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유배를, 자유 청년이라 했으니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행위, 글 감옥도 그중 하나이다. 나무 전정하다 사다리에서 헛디딘 그날 이후, 유배 아닌 유배 생활에 놓인다. 쉴틈도 없이 바로 건너왔다.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 몰입의 순간, 기꺼움의 본질에는 가두는 속성이 작용한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바로 그 지점에서 창살 없는 유배에 든다. 자유 청년이 아니라 은퇴 유배였다. 유배지에서의 일상은 지극히 일차적이다. 평지를 걸으면 저려서 쭈그려 앉았다 다시 걷지만, 야트막한 산 언덕에서는 조금도 저리지 않다. 장유근의 긴장이 신축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설이다. 유배지에 없는 한의원을 되찾기보다 아픔 자체로 앉았다 가면서 적응 기제로 돌린다. 이제는 방법을 찾기보다 여기에 맞추는 거다. 그렇게 속욕을 꿴다. 의식주의 위대한 우주적 물리력 앞에서 의연하다. 굳세다. 하지만 때로는 지극히 무기력하고 처진다. 나 자신에게 징징대며 보챈다. 주거니 받거니 허공으로 날려야 할 가볍고 곡진한 사유마저 고갈이다. 아침저녁 두 번씩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호수, 저녁 이후는 운동장이다, 유배일 때, 그 안에서 시간을 제작한다. 관습으로 행해지는 순간까지 이를 테다.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나서고 걷는 것 하나 얻는다. 이 정도면 은퇴 후 최고의 선물이 되겠다. 값을 매길 수 없는 홋가라 흐뭇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