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고자장구'를 떠올리며
정호, 히말라야 등정을 떠나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고요하게 4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였다. 그 와중에 통합 메신저로 공문이 하나 왔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무 이유없이, 저절로 눈길이 꽂힌다. 작년과 올해가 뭐가 다르지. 전혀 예측되지 않은 행태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예고없이 갑자기 시들해질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다가올 줄 몰랐다. 그렇게 시작된 게 명예퇴직의 출발이다.
오전에 문서가 날아왔다. 명퇴 수당 신청할 사람, 5/11(금)까지 작성하여 제출하라는 요지이다. 기한을 엄수하고, 첨부를 확인하라고 요청한다. 신청기간이 5/15-5/18, 4일간이다.
작성할 서류 모두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제출할 때까지는 집에 말하지 않았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고 애써 일의 긴급을 고쳐 먹었다. 이 일에서 저 일로 옮겨 가는 것을 무게나 질량을 매겨서, 더 나은 것이고, 못한 것이라고 따지거나, 고마워하거나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당연한 삶의 인식에서 저만치 떨어져야겠다는 절실함이 커졌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까. 이력서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게 아닌, 진정한 나를 위한 일을 찾아야 한다면, 심각하게 전격적으로 몸담고 매달려야 한다.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전문가가 되거나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서 전공과 연구 분야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고전과 전통에 대한 관점을 장점으로 살릴 수 있고, 가치를 추구하고 경험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나를 무시하고, 다음에는 나를 비웃고, 그 다음에는 나와 싸운다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시작일게다.
1차 지필평가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시험기간에 주무관들과 학교 정원수를 전정하기로 했다. 가이즈카향나무와 목련을 전정하였다. 사다리를 내려오다 마지막 칸인 줄 알고 내디딘 게, 한 칸 전이었었다. 휘청 갈지자로 떨어져 섰는데, 허리가 뜨끈한 게 이상했다.
요즘 들어 계속 엉치에서 종아리 쪽으로 척추관 협착 증세가 심해져, 걷다가 쪼그려 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잠시 쪼그렸는데, 이때마다 창피하니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뭔가를 읽는다. 갑자기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생각나서 출근길 언덕배기 아래에서 검색하였더니, 홈페이지에 석박사 후기 입학 공고가 있었다. 나중에 보니 3월 말에 모집요강을 공고한 것을 내가 2달 지나 본 것이다. 아무튼 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이끌렸다. 출근하자마자 자세히 보고 출력하여 검토한다. 명예퇴직하고 해야 할 일로 학업으로 먼저 정하기로 한다.
유웨이에서 원서접수를 완료하다. 그러고 나서 구비서류를 준비하여 완료하다.
척추관 협착 시술을 위해 입원하다. 입원하면서 어제 준비한 서류를 우체국에서 등기우편으로 보내라고 부탁해둔다. 5/10일 원서접수 마감을 지켜야 했다. 후에 작은 딸이 말한 '디스크 투혼'이라고 불린 내용이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서류제출 심사 통과자 홈페이지 게시 날이다. 조심스럽게 확인하였다. 일단 서류는 통과되었다. 다음은 전공 필답고사를 준비해야 한다.
전공 필답고사 시험을 치렀다.
전공 필답고사 합격자 발표에 들었다. 면접 및 구술고사가 남았다. 명예퇴직 원서 제출을 가족에게 알렸다.
면접 및 구술고사 날이다. 수험번호가 제일 빨라 1착으로 치르고 나왔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문화재조경 전공 최종 합격자에 들었다.
부여 은산면에서 사전투표를 한다. 이곳에 얻을 집은 모두 마땅치 않았다. 대동 황토방 아파트를 보고 구두 계약 후 올라온다.
지방선거일이다. 충남 김원장의 전화로 확인된 새로운 아파트를 보러 부여로 갔다. 결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후 올라오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격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맹자(孟子), '고자장구(告子章句)'"
자꾸 아프다. 누군가는 9 수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 스스로 몸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잘 할 줄도 모르는 일에 임하여 마치 전쟁터처럼 마주하였던 게 병폐였으리라. 봄만 되면 풀리지 않은 몸을 이끌고 데몬스트레이션 한다고 보이던 시범교육이 그 교육적 효과에 비해, 내 몸을 쉽게 망가트린 것이리라. 조금씩 삐끗 대고 엉키던 게 이때쯤 한꺼번에 자리 잡아 환우를 키웠던 것이다.
맹자의 고자장구에서 말하듯, 나 역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리 아픈 것이다. 어떤 사명을 새롭게 받아서 펼쳐야 하길래 이리 힘들까. 심지도 괴롭고, 근골도 아프며, 해야 할 것들이 자꾸 어긋난다. 그러니 순하게 치료를 받고 아프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어디 좀 걷기라도 자주 했으면 좋겠다. 이제 주변에서 명예퇴직 사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인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하나, 명퇴 이후의 내 삶의 방식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서경’에
“제때 건너지 않으면 배에 실린 물건은 썩고 말 것이다(弗濟 臭闕載)”
제때 건너야 할 사람은 제때 건너야 한다. 더 미련을 둘 수 없다. 해야 할 일을 다스리는 데에도 고요함이 필요하다. 한 시절을 마감하는 데, 완충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학업만큼 좋은 것도 없으리라. 시끄러움을 피하여 배움으로 침잠하는 시절을 중간에 두는 것은, 썩을 물건을 도려내는 일이다. 훗날, 이 시절의 결정이 참 잘 되었었다고 회상할 수 있으리라. 소소한 서재 만드는 과정에서 독립적이다. 누군가 서재 만들기에 동참하여 의견 분분하게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머리 속에 서재 구상으로 그득하다. 오늘 찾아온다는 친구들과도 건성일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