 먹이감이 있으니 사람도 신경 쓰이지 않나보다. 새는 거침없이 행보하고, 다람취는 노골적으로 과감한 눈치보기를 한다.

담쟁이덩굴은 건물의 벽면에 착생시켜 장식과 차폐용으로 이용한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현관의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린다.

꽃가루받이 없이 처녀생식으로 종자를 생산한다


담쟁이덩굴의 학명을 보면, 속명의 파르테노치수스Parthenochssus는 그리스어그리의 처녀(parthenos)와 덩굴(kissos)의 합성어다. 담쟁이덩굴은 꽃가루받이(pollination, 受粉) 없이 종자를 생산할 수 있다. 담쟁이덩굴의 처녀생식의 특성이다. 여기서 속명이 유래한 것이다. 종소명의 트리쿠스피다타tricuspidata는 잎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에서 유래한 라틴어다. 담쟁이덩굴의 특징을 학명에서 절반 이상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담쟁이덩굴은 전통민속마을 답사 때 자주 만난다. 강원 고성의 왕곡마을, 아산 외암마을,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심지어는 제주의 성읍 민속마을까지 두루 답사를 다닌 셈이다. 하회, 양동은 주제가 바뀌면서 반복 답사지로 몇 차례 더 찾았다. 가까운 외암도 자주 들린 셈이다. 마을마다 흙담이 있고, 돌담이 있었다. 담장마다 담쟁이덩굴이 감아 오른다. 마치 전통 민속 마을의 매뉴얼처럼 그렇게 담쟁이덩굴은 담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보스턴 아이비와 송악


담쟁이덩굴의 영어 이름은 보스턴 아이비Boston ivy이다. 실제로 미국의 보스턴이나 뉴욕 등지에 담쟁이덩굴이 많이 있다. 미국담쟁이덩굴Parthenocissus quinquefolia이다. 오 헨리의 소설『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잎새가 그것이다. 보스턴 아이비라는 이름으로 헷갈릴 수가 있다. 보스턴 아이비는 낙엽성인 담쟁이덩굴을 말한다. 담쟁이덩굴은 줄기에서 흡착판이 나오고, 미국담쟁이덩굴은 줄기에서 흡착판이 나오지 않는 점이 다르다. 보통 아이비(ivy)라고 부르면 상록성을 말한다. 상록인 아이비를 우리는 송악이라고 부른다. 송악Hedera rhombea은  헤데라 종류이다. 담쟁이덩굴과 송악은 속이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 송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 있다. 고창 삼인리 선운사 입구다. 개울 건너편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올라가면서 자라고 있다. 고창 삼인리는 송악이 내륙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에 가까우므로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1991년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꽃은 연한 황록색으로 꿀 향기가 난다


담쟁이덩굴은 바위나 나무줄기에 붙어 산다. 집 안의 담장에도 식재하여 그 운치를 즐긴다. 담장에 붙어 자라는 덩굴성 식물이라는 뜻으로 담쟁이덩굴이라고 부른다. 덩굴손은 갈라질 때, 끝에 문어의 흡반과 같은 지름 약 2.5밀리미터의 둥근 흡반이 생긴다. 이 흡반은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꽃은 연한 황록색이며 모여 핀다. 꿀 향기가 난다. 열매는 검은색 또는 흑자색으로 익으며 장과이다. 씨앗은 흑갈색이고 광택이 있다. 가을에 붉은색으로 단풍이 든다. 내음성이 매우 강한 음수이지만 강한 햇볕이 쪼이는 곳에서도 잘 자란다.

담쟁이덩굴의 잎은 긴 가지에서는 갈라지지 않지만, 짧은 가지의 잎은 3갈래로 가라지며 어떤 것은 3출엽인 것도 있다.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가 잎보다 길고 잔털이 나 있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공기뿌리가 발달한다. 그러나 어린 줄기는 적갈색이고 흡착판이 나와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간다. 담쟁이덩굴의 줄기를 꺾어 씹어보면 단맛이 난다. 설탕이 귀할 때 담쟁이덩굴을 진하게 달여 감미료로 썼다고 한다.

손바닥처럼 생긴 잎은 광택이 있어 생기가 넘친다. 초여름 작은 꽃이 잎겨드랑이에 달리지만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한 식물이라 다양한 약용으로 쓰인다


담쟁이덩굴은 초본이 아니라 목본이다. 따라서 수피가 발달하고 줄기도 굵어진다. 오래된 담쟁이덩굴의 줄기는 마디에서 기근을 낸다. 기근은 공기뿌리를 말한다. 담쟁이덩굴의 뿌리와 줄기를 지금地錦이라 불리는 약재로 쓴다. 어혈을 풀어주고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가라앉힌다고 한다. 『중국본초도감』에는 담쟁이덩굴의 뿌리와 줄기를 파산호爬山虎라는 생약명으로 부른다. 줄기의 채취와 제법으로 "잎이 떨어지기 전에 줄기를 채취하는데 연중 채취가 가능하며 잘라서 햇볕에 말린다." 하였다. .


담쟁이덩굴의 자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자라 있다

관심 밖으로 놓여 있다가 

빨갛게 가을을 수 놓을 때쯤 털커덕 눈에 잡힌다

그새 뜨거운 벽과 함께 익었던 

인내가 쏟아지는 듯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생각의 크기도 저렇듯 담을 넘어야 한다

경계에 머물렀는가 싶었는데 

이미 저만치 월담의 경지에서 환하게 웃는다

성큼 거리며 나아가진 않았지만 

어느새 가슴 뭉클하게 다가와 있다

아팠던 멍울자국들도 헤쳐 모이면 

서로를 풀어내며 손을 안아 준다

뜨거워 뱉어내기 어려웠던 말들이 담을 넘는다

언젠가는 꼭꼭 눌러 놓았던 속울음 꺼낼 수 있겠다

곱게 물들어가는 잎새 안으로 열매가 익고

아무도 모르게 기어오르던 덩굴손이 

제 얼굴만큼이나 발갛게 수줍다

낙엽이 진 후 벽에 남아 있는 줄기의 형태와 흑청색 열매의 모습이 멋지다.

담쟁이덩굴을 약으로 쓸 때에는 나무를 감고 올라간 것을 채취하여 써야 한다. 바위를 타고 올라간 것은 독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소나무나 참나무를 타고 올라 간 것을 채취하여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도시의 벽면 녹화에 사용되는 담쟁이덩굴


도시의 삭막한 벽면 녹화에 담쟁이덩굴은 크게 기여한다. 담쟁이덩굴로 도시의 벽면녹화를 위해 애쓴 사례가 있다. 강원도 고성군은 2010년에 국도와 지방도의 통신주, 방음벽, 전차 방호벽, 옹벽, 버스 승강장 등을 대상으로 담쟁이덩굴을 식재하였다. 이를 위해 담쟁이 씨앗을 구입(5㎏)하고, 4월 담쟁이 삽목을 하였고, 담쟁이덩굴 양묘장(991㎡)을 설치하여, 약 4개월간 생육한 담쟁이 2만2000본을 9월에 무상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대단한 추진력이다.  “담쟁이덩굴은 차량 등에서 발생된 탄소 흡수력이 뛰어나 지구온난화를 예방할 뿐 아니라 가을단풍 시 볼거리와 서정적인 멋을 제공해 정서함양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삭막한 콘크리트 옹벽과 블록 담장 등에 담쟁이를 심어 고성군 전 시가지가 푸르름과 아름다운 녹색망이 연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고 추진 배경을 말했다. 5년이 지난 고성의 도시 벽면 녹화 성공 여부를 알고 싶다. 겨울에 잎진 담쟁이덩굴을 보러 다녀올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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