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선비의 마음결

줄기의 깨끗한 드러냄으로 귀한 대접 받는 나무

by 온형근

양평 양동 '백송원'과의 인연


나무를 기르고 싶다고 몇 번씩 방문하고, 만나다 이제는 서로 존중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지인이 있다.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서 만났으니 오래된 지기다. 양평의 양동에 ‘백송원’이라는 농장을 만들어 소나무를 농장에 심었고 백송은 그때 처음 비닐하우스를 짓고 씨앗을 파종했다. 그 나무가 제법 자라서 내가 근무하는 여주와 수원의 정원에 심겨져 명물이 되고 있다. 소나무는 수형이 잡혀 판매되는 규격에 도달했고, 그렇게 씨앗으로 재배한 백송도 완연하여 식재 규격에 의해 유통되고 있다.

백송01.jpg 씨앗으로 파종하여 기른 백송 묘목

여주자영농고와 수원농생명과학고에 백송을 심다


나는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와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를 오가면서 이곳의 백송을 식재하였다. 현재 여주는 조경 소재 생산 포장에 식재되어 있는데, 더 크기 전에 자리를 잡아 주어야 한다. 수원 역시 수목원에 작은 묘목으로 식재 된 것이 자리를 잡았고,특히 2013년, 백송의 좋은 기운만으로 정원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수원북중학교와 수원농생고 경계의 지점에 백송 명상 정원을 조성한 것이다.


백송을 식재하여 청정한 기운이 바람을 타고

학교 전체 분위기를 휘감으며

정서적 안정과 학생들의 꿈의 실현을 도울 수 있는

명상의 정원을 백송의 군식으로 시도한 것이다

백송은 개별성을 가진 독특한 나무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위용있는 나무로 성장한다

그러나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의 백송 명상 정원은

개체가 아닌 전체의 나무가 큰 덩어리로서 위용을 세우고자 하였다

세월이 지나면 가장자리와 안쪽의 개별적 성장 상태는 다르겠으나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백송 군락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위함이다

백송힐링정원002-crop-vert.jpg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백송 명상 정원 설계안(2013년)

백송은 줄기의 깨끗한 드러냄으로 귀하게 대접받는 나무


박송은 상록침엽교목이다. 북한에서는 ‘흰소나무’라고 부른다. 중국이 원산지라 ‘당송’이라고도 불린다. 나무줄기가 나이를 먹을수록 흰색으로 변한다. 어릴 때는 연한 녹색으로 매끈하며 광택이 있다가 큰 비늘조각으로 벗겨지면서 청백색의 얼룩무늬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나무줄기 전체가 흰색으로 된다. 백송의 흰 줄기를 보면서 고결한 마음을 지니자고 스스로 다짐한 선비들의 마음결이 상상된다. 우리 정서에 흰색은 마음결을 품위있게 하는 색깔이다.

지금의 서울 헌법재판소 안에 백송이 있다. 천연기념물이다. 보통 재동 백송이고 말한다. 재동 백송 말고도 이천의 백송, 조계사(서울 수송동)의 백송, 경기 고양 송포의 백송, 예산의 추사 고택의 백송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남한에 5그루, 북한에 1그루가 있다.

백송02.jpg 헌법 재판소 안에 있는 백송, 재동 백송이라 부른다.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에 의해 들여오고 좋은 자리에 심은 나무


주로 중국을 왕래하던 고위 관리가 많았던 서울, 경기 지역에 분포하여 있고,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 근처의 백송은 김정희 선생이 스물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을 다녀오면서 백송 솔방울 몇 개를 몰래 가져와 예산 본가에 위치한 고조할아버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다고한다. 물론 추사는 수많은 서적과 함께 옹방강, 완원 등과의 친분까지 가지고 돌아왔고, 훨씬 정신적인 성취를 이룬다. 흥선대원군 역시 재동의 백송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안동 김씨의 세도 앞에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은밀한 내색을 조대비의 사랑채에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연출할 궁리를 한 것이다.

조계사예산백송.jpg 조계사 백송과 예산 추사 고택 백송

녹음식재와 취음식재에 대한 생각 하나


『계산기정 제3권』 '관사에 머물다[留館]' 의 사행 기록을 보면, 날씨는 맑고 옥하관에 머물다가 돌아가기 3일전이 되어 지금 보지 않으면 볼 시간이 없다고 미진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수려한 풍경을 보러 나선다. 일행의 기록에 백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북경의 서호, 호권, 용왕각, 수의교, 만수사, 오탑사, 궁녀사를 둘러보고 적었다. 그중 만수사 끝부분에 "앞뜰에는 다섯 그루의 백송白松이 있는데 쭉쭉 뻗은 가지는 희기가 은비녀 같다. 송체松體의 굵기는 10위圍나 되며 취음翠陰은 온 뜰을 덮었다."는 사행 기록이 보인다. 백송의 가지와 줄기가 은비녀처럼 반짝이는 흰색을 가졌다고 한다.

백송000.jpg 백송의 특징인 고고한 흰색은 정갈하고 고고한 선비의 마음을 대변한다

지금 만수사에는 베이징예술박물관을 지어 현대화된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연행 기록 당시, 차를 권하는 앞뜰에 운치 있는 오래된 백송 다섯 그루가 있는데, 줄기가 150센티미터가 된다고 했다. 그러니 백송 한 그루가 차지하는 공간은 매우 크고 그래서 만들어 내는 그늘이 오색 비취처럼 푸르다는 것이다. 앞 뜰 전체가 푸른 그늘로 가득 덮여 있다는 것이다. 백송의 식재 간격을 넓게 하여 다섯 그루를 부등변삼각형 식재로 뜰을 채우는 취음식재를 시도할 만하다. 특별히 활엽수가 아닌 침엽수로 만들어내는 녹음식재를 '취음식재翠陰植栽'라 부를만 하다. 그렇게 제안한다.


백송은 소나무 가족으로 잣나무에 더 가깝다


백송은 소나무 가족이다. 소나무는 잎이 2개인 소나무와 곰솔, 그리고 잎이 5개인 잣나무 종류로 나뉘는데, 백송은 리기다소나무처럼 잎이 3개이다. 그러나 백송은 잣나무의 잎처럼 잎 속의 관다발이 하나이므로 잣나무 종류에 더 가깝다.

백송05.jpg 백송은 리기다소나무처럼 잎이 3개이며 잎 속 관다발이 하나여서 잣나무 종류에 가깝다.

백송의 흰색이 더 선명해지면 길조라고 여겼는데, 사실 영양상태가 좋을수록 흰색빛이 더 돈다고 한다. 정갈하고 고고한 백송의 줄기를 바라보면서 선비들은 자신의 마음 공부를 더 혹독하게 채근하였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 백송이 있으면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찾아가 오래도록 그 흰색의 줄기와 푸른 잎을 번갈아 보면서 스스로에게 고결한 마음결이 심겨지도록 노력할만하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여 다스려 보는 일은 여전히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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