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정년 32년을 반추하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32년간 조경교육에 몸담으신 ㅇ선생님에 대한 인터뷰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올해 8월을 마지막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신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기한을 정해 놓고 근무한 적도 없지만, 언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따로 한 적은 없습니다. 근무하면서 시작하는 사람과 마치는 사람을 매년 보면서,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고, 그런 생각들이 어느 순간에 꽃을 피우고 열매 맺듯, 그렇게 가닥을 잡아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 가닥의 실처럼 가는 선들이 묶어지는 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묶어 놓을 때가 되었고, 묶여지는 순간에 다다른 것이겠지요. 그러니 남은 3년의 기간 또한 엄청난 의미를 가졌겠지만, 그 3년을 파기하는 것도 똑같이 엄청난 의미를 지녔겠지요. 정해 놓은 기간의 남은 3년과 새로 시작하는 기간의 시작의 3년이란 그렇게 서로 보완되면서 제 모습과 기능을 본질적으로 지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너무 익숙하여 사용하기 싫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그만두는 것이지, 쫀쫀하게 무슨 명예 운운하는 것은 성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명예는 무슨 명예‘, 거의 국가 유공자 수준의 교직 생활을 하였다는 생각에서 자유 의지, 주체적 생각을 강조하기 위하여 ’ 자유 정년‘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써놓고 보니 자유 정년보다는 ‘자유청년’이 더 와 닿더군요. 자유 의지와 주체적 삶을 견주고 이끄는 사람이니까 청년이고, 그 청년은 자유청년이라는 생각까지 사유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이끌며 살아가는 일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는 오래된 가치관이었으니까요. 눈치를 보고, 사정을 보면서 내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혹사시키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퇴임 이후의 일이 그러합니다. 주체적 삶의 일상을 이끌어가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보다 훨씬 자유스러운 주체적 삶이 가능해지겠지요. 그래서 그동안 문학과 고전과 전통 조경 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인문학적인 활로를 끊임없이 끄집어 내 왔습니다. 민속학에 대한 관심도 그중 하나였고, 고전에 대한 한문학적 접근 방법에 대한 모색도 그것이었지요. 이제 마침 문화재와 조경이 만나는 어떤 접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방황과 모색과 관심과 열정이 하나의 굵은 가닥으로 묶어 두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조경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의 3년 과정이 내게 주어진 기간입니다. 고요하고 힘들며 조용한 환골탈태의 새로움이 잉태되어 있는 기간이기도 하겠지요.
모든 순간이 다 기억에 있습니다. 뭉뚱그려 기억하는 편이지요. 특별히 더 기억하고 숨기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흐르는 물처럼 흘러왔지요. 내게 교직이란 그렇게 시작되었고, 시작하고 나서는 天職이라 여기며 그 세계에 몰입하였지요.
지금은 모든 분야에 소수자의 의견을 중시하는 사회적 기저가 자리 잡고 있지만, 예전에는 소수자란 마이너였고, 항상 소외받는 최전방이었지요. 그런 사회가 되었음에도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기초교육, 그것도 농업교육은 여전히 변방이고 무관심의 대상이지요. 어쩌면 가장 아프고 힘든 연령의 여건을 지닌 교육 대상자를 위무하고 희망을 심어주며 새로운 가치관과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게끔 재탄생의 모티브를 선물해주는 분야이지요.
이런 분야였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분야였다면, 쉽게 중간에서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복잡 미묘하며 다양한 접근 방법이어야 했기에, 작년은 이렇게 올해는 이렇다고 규정지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단정 짓거나 예단할 수 없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보다는 물 흐르듯 흘러왔기에 갯돌과 바위와 모래바닥 모두에게 기대며 스치며 서로를 기억하게 하는 그런 현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와우, 이건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질문이네요. 매우 신선합니다. ‘빨리 그만두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시에 나무가 많은 것은, 내가 나무를 자주 만나고 생각하고 타자화시키거나 사유 대상으로 삼기에 그렇습니다. 아마 돌을 상대하였다면 돌 이야기를 시에 가져왔겠지요. 인문학이란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흔적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사람도 깨달음의 오도를 할 수 있고, 축구선수도 축구로 인문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나무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순간 가지게 된 것이겠지요. 모든 것을 나무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정점에서는 모든 사람의 사유와 깨달음이 서로 어울리게 되는 것이겠지요.
다만 이러한 깨달음이나 인문학은 긍정적이고 인류애적이며 인본적인 사람에 대한 너그러움과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나무의 인문학은 저 말고도 많이들 하겠지만, 나는 나의 방식과 사유로 접근할 것입니다.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기에 지속적인 글쓰기가 되겠지요.
차를 준비하여 우리고 마시면서 글쓰기를 했습니다. 차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차를 마시는 순간의 내 생각에 집중하였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쓴 글쓰기를 가령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글 한 편을 소개하면서 차에 대한 내 사유의 단면을 고백합니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은
본인의 소설에서 능히 배냇향 이야기를 차 마시는 장면에 집어넣었다. 한 번도 어김없이 배냇향이 나는 차를 최고로 치는 구성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녹차로 차 세계에 . 녹차로 시작하여 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주로 숙취 해소를 녹차에 의지한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안 마시는 날보다 마시는 날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몸 관리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하나의 주적을 세워 놓고 옳고 그름을 논하느라 좌석이 길었던 시절이다. 그 많은 정열과 애씀이 산화되었는지, 함께 싸웠던 논객들은 다 죽었는지, 내 안의 적들이 산화되었는지 녹차도 다른 차에 밀려 드물게 해후한다. 한승원 선생이 말한 알가(Argha)란 불가에서 일컫는 약초로, 미망을 걷어내고 참 지혜를 터득하게 한다고 한다. 이것이 곧 차나무를 일컫는 말이고, 그 어린 순의 정기가 바로 차라고 한다.
사람이 성숙하면 주적이 산화된다.
녹차를 낮은 온도의 물로 우리면 세 번까지는 몸을 풀지 않고 탱탱하다. 낮은 온도를 만들어 주는 주전자도 일단 끓었다가 온도를 지탱해주려는 것인지, 당장은 살벌하게 물의 속살이 뜨겁다. 숙우에 받아내어 물 옮기기 몇 번 해서 우린다. 딱 제 온도로 맞춘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온도를 잘 적용하였을 때의 차맛은 한승원 선생의 말대로 배냇향이 난다. 나중에라도 배냇저고리의 향을 만날 수 있을까 싶지만, 통감각적으로 배냇향의 정체를 알만하다. 생명력을 배냇향에 등식으로 성립시킨 발상에서 선생의 차에 대한 오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선생은 차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로 생명의 물이라고 한다. 차는 꽉 막히거나 사면초가로 나를 내몰 때,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들을 내치고 바꾼다.
속살이 뜨거운 온도를 받아 식히면
주전자의 계측에 따른 온도로 물을 받으면, 곧바로 물의 속살이 엄청나게 뜨겁다. 사실 온도로 치면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델 정도이다. 각종 숙우에 물을 번갈아 담으면서 속살의 절절하고 뜨거운 결합을 떼 내려고 애쓴다. 그렇게 몇 차례 기다린 물을 우렸을 때, 배냇향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매년 9증 9포 녹차를 제다 하였는데, 요 몇 년 참여하지 못하고 만든 것을 얻어 마셨다. 진정한 9증 9포의 차맛을 직접 만들며 여러 해 경험하였기에 귀하여 혼자 드물게 꺼내 마신다. 누군가 차의 진경을 경험한 듯한 사람이 방문하면 소개하기도 하고, 우려서 함께 배냇향을 느껴보기도 한다. 땡글땡글하게 말렸던 잎이 저고리 풀어내듯 허물어질 때부터 아직 9번 이상, 그 이상 더 우릴 수 있으니, 잘 덖은 녹차의 은은하여 무궁한 진심을 어쩌 다 품으랴. 첫 번째 우린 것은 배릿한 향이 나는 십 대의 맛이고, 열 번째는 사바 세상과 아미타 세상을 넘나드는 열반의 맛이라고 한다. 난 지금 그 열반의 차에 실려 있다.
말려 있을 때는 심연이었다가 풀어내면 물에 떠서
녹차 잎은 스스로의 사유로 무게를 덜어 내는 듯하다. 입 안 가득 달고 발효되거나 신 음식에서 기어코 벗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입안을 헹구듯 환하다. 모든 게 일정량의 시간과 더불어 진행된다. 물의 온도 역시 시간이 좀 지나면 주전자에서 설정한 온도로 보온을 통하여 유지한다. 바로 그 온도를 설정하고 가열한다고 설정 온도로 맞춤이지는 않다. 가열 이후, 보온 과정에서 정해진 시간을 쓰고서야 설정 근처로 모인다. 그러니 설정보다는 설정 이후의 과정을 살펴야 한다. 기계적인 설정으로 모든 것이 완료되는 현대 사회의 풍속에서, 설정 이후부터 살펴보는 과정을 수반하는 오래된 스승의 마음이어야 한다. 단추를 누르면 곧바로 그리 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만나는 교류도 그렇고,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그러하다. 애초에 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완벽하지 않으니, 좀 더 익히거나 식혀서 과정을 관찰하고 심연과 표면 모두를 한 몸으로 여겨야 한다. 심연이었다가 표면이었다가, 남이었다가 측근이었다가, 닿기 어려운 우주의 시원이었다가 방금 만난 배냇향이었다가.(2018, 6.25)“
가족은 식구다.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 지상의 최소 단위이다. 동물과 달리 사람이 이루어낸 가족이란 단위는 서로의 생각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댈 수 있고, 응석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전진 기지이다. 때로는 숨을 수 있는 아지트이고, 때로는 가장 큰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지상의 천국이다. 가족은 바닥이고, 또 그 바닥을 치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이고, 환한 세상을 함께 공유하며 기뻐해 주고 칭찬해주는 성찬의 순간을 고스란히 나눌 수 있는 값진 어울림이다.
가족이 지상의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