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덕을 많이 쌓아 푸른 윤기로 청량해지는 나무
장소가 만들어 내는 정체성과 활성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이 있던 자리가 마로니에 공원이다. 이 시절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여러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 시대의 낭만이 그대로 압축되어 마로니에라는 나무의 이름으로 귀착되고 있다. ‘마로니에’라는 말은 나무의 이름을 넘어서서 보통명사로서 다방, 카페, 식당의 이름까지 점령한 것이고 보면, 향수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나무 이름이 외래어로 불리어지는 것이 꽤 많다. 플라타너스, 메타세쿼이아, 라일락, 히말라야시다, 스트로브잣나무, 풍겐스소나무, 방크스소나무, 네군도단풍 등, 그럼에도 ‘마로니에(marronier)’처럼 확장된 용도로 이용되는 이름은 없다.
유럽 원산의 가시칠엽수와 일본 원산의 칠엽수
마로니에는 서양칠엽수를 말하며 열매 표면에 가시가 있어서 ‘가시칠엽수(Aesculus hippocastanum L.)’라고도 한다. 칠엽수(Aesculus turbinata Blume)는 일본원산의 칠엽수인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가로수로 심겨진 마로니에가 바로 가시칠엽수인 것이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과 샹젤리제 거리의 마로니에 가로수는 파리의 명물이다. 그러나 대학로에 심겨진 나무는 일본원산의 칠엽수인 것이다. 서구에 대한 동경이 마로니에를 다르게 보는 시각으로 작용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나무는 일본원산의 칠엽수였던 것이다.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막연한 동경으로 나무를 노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긴 잎자루 끝에 작은 잎들이 모여 넓은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처럼 일곱 개의 잎이 달려 '칠엽수'라 부른다. 어려서는 작은 잎들이 3-5개이지만 나중에 7개가 된다. 대개 5-7개의 잎을 가졌다. 가운데 잎이 크고 옆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져 둥글게 모여 있다. 밝은 녹색의 색감을 자랑한다. 가을철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장관이다. 마로니에 공원에 식재된 일본 원산의 칠엽수는 가시칠엽수에 비해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규칙적이고 잎 뒷면 맥 위에 갈색 털과 함께 주로 흰색 털이 밀생한다. 유럽 원산의 칠엽수인 가시칠엽수는 잎 가장자리가 불규칙한 겹톱니로 이루어졌다. 잎 뒷면 맥 위에 갈색 털이 밀생한다.
여전히 그 나무를 마로니에라고 부르자
이 둘을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은 열매에 가시가 있는 것이 유럽 원산의 서양칠엽수 즉, 가시칠엽수(마로니에)라고 부르는 나무이고, 우리나라에 많이 식재되었던 나무는 일본 원산의 칠엽수로 열매가 가시 없이 매끈하다. 둘 모두를 칠엽수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고, 모두 마로니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일본칠엽수와 구별하기 위해 서양칠엽수만을 마로니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꼭 유용하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서는 서양칠엽수, 가시칠엽수로 말하는 유럽 원산 마로니에와 마로니에 공원에 심겨진 칠엽수인 일본 원산의 칠엽수 모두를 '마로니에'라고 부른다. 분별이 필요할 때, 차이를 느끼고 싶을 때 딱히 구분하면 된다. 둘 다 외관상 풍기는 분위기와 뿜어내는 기운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찌 부르고 불리어도 박건의 노래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속에 봄비가 흘러 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는 여전히 그 나무를 마로니에라고 부르고 있으니 뭘 더 따져볼까.
눈과 줄기의 끈적한 수지는 프로폴리스의 재료이면서 꽃은 밀원식물
꽃대 한 개에 100~300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핀다. 질이 좋은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도 좋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백색 바탕에 분홍색 무늬가 들어 있는 꽃을 피운다. 마로니에는 벌이 만드는 프로폴리스Propolis에 기여하는 나무에 속한다. 벌의 프로폴리스는 나무의 눈과 줄기에서 수집한 수지, 고무, 방향성 물질의 총합이다.
벌이 프로폴리스를 만드는 이유는 생활 과학적이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벌통을 막을 때, 봉방의 갈라진 틈을 메울 때, 벌통의 내부를 매끄럽게 할 때, 여왕벌이 알을 낳기 전에 봉방에 살균 처리를 할 때, 꿀벌들이 치울 수 없는 동물의 시체인 나비, 도마뱀, 쥐 등을 덮을 때 사용한다.
이집트에서는 미라의 방부 처리에 사용했고, 현악기 제조업자들은 악기에 칠을 할 때 사용했다. 이탈리아의 몇몇 바이올린은 그 덕분에 아름다운 음색을 지닐 수 있었다. 프로폴리스에 식물 및 동물에 함유된 색소의 일종인 풍부한 플라보노이드는 살균 효과와 약효가 있다. 특히 항생 효과가 뛰어나다. 요즘 유통되고 있는 프로폴리스는 감기 기운에 초기 대응하는 가정 상비약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스스로 덕을 많이 쌓아 푸른 윤기로 청량해지는 모습
도시에 가로수로 많이 심겨지는 마로니에는 심지어 고가도로 밑에도 심겨지고 있다. 어디에 심겨도 마로니에는 그 고유한 자태를 유지한다. 자태가 단정하여 의연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길 나선 자에게 길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정한 연유를 지녔다.길을 나선 사람에게 마로니에의 그늘은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이고 그 아래 빙 둘러 앉아휴식과 내면의 관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그때 바라보이는 나뭇잎의 시원한 크기와 모양은 지친 사람의 내면을 속시원하게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떠도는 자에게 마로니에의 시선은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이고
올곧게 사방으로 뻗은 일곱 개의 잎
허공으로 헛것이 날아도
한쪽으로 아프고 한 쪽만 자라지 않는
어쩌면 하던 일 멈춰 커다란 잎이 되는
도시의 가로등 명멸하는 피곤함을
흔들리는 바람에 즐겁게 맡기고
미친 듯 현기증 같은 것으로 치유하고
넉넉하여 기꺼이 모두 받아들일 줄 아는
어디가 단정함의 중심이며
어느 곳으로 의연한 뿌리였겠는가
헛헛함이 자라
무성한 잎으로 돋아나고
고단함이 뿌리를 이루어
꽃으로 피어나는
떠돎
후덕하여 푸른 윤기
또는 회색빛 도시의 비 온 뒤의 청량함
아련한 채색의 크기로 은은한 기운 펼쳐내는
그 자리에 늘 같은 시선인 것을
자신은 공해와 싸우면서도 내색없이 올곧은 모습으로 위안을 준다
공해에 약한 편이고 건조한 토양에서 비교적 잘 자란다. 생장 속도가 빨라 국도나 지방도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자신은 도시의 온갖 공해와 싸우면서도 하나도 내색하지 않고 올곧은 모습으로 위안을 주는 나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득 지니고 있다. 스스로는 헛헛함이 자라 무성한 잎으로 돋아내면서도, 고단함이 뿌리를 이루어 꽃으로 피어내면서도, 스스로 덕을 많이 쌓아 푸른 윤기로 후덕하여 청량해지는 모습을 이루었다. 그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은은한 초록의 기운에 시선은 늘 고정되어 있다. 아직도 마로니에의 자리에서 늘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도시숲과 도로변 수목이 가진 공익적 기능
마로니에 가로수는 도로에서 발생되는 오염원 흡착과 이산화탄소 흡수 기능이 뛰어나다. 도로 수목 식재를 통해 탄소저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나무이다. 중부지방의 낙엽활엽대교목을 대상으로 도로의 탄소저감 효과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튤립나무, 메타세쿼이아,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마로니에, 상수리나무의 8종으로 선정되었다. 선정된 수종을 식재할 때도 생장 속도와 과정을 고려하여 다층 식재 형식의 조합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기 단계에 생장이 왕성하여 탄소흡수량이 많은 튤립나무, 양버즘나무와 생장이 느리지만 중장기에 걸쳐 탄소 흡수량이 많은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같은 수종을 동시에 식재 설계하는 것이다. 마로니에도 줄기가 굵고 매우 크게 자라며 웅대한 수형을 이루는 속성수에 해당한다.
궁궐내 사대부 주택인 연경당의 마로니에
연경당의 선향재는 방과 청으로 책을 보존할 수 있고 학문을 강론하는 서재이다. 서재의 동쪽 언덕에는 3단의 석단을 조성하고 화계 정원을 만들었다. 1 단의 화계높이는 1 미터 내외로 되어 있다. 단 위는 조경 식재를 하였다. 화계 정원의 북동쪽 언덕 위 한적한 담 안에 정자가 있는데 우아하다. 농수정이라고 한다. 농수정 옆에 단풍나무 등 아름다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연경당에서 바라보이는 동남으로 담 밖에 재래종 늙은 배나무가 서 있고 고종 때 심어진 마로니에 1주가 서 있다. 어느 외교관이 기념수로 심었다 전한다. 연경당은 정조9년(1785)에 세운 수강재와 헌종 13년(1847) 건립된 낙선재와 석복헌과 같이 사대부 주택을 모방한 왕궁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