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행 출근

형근 씨의 협착소설.0001

by 온형근

형근 씨의 협착소설.0001 - 오늘도 산행 출근


오늘도 형근 씨는 산행 출근이라 일컫는 십 리 길을 걷는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성과 좋은 해이다. 그러나 여전히 협착으로 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손에 쥔 타다체어가 아스팔트를 톡톡 두드리며 그의 세 번째 다리가 되어준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라고 여기면서도, 형근 씨는 매 걸음마다 통증을 삼킨다. 아픔은 거부할 수 없는 동행자다. 하지만 이제는 타다체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통증과 나 사이에 완충지대가 생긴 셈이다.

유현재

두 다리와 한 지팡이가 만들어내는 삼각형의 균형. 그 안에서 형근 씨는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지팡이란 결핍을 인정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그 결핍을 딛고 서는 의지의 상징이다. 형근 씨가 타다를 짚는 순간, 그는 나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강인함을 증명한다.

연구소에 도착한 형근 씨는 거울 앞에 서서 모자를 벗는다. 머리가 눌리어 납작해졌다. 걷기 앱을 종료시킨다. 오늘은 산행출근 시즌5의 216회의 날이다.

압력을 받으면 납작해지는 건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형근 씨의 하루도, 그의 삶도, 보이지 않는 무게에 눌려 있다. 협착이라는 병명, 늙음이라는 시간, 세상이라는 중력. 그러나 납작해진다는 것은 완전히 짓눌렸다는 뜻이 아니다.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형근 씨는 두발용 로션을 찾아 머리에 바르며 납작을 세운다. 작은 저항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은이가 손에 바르며 좋아했던 두발용 로션. 이제는 아이의 손이 아니라 형근 씨 자신의 손이 그것을 사용한다. 시간은 모든 것의 주인을 바꾼다. 이제 한문 글자 쓰기를 하려는데 이 교재를 일괄로 집어 넣을 상자를 떠올린다. 얼마 전에 르누통 신발 박스로 만드는 종이 공예를 생각하고 잘 두었던 그 박스다.

보이질 않는다. 찾을 때마다 안 보인다. 어렇게 찾을 때마다 안 보이는 건 거의 한 가지 경우에 몰려있다. 필요한 것은 사라지고, 치워야 할 것은 자리를 차지하는 법. 삶의 아이러니는 언제나 이렇게 작은 일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샤워하고 사용한 수건을 머리 고정하며 묻은 손을 닦으려면 꼭 그 자리에서 없어졌듯이, 로마로 가는 길은 하나지만 잃어버린 물건으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설마? 했지만 얼마 전 그 박스를 버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형근 씨는 마시다 남은 차를 우린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치워 주었으면 하는 것은 늘 자리를 차지하고, 아 저거는 써야 하는 건데 싶은 것은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알 수 없는 행보에 빠진다.


"타다야, 너는 항상 내 곁에 있으니 참 다행이다."


형근 씨는 벽에 기댄 타다체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도 형근 씨가 저를 잊지 않는 한, 여기 있겠습니다."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깊은 숨을 몰아쉬는 것이다

필요는 존재를 만들고, 기억은 존재를 지속시킨다. 형근 씨가 타다를 기억하는 한, 타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의지할 곳이 있다는 안도감이다.

아, 월요일이구나. 옆집 사장의 일주일 일정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저 일정은 잠시도 주춤대지 않는다. 뭔지 모르지만 사업은 종일 말하고 싶은 사람이 공들여 만들어 내는가보다. 돈도 벌고 속 생각도 정리하는가 보다. 오늘따라 목청이 높다.

시끄러움도 어쩌면 그 사람의 생존 방식일지 모른다. 형근 씨는 침묵 속에서 글을 쓰고, 저들은 발표 속에서 사업을 한다. 다른 리듬일 뿐이다. 세상에는 소리 내어 살아가는 사람과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형근 씨는 자신의 리듬을 지키며, 타인의 리듬을 존중할 뿐이다.

형근 씨는 타다체어를 벽에 기대 세우고, 붓을 들었다. 한문 글자가 천천히 종이 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늘도 하루가 흘러간다. 통증과 함께, 타다와 함께, 그리고 자신만의 침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