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나 서로의 염원을 담고 동반자가 되는 나무
느티나무에는 쥐의 귀 같은 꽃잎이 떨어지고
『동국이상국후집 제 2권』에 느티나무 꽃잎의 모양을 '쥐의 귀' 같다고 하였다. 쥐의 귀 같은 꽃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고율시에는 느티나무 꽃의 모양에 대한 표현을 비롯하여 뽕나무로 물들인 옷을 입었다는 말이 나온다. 서리 내린 후에 고상한 격으로 피는 국화를 칭송하고, 이슬 내려 꺾인 갈대의 치렁치렁한 모습을 노래했다.
황(黃)을 읊다
산뽕나무 물들인 옷 사당에 제사할 때 입고 / 柘衣親廟瓚
주머니 속엔 보배로운 경전 들었네 / 囊寶秘神經
예의(禮衣) 입은 선비들 대각(臺閣)에 가득하고 / 禮士臺中滿
금정(金鼎)에 음식 다루듯 나라 일 다스리네 / 調元鼎上形
국화는 서리 내린 새벽 언덕에 피었고 / 菊開霜曉岸
갈대는 이슬 내린 물가에 꺾여져 있네 / 葦折露秋汀
벼 이삭 끝엔 새우 수염처럼 털 달렸고 / 稻穗蝦鬚亂
느티나무엔 쥐의 귀 같은 꽃잎이 떨어진다 / 槐英鼠耳零
흐린 황하(黃河)는 은하수에 기운 통하고 / 濁河通上漢
광도는 밝은 별들을 재는 기준이 되네 / 光道度明星
(......)
「고율시(古律詩)」《이 시랑이 또 전의 운으로 황ㆍ홍ㆍ청 삼색을 읊어 보내온 것에 차운하다》
느티나무의 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잎에 가려 주마간산으로는 볼 수 없다. 암수한그루이고 새 가지에 황록색 꽃이 핀다. 암꽃은 위로 수꽃은 아래를 향한다. 그래야 수분에 유리하다. 암꽃은 가지 위쪽에 1개씩 피는데 자루가 없고 암술대가 2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암술대의 씨방에는 털이 있으니 갈라진 2개의 암술대를 '쥐의 귀' 모양으로 본 것이다. 옛 사람의 세밀한 관찰력에 놀랍다. 하물며 인지가 발달한 시대를 사는 내 모습은 실망이다. 느티나무 꽃에서 '쥐의 귀' 모양을 떠올리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모양을 본 것도 아니잖는가. 딱한 노릇이다.
성목이 되어서야 고르게 울창하여 단정해지는 나무
느티나무의 이름에 대하여 '늦게 티가 나는 나무'라서 느티나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싸한 어원이다. 느티나무 씨앗을 빗자루로 쓸어 모아 노천매장 한 후, 봄에 파종하여 묘목을 길러 보았다. 씨앗 자체도 쭉정이가 많았지만, 묘목을 기르는 묘포장에서 볼품없이 자라는 것을 보고 언제 나무다워질까 하며 수시로 밭을 들락거렸다.
어린 나무일 때는 줄기도 비스듬히 자란다. 그러던 것이 성목이 되어 제자리에 뿌리를 꽂으면 달라지는 모습이 쑥쑥 보인다. 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수관이 울창해진다. 성목의 단정함을 만날 때쯤이어야 늦게 제 본때를 보여주는 나무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느티나무의 학명은 젤코바 세라타 Zelkova serrata이다. 식물학자 마키노가 붙인 학명이다. 세라타는 ‘톱니가 있는’을 뜻한다. 느티나무의 특징 중 잎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학명에 그 특징이 잘 드러나 있음을 알게 된다. 잎 가장자리에 시원스런 크기의 규칙적인 톱니가 있고 잎끝은 길게 뾰족하다. 그래서 느티나무의 영명은 Sawleaf Zelkova이다.
진입 공간에 느티나무 숲이 있다
용주사를 다녀왔다. 바깥 입구에서부터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 여름의 입구에서 고개 들어 느티나무 숲을 보는 것만으로 시원한 느낌으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느티나무 숲이어서 속세의 많은 생각들이 숲의 기운에 이끌려 저절로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진입 공간을 가로질러 숲이 마련되어 있는 사찰은 용주사에서 처음 본다. 대개 일주문을 지나 양 가장자리로 가로수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은 느티나무를 의도적으로 심고 가꾸었던 곳이 아닐까. 생각이 다른 쪽으로 흐를 정도로 진입 공간에 개체수가 많다. 매표소 입구에도 2 그루의 느티나무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반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나무 중에 느티나무가 가장 많은 데, 그중에 1,000년 이상 나이를 먹은 느티나무만 64그루나 된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목재도 최고로 친다. 결이 만들어내는 무늬와 색상이 아름답다. 단단하면서도 뒤틀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나무를 대한다는 것은
용주사에만 느티나무가 있는 게 아니다. 융건릉을 오가는 길 양 옆 가로수가 느티나무이다. 보기 드물게 명품 가로수다. 공사를 하느라 여기저기 나무가 시들어가는 것들이 곳곳에 끼어 민망하다.
융건릉을 오가는 길 가로수는 명품이다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예지자이다
이렇게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다니
터널을 이루며 관개 경관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멋진 길이 얼마나 또 있을까
조금만 다듬고 관리 계획을 바로 세우면
기막힌 공간으로 거듭 태어날만한 곳이다
자랑스럽고 멋진 걷기 문화 명소로
이름을 오래도록 남길 수 있을만한 곳이다
새로운 일에 예산을 쓰는 것이 오래되어 삭힌 유형과 무형의 보물을 해치는 공사라면 곤란하다. 어떤 예산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저렇게 시원하고 멋진 공간을 돕고 보완하여 복원하는 일은 아득히 멀기만 한 것인가. 서운하여 아쉽기만 하다. 죽어가는 나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 길이 이제는 소용가치가 없어져서 없어지는 길로 돌리겠다는 속셈 아닐까. 나무들이 살아온 세월과 이곳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문화도 함께 없어지고 마는 것인데.
느티나무, 어디서 보았을까
실제로 느티나무는 동네 어귀나 들 가운데 큰 정자나무로 눈에 띈다. 고개 마루에도 느티나무이다. 수원에 정조대왕이 능행차할 때, 가장 더디게 움직이는 곳이 '지지대 고개'라고 한다. 의왕쪽 양 가로수의 느티나무 식재는 그래서인지 참 볼만하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자나무이다. 지금은 도심에서도 쉽게 만난다. 도시에의 적응력이 대단히 높은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의 색감으로 자지러진다. 너무 아름답다. 지지대 고개에서 의왕쪽 방향의 느티나무를 해마다 다양한 시선으로 쳐다 본다. 가을의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이 섞여서 승용차로 지나면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게 된다. 봄 새잎이 나오기 전의 새눈이 붉은 것은 붉은 단풍이 들고, 새눈이 푸른 것의 단풍 색깔은 노란색이 된다. 붉은 단풍에 안토시아닌 색소가 관여하고 노란 단풍에는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관여한다.
사찰 조경은 누구의 발원이고 행걸일까
내친김에 용주사 일주문 앞 주차장 공간을 비롯한 사찰 외부 영역의 번잡한 식재 패턴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한다. 기본적으로 전정한 향나무와 옥향나무, 쥐똥나무, 무궁화, 담쟁이덩굴 등이 식재되어 있다. 향나무는 제사를 모셔야 하는 사당, 사찰 등 어디서나 기본적으로 식재되는 것이 전통적인 식재 방법이다. 그러나 배식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일정한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여야 한다. 일주문 바깥에는 산옥형으로 전정하여 외과수술을 한 향나무와 함께 둥글게 조형한 향나무들이 일정 크기의 면적을 차지하며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쥐똥나무 생울타리가 전정을 한 채 길을 유도하며 식재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따뜻하게 바라보아도 번잡하고 어수선하다. 일단 둥근 향나무를 빼내야 한다.
사람의 보는 즐거움과 나무의 멋지게 살고자는 생존권
산옥형 향나무는 그 경과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지금 세력이 무척 약하다. 그런 연후에 쥐똥나무 유도식재에 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된다. 한국전통조경 또는 선조들은 나무를 어떤 실용적인 용도 외에, 관상을 위하여 전정하는 일을 지극히 멀리하는 자연관을 가졌다. 사람의 심미적 용도를 위하여 멀쩡한 나무를 자르고 하는 일은 그래서 없었다. 지금처럼 전정하는 문화는 일제가 이 나라에 남겨 놓은 유산이고, 세계가 일시에 일희일비하며 유행을 좆는 시대의 산물이다. 가능하면 쥐똥나무는 전정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크게 두면 싶다. 6월 내내 쥐똥나무의 꽃향기가 진동을 할 것이다. 대신 폭이 넓혀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관리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속히 바꾸어야 할 우선순위는 사찰을 바라보았을 때 일주문 왼쪽의 기와 울타리 밑 옥향나무다.
옥향 대신 말채나무를 식재하여 전통 공간의 위의를 세운다
옥향나무는 한국의 전통 공간에 식재하지 않는 수종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했고, 그래서 많이 식재되었지만 과거에는 옥향나무를 전통 공간에 식재한 적이 없다. 현재 용주사 옥향나무는 수명이 다했다고 보면 된다. 가운데가 갈라지고 훵하니 비고 있다. 대체 식재가 필요하다. 옥향이 심겨진 화단에는 적당히 작은 규격의 안전한 식재 방법으로 말채나무를 식재한다. 활착율을 높인다. 말채나무는 생장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기에 현재의 화단 크기면 식재 가능하다. 갑사 가는 길의 말채나무 군락지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절에 오는 말이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말을 듣지 않을 때, 말채나무 가지로 살짝 치니 그제야 주인을 따라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채나무는 사찰 입구에 심을만한 나무로 적절하다.
느티나무 그 위대한 여정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전국 114개소의 사찰과 향교, 사당 등 목재건축문화재 기둥 1009점의 재료를 조사하였다. 기둥에서 떨어져 나온 성냥개비 크기의 시료를 수집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법으로 목재의 종류를 알아낸 것이다. 조사된 시료에서 고려시대 건축물의 55%, 조선시대 건축물의 21%가 느티나무로 지어졌음을 밝혔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느티나무 기둥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수덕사 대웅전, 해인사 장경판전, 진주 향교 등이 느티나무 기둥재이다. 이런 느티나무를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새천년 상징 ‘밀레니엄 나무’로 선정한 것은 우리나라다. 느티나무는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 또는 신목으로 신성시한 나무다. 여름의 무성한 잎과 넓게 퍼지는 줄기와 가지는 사람을 끌어안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가졌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높은 상급으로 궁궐이나 중요한 목조건물에 이용되었다. 내구성이 소나무보다 더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건물 기둥을 소나무로 만들면 100년을 버티지만 느티나무는 300년을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타버린 숭례문 기둥에 소나무를 사용하였다. 그것은 조선시대에 느티나무가 귀했다는 이야기다. 고려말 몽골의 침입과 혼란 속에서 숲 속의 느티나무를 마구 베었고 느티나무를 대신해 숲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늘어났다.
재목으로 사용하는 느티나무와 소나무의 역할 분담
궁궐이나 사찰을 짓기 위한 10미터 이상 곧게 자란 소나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건물에 비해 다소 커 보
이는 지붕을 이고 있는 기둥은 느티나무일 확률이 크다. 느티나무 건축물은 웅장하고 중후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는 사찰 건물이나 향교의 제단에 많이 사용하였다. 반면에 소나무 건축물은 소박하고 아담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양반 가옥과 사찰의 약사전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문화재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수종으로 복원을 해야 한다면 느티나무 기둥으로 지어진 건물에 대한 대비책이 미흡한 실정이다. 소나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문화재 보수 용재림’을 따로 지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숭례문이 빠르게 복원될 수 있었던 것도 비교적 정부에서 관리한 풍부한 소나무 자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느티나무의 경우는 여기저기 전국에 흩어져 자라며 자원량이 부족하다. 여러 그루를 한꺼번에 키우기가 어려운 편이다. 우량한 느티나무를 많이 심고 집단화하여 문화재 용재로 쓸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은 그래서 시급하다. 용주사에서 느티나무를 심고 가꾸는 문화적이며 국가적인 큰 밑그림을 주도할 수 있는 인연이나 불사가 꿈틀댔으면 하는 바람으로 느티나무에 열매가 맺혔는지 살펴본다.
느티나무의 연한 어린잎에 쌀가루를 버무려 쪄 낸 느티떡
느티나무의 어린 새싹을 석남石楠이라고 한다. 이때가 사월 초파일 즈음이다. 이때의 어린 느티잎은 독성이 없고 향이 좋아 떡을 찌면 느티잎 향이 가득나는 제철 음식이다. 이처럼 느티떡은 느티나무의 연한 어린잎을 따다가 쌀가루에 두둑하게 넣고 버무려 팥고물을 켜켜이 안치고 쪄 낸 떡을 말한다. 불리는 한자 이름으로는 남병楠餠, 석남엽병石楠葉餠, 유엽병楡葉餠, 석남엽증병石楠葉甑餠이라고도 한다. 맛과 향이 떡 중에 제일이라 추켜세운다. 『경도잡지京都雜誌』(1700년대 말)에 "손님을 맞이해 느티떡과 볶은 콩, 삶은 미나리로 반찬을 차려 놓는데, 이것을 부처님 탄신일 소반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었으며,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1819)에는 “아이들이 등간에 가서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 찐콩을 차려 놓고, 물동이에 바가지를 띄워 돌려 가면서 두드리고 노는데, 이를 수부라고 한다”고 하여 느티떡은 손님 접대나 아이들 수부놀이에도 등장하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느티떡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기록
1913년『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 “팥은 거피하여 시루에 찌고 느티 잎사귀는 연한 새싹으로 따서 정하게 씻어서 채반에 놓아 물을 다 빼고 떡가루를 잘 만들어서 느티잎을 함께 섞어 손가락 두마디 운두만큼 하고 팥을 가루가 보이지 않도록 뿌리고 또 이렇게 여러 켜를 해서 찌나니라. 떡가루는 가루 만드는 법에서 보고 소금물을 뿌려 잘 찌어야 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거피란 껍질을 벗기는 것을 말하고 운두는 높이를 말한다. 느티잎에 손가락 두마디 높이로 팥을 뿌리라는 말이다.
4월떡과 늦티떡
1934년『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에서는 ‘느티떡을 4월떡’이라고 하였으며, "느티나무 잎사귀를 떡가루에 섞어가지고, 거피한 팥을 두고 쑥떡하는 법으로 찌라"고 하였다. 1943년『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늦티떡’이라 했고, “느티나무 잎사귀를 연할 때 따서 원 잎을 섞어 두껍게 켜를 안치고, 아무 팥이나 두어 찐 후에 먹으면 버석버석하여 조흐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늦게 티가 나는 나무인 늦티나무를 뒷받침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느티시루편과 녹두고물을 사용한 느티떡
1958년『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에서 느티시루편으로 소개되었다. “팥은 거피하여 준비해 놓고, 느티잎은 연하고 어린 새싹으로 따서 정하게 씻어 건져 놓고, 떡가루에 잎사귀를 넣어 섞어 가지고 시루에 켜를 알맞게 안치고 팥을 뿌려서 이렇게 여러 켜를 다 안쳐 쪄 가지고 썰어서 상에 놓으라”고 하였고, 1969년 『현대여성백과사전』에서는 녹두를 켜를 두고 쪄냈다고 하였다. 주로 팥고물을 사용해 오다가 최근에 녹두고물도 사용한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느티떡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나 예로부터 사월 초파일 즈음에 항상 만들어 먹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