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와 의리, 운치와 품격의 추구하는 나무
냇가 둑으로 가득히 자리 잡은 붉은 낭만
예전에 차 관련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용인 고기동에 사무실이 있는데, 차 관련 도구를 전시하고 직접 판매도 한다. 그때가 가을이 한참 지났을 때였는데 차 도구에 노박덩굴이 여기저기 꽂혀 고아한 자태와 분위기를 뽐내는 것이다. 사무실 앞 광교산 줄기에서 내려오는 냇가에 지천으로 노박덩굴이 온갖 나무를 감아 오르며 매달려 있다. 아주 가까운 앞 개울 둑에서 채취하여 간결하게 사무실을 생동감으로 바꾼 것이다. 차 도구 역시 그냥 놓여 있는 것보다 노박덩굴이 꽂히는 순간 화기花器가 되어 시집온 새색시처럼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후로는 노박덩굴이 다르게 보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꽃과 수목에 내재된 가치 규범
옛 그림 문인화를 보거나 분재를 보거나 꽃꽂이를 볼 때, 늘 느끼는 것은 선의 자유로운 여백과 질서 정연한 비례이다. 아닌 듯 그러하고, 그러한 듯 아닌 경지에 서성대게 마련이다. 사군자가 그렇고 꽃 예술이 그러하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선비에 비유하여 부르는 말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난국죽마다 개별 특성을 끄집어내 그 기질이 군자가 지녀야할 품성이라고 여겼다. 시와 그림에서 매난국죽을 즐겨 다뤘다. 이들 소재는 주로 문인화풍 수묵화로 다루어진다. 중국에서는 송대에 유행하였고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 이후 성행하였다. 꽃과 수목은 있는 그대로의 미와 기능과 생태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꽃과 수목에 내재된 가치 규범과 사상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었다.
지조와 의리, 운치와 품격의 추구
조선시대 선비에게는 지조와 의리, 운치와 품격이 가장 중요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안빈낙도를 추구한다. 유교적 규범과 안빈낙도가 만나는 지점에 매난국죽과 연꽃, 버드나무, 오동나무 등이 함께 한다. 이들을 정원과 정자 주변에 배치하여 심고 가꾼 것이다. 직접 땅에 심을 수 있을 때는 평탄한 곳에는 화단, 경사지에는 화오와 화계를 이용하였다. 땅에 심기 어렵거나 더 가까이 마주하기 위해 취병, 분재, 절화 등을 이용하였다.
갈아엎고 거름 넣고 구획하면 화단
화단은 꽃과 수목을 심어 가꾸기 위해 뜰 한쪽에 단과 같이 흙을 쌓아올려 만든 정원이다. 화단은 흙을 갈아엎기도 하고 퇴비와 같은 거름도 넣어주면서 가꾸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갈아엎고 넣어주고 하면서 흙 표면이 주변보다 높아진다. 높아진 흙이 흩어지지 않게, 꽃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갈아엎은 주위에 특정 재료로 구획을 한다. 그러다 보니 사직단, 선농단처럼 평지보다 약간 높게 흙을 쌓아 신을 섬기는 단과 비슷해진다.
경사진 언덕 둑에 장대석으로 낮게 두른 자리는 화오
화단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쓰였으며 화오는 고려 중엽부터 문헌에 나타나 조선시대에 널리 쓰였다. 화오의 오塢는 낮은 둑을 말하며 장대석으로 낮게 두르고 꽃나무를 심고 가꾸는 곳을 말할다. 화오는 심은 식물에 따라 매화나무를 심은 언덕 화단이면 매오, 복숭아나무를 심은 언덕 화단이면 도오, 대나무는 죽오, 소나무는 송오, 뽕나무는 상오라고 부른다.
경사지를 장대석을 두르고 계단처럼 만든 화단은 화계
화계는 꽃과 나무를 심기 위해 조금 높이 쌓아서 계단처럼 만든 화단이다. 건물이나 시설물 배치시 발생되는 절개지 경사의 토양유출과 붕괴를 막기 위한 기능성과 꽃과 나무를 심어 시각을 고려하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가진다.
식물의 가지를 틀어 올려 병풍 처럼 만든 울타리는 취병
취병은 관목이나 덩굴 식물로 가지를 틀어 올려 병풍 모양으로 만든 울타리를 말한다. 내부를 가려주고 공간을 나누는 역할과 동시에 경관을 높여주는 안목있는 행위이다. 『임원십육지』의 취병의 소재와 방법에는, 겨울에 시들지 않는 상록의 대나무, 향나무, 주목, 측백나무, 사철나무 등과 고리버들, 화목류, 등나무 같이 가지가 유연한 수종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무릇 취병을 얽어 만드는 데는 나무를 사용하며 어른 팔뚝 굵기 정도의 대나무를 좁게 두 줄로 땅에 꽃는다. 또 얇고 길게 깍은 대나무를 층으로 가로로 틀을 만들 때 가로와 세로로 단단히 고정한다. 그 가지와 줄기에 싹이 나는 것을 보아서 오래되지 않고 쉽게 구부릴 수 있을 때 그 성질에 따라 묶어 주는데 만약 가지가 큰 경우 틀을 씌워 굽히거나 꺾기도 하고 틀 밖으로 나오는 가지는 잘라 버린다.”
“무릇 화목류 중에서 등나무 같은 만경류는 가지가 연하여 구부리 수 있는 것들로 모두 시렁처럼 나무에 결속하여 관상이 가능하다.....중략.....추운 겨울 동안 시들지 않는 것이라면 아름다움이 더하다.”
“고리버들(杞柳)을 엮어서 취병을 만들 때는 두께를 2척으로 하고 길이와 너비는 임의로 할 수 있다. 고리 버들로 영롱담과 같은 형태의 취병을 만들려면 비옥토를 나무 가운데 메운 후 패랭이꽃이나 범부채 등과 같은 일체의 줄기가 짧고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취병을 따라서 섞어 심는다.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오색(絢爛)이 현란한 병풍이 만들어지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취병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창덕궁),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분재에는 문인목이라고 하는 선비나무가 있다
분재의 경우는 아예 분재 수형으로 문인목이 있다. 선비나무라고도 한다. 풍류의 시정이 담긴 수형으로 경쾌하고 산뜻한 줄기의 치솟음이 특색이다. 빈약한 듯 가느다란 줄기가 약간 기울어져 운치 있는 곡선미를 즐긴다. 나무높이의 3/4 정도 아래에는 가지를 두지 않는다. 문인이나 묵객들의 기호에 맞아 문인목이라 하였다.
꽃꽂이 소재로 쓰이는 절화
절화는 꽃꽂이를 하기 위하여 잘라 놓은 꽃자루, 꽃대, 가지를 말한다. 꽃꽂이 소재인 셈이다. 노박덩굴은 평이한 꽃꽂이 디자인에 3차원의 공간감을 안겨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주적 사유의 꽃꽂이에 적합하다. 노박덩굴은 마음을 다스리는 주제의 디자인을 이해시키는 소재로 훌륭하다. 마치 사군자를 보듯이 그 여백과 비례의 질서 정연함을 안겨 주는 소재다. 꽉 차서 눈길을 어디에 둘지 민망하느니, 적절한 여백의 아름다움에서 숨도 고르고 생각도 여미며 순한 마음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절로 좋은 기운이 공간을 은은하게 채워준다.
노박덩굴은 퍼걸러나 아치 또는 트랠리스에 올려 활용할 수 있다
노박덩굴은 전국에 분포하는 낙엽활엽의 덩굴식물로 암수딴그루이다. 덩굴식물은 만경목이라고 한다. 길이 10미터, 직경은 20센티미터까지 자라며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추위에 강하고 건조에도 강하다. 아울러 대기오염에도 강한 특성을 지녔다.
노박덩굴의 잎 모양은 평범하지만
새순은 장아찌를 담는다
잎이 나온 뒤에 꽃이 피는데
작아서 얼른 보이지 않는다
자잘한대다 꽃이 잎 닮은 색감이라
작정하고 다가서야 볼 수 있다
가을에 노란색으로 열매가 익는다
이때 둥근 열매의 껍질이 사방으로 갈라진다
주홍색이라 할 수 있는 빨간색 속살이 보인다
이쯤에서 탄성을 지른다
노박덩굴의 열매는 민간에서 손발의 마비를 풀어주거나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생리통에 좋은 약초가 많은데, 그중, 노박덩굴의 열매가 효과가 좋다고들 한다.
노박덩굴과 푼지나무 잎의 가장자리
노박덩굴의 잎은 어긋나고 보통 타원형이지만 원형인 것도 있다. 얇은 잎으로 가장자리의 거치는 둔하면서 얕은 톱니로 보통 안으로 굽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노박덩굴과 유사한 푼지나무의 잎은 가장자리에 털 같은 톱니가 있고 턱잎이 가시로 변하는 게 차이점이다.
꽃은 5월에서 6월 사이에 황록색으로 핀다. 꽃잎과 꽃받침이 각각 5개이고 수술도 5개이며 셋으로 갈라져 있다. 열매는 삭과로 10월에 황색으로 익고 3개로 갈라진다. 종자는 황적색 씨앗주머니에 빨간 속살이 드러난다.
노박덩굴로 완성시킨 점, 선, 면, 색감 그리고 여백미
국내 최초의 꽃꽂이 강사인 꽃꽂이 명인 임화공은 “춥고 건조한 계절에는 화병보다 쟁반처럼 낮고 바닥이 넓은 수반을 이용해 보세요. 집에서 사용하는 예쁜 접시나 도자기에 침봉과 물을 담고 여백을 많이 남기면서 드문드문 꽃을 꽂아보세요. 예쁘기도 하고 가습효과도 있어 지금 딱 좋아요.” 라고 강조한다. 꽂는 것보다 비우는 것에 더 많은 고민을 하라고 한다. 비우는 공간미를 발휘하는 데에 노박덩굴처럼 귀한 소재는 없다.
꽃에서 기氣를 얻는다. 특히 노박덩굴을 이용하여 꽃꽂이를 한다면 춥고 건조할 때는 침봉과 수반을 이용하여 꽂는다. 막 꽃망울 터지는 계절에는 화병을 응용하여 꽂아주기만 해도 잘 어울린다. 매화를 꽂은 병이 매병이듯이, 도자기로 만든 그릇, 항아리 같은 것이면 모두 잘 어울린다. 옛 그림에도 꽃꽂이는 그냥 병에 담기듯 꽂혀 있다. 마음의 여백을 위하여도 부드러운 병의 곡선과 툭 놓여 자리 잡는 제 기운의 행방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