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터져 펄펄 날린다

배려하고 희생하는 마음으로 가득 나무

by 온형근

기왕이면 백목련도 군식이어야 위풍당당하다


백목련 없는 공공 기관 없고, 주택 정원 없다. 공동 주택 근처 화단에도 백목련은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자태의 흐트러짐이나 수형의 어긋남에 상관없이 꽃 피는 계절이 오면 일단 흰 꽃으로 존재감을 드리운다. 무심코 지나던 골목길에서도 꽃이 피어 탄성을 자아낸다. 목련류에 속하는 나무들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잎보다 꽃이 먼저 화려하게 터지면서 "나 여기 있어요." 외치듯 출현한다. 아무 생각 없이 봄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꽃은 "어! 벌써! 이런, 꽃이 피었네."를 되뇌며 지난 계절을 잠깐이라도 되돌아보게 한다. 이른 봄을 깨닫게 해주는 나무다. 잎보다 먼저 피는 커다란 흰색 꽃은 한량없이 화려한데 자세히 보면 수줍은 듯 청초함을 어쩌지 못하는 꽃이다. 4월의 용모를 해사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꽃이다.

수줍은 듯 청초함을 어쩌지 못하는 꽃이다


배려하고 희생하는 마음이 나무의 푸르름 아닐까


8월 아주 더운 날, 화성 용주사를 찾았다. 8월이면 배롱나무가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계절이다. 이곳에 수형 괜찮은 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를 보러 갔다가 백목련을 보게 된다. 배롱나무를 배경으로 백목련 군락이 전각의 지붕 사이로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다.

배려하고 희생하는 고운 마음이 백목련 군식의 푸르름

배롱나무의 화려함에 눈부셨는데

당찬 모습의 푸른 잎으로 반짝이는

백목련의 자태에 더욱 눈이 맑아진다


"저거였구나"


흰 꽃 활짝 핀 봄만 백목련의 계절이 아님을 알게 된다

푸른 군식을 배경으로

앞서 나온 8월의 배롱나무를

어쩌면 저렇게 돋보이게 할까

배려하고 희생하는 고운 마음이

백목련 군식의 푸르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모여 심는 것을 군식이라고 하는데, 백목련도 화려한 꽃의 장엄함을 보려면 군식이 바람직하다. 꽃이 나무 전체를 덮는다. 백목련의 꽃 색깔은 연한 노란색을 띤 흰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안 화산 백련지의 흰 연꽃 축제를 다녀온 사람은 흰 연꽃의 장엄을 안다. 목련은 나무 연꽃이다. 백목련은 나무에서 피는 흰 연꽃이다. 과히 무안 백련지의 흰 연꽃 바다와 비견할 만하다. 백목련 5 그루만 심어도 흰 연꽃 바다를 만들 수 있으니 꽤 괜찮은 풍경이다.

나무에서 피어내는 흰 연꽃이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백목련과 알현 어려운 목련은 서로 다른 나무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목련이네!"라고 툭 던지며 부르는 대개의 나무는 목련이 아니다. 대부분 조경용으로 식재된 백목련이다. 백목련과 목련은 서로 지체를 달리한다. 백목련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목련을 알현하는 일은 드물고 귀한 일이다. 지체 높은 목련에 대하여 살펴본 후 백목련을 만나면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목련의 자생지는 제주도 한라산 표고 1,800미터의 개미목 부근이다. 그러나 전국 어디서나 월동이 가능하고 개화결실이 된다. 완주나 순천 지역에서 목련을 관상수로 재배 생산하고 있다. 칸돌레는 목련의 학명을 마그놀리아 코부스(Magnolia kobus)라 붙였는데, 마그놀리아는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대학 식물학 교수 피에르 마뇰(Pierre Magnol)을 뜻하고, 종소명인 코부스는 목련을 나타내는 일본어 ‘고부시こぶし’를 말한다. 목련은 꽃잎이 6~9개이며 밑 부분에 연한 홍색줄이 있다. 꽃의 지름이 10센티미터 이하로 백목련에 비해 작고 꽃은 활짝 벌어진다. 백목련은 꽃잎이 6개이나 꽃받침이 꽃잎과 거의 같아 보여서 9개로 보이는 것이 목련과 다른 점이다. 꽃의 지름이 10~15센티미터로 목련보다 크다. 꽃이 목련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목련은 외국 육종 개량된 목련류의 꽃에 비해 한국적 아름다움을 지녔다고나 할까.


백목련은 피어나는 꽃의 모양에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백목련은 프랑스 식물학자 데스루소가 속명은 목련과 같이, 종소명은 데누다타(denudata)로 붙였다. 데누다타는 ‘벌거벗은 채로 나와 있는’다는 뜻이다. 백목련이 피어나는 꽃의 모양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백목련이 활짝 피었을 때의 모습을 보면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도 그런 연유일까. 화려하고 풍성해 보이는 백목련의 향기는 목련보다 훨씬 진하다. 개화기간이 짧고 한꺼번에 떨어지는 꽃의 대명사다. 떨어진 꽃잎들은 짓물러 바닥이 지저분해진다. 꽃 지고 새 잎이 나오는 사이의 절체절명의 시간에 묵직한 침묵이 흐른다.

새싹이 트기도 전에 꽃을 활짝 피워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한꺼번에 끄집어 보여 준다는 것은 가히 살신성인의 수준이다. 이렇게 쏟아내고 나면 무슨 힘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며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줄까. 나무의 전체적인 키에 비해 가지가 만들어내는 폭이 넓게 퍼져 든든하다.

꽃 이후 기력을 모아 빨간 열매에 집중한다

그래도 쏟아낸 후 새롭게 만들어 내는 푸른 잎과 열매를 보면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가을에 익은 열매를 따서 붉은색의 납분을 제거한 후 12월에 물기가 고이지 않는 양지쪽에 가는 모래와 층적해서 노천매장한 후, 봄에 꺼내어 파종하면 번식된다.


박목월 시인은 ‘사월의 노래’라는 詩에서 이렇게 목련을 노래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러나 정녕 ‘사월의 노래’에서 기억나는 구절은 한 구절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그 외의 다른 구절은 기억나지 않는다.

겨울눈으로 봄의 꿈을 더디게 꾼다

‘목련꽃 그늘’이라는 게 무엇일까. 그러한 상황에 있어는 보았는가. 대체 ‘베르테르의 편지’가 뭐길래? 이 두 의미가 어울려 이 詩 전체를 휩쓴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 김하인의 ‘목련꽃 그늘’이라는 책도 있다. 앳된 중학교 소년과 대학생 누나의 사랑 이야기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수록된 총 82편의 편지는 베르테르가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덮여 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하면서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런 것들이 봄의 백목련을 보면서 말없이 한참 서 있게 하는지 모른다. 그 백목련 꽃망울이 움찔대며 겨울을 나고 있다. 꽃이 피기도 전에 벌써 환하다.

붓같이 생겨서 목필이라 한다. 먹을 찍어 젊은 편지를 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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