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가지마다 참한 꽃이

5월에 삿자리를 깔고 봄날의 소풍을 즐기는 나무

by 온형근

귀룽나무의 꽃은 잔치를 하듯 푸짐하고 환하다


나무들 아직 스산하여 쓸쓸한 가지만 내놓고 있다. 오직 귀룽나무만 봄이 친하다. 다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그지없이 털어놓지 못할 때 귀룽나무는 싹을 전개한다. 그리하여 삭막하기만 한 풍경에 색감을 안겨 준다. 아직 꽃은 이르지만 새싹이 내는 연푸름은 사람을 어루만지기에 넉넉하다. 귀신 쫓는 나무라고 잔가지를 회초리로 만들어 귀신 들린 사람을 때리면 귀신이 물러간다고 할 만큼 잔가지가 늘어지며 부드럽고 연하다.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취발이의 복식은 "등에 학을 그린 청창의를 입고 붉은 띠, 푸른 행전에 귀룽나무 생가지를 들고 있다. 쇠뚝이로 나올 때는 곤장을 들고 있다."고 했다. 청창의는 벼슬아치가 평상시에 입던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갈라져 있는 푸른 색 웃옷을 말한다. 행전은 각반으로 바지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 매는 것이다. 반듯한 헝겊으로 소맷부리처럼 만들고 위쪽에 끈을 두 개 달아서 동여맨다. 이때 취발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귀룽나무 나뭇가지이다. 취발이는 귀룽나무 나뭇가지로 땅을 쳐서 노장을 물리친다. 그런 후에 남아 있는 소무를 유혹하여 살림을 차린다.

귀룽나무000.jpg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 운동장 건너편에는 귀룽나무가 5월을 수놓는다

귀룽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잎이 어느 정도 나온 다음 꽃이 핀다. 잎이 짙어갈 즈음 나무를 감추면서 하얀 꽃이 눈처럼 매달려 있다. 나무를 온통 순백으로 덮어 씌운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발산한다. 그야말로 꽃이 구름처럼 난만하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귀룽나무를 구름나무라 부른다. 흰구름과 같이 희고 순결한 꽃이 가지가 휘어질 듯 가득 달리기 때문이다. 꽃으로 유명한 나무들이 대부분 잎이 나오기 전에 꽃부터 활짝 핀다. 피고 나서 온갖 너스레를 다 떨고 꽃잎을 떨어뜨린다. 그런 후에야 잎을 틔운다. 귀룽나무는 잎이 먼저 나온 후 꽃이 핀다는 것이 다르다. 잎이 나온 후 꽃이 피는 나무들의 꽃은 크게 관심받지 못함에도 귀룽나무의 꽃은 마치 잔치를 하듯 푸짐하고 환하다.


꽃이 활짝 피는 5월에 삿자리를 깔고 봄날의 소풍을


나무의 윗 부분에서 줄기가 올라와 전체적으로 둥근 공 모양의 커다란 수형을 만든다. 원정형 수형이라고 한다. 어린가지는 자갈색으로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방향 식물이다. 파리가 이 냄새를 싫어해서 파리 쫓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파리를 쫓아내는 게 아니라, 파리가 피해 다니는 것이니 꽃이 활짝 피는 5월에 삿자리를 깔고 그곳에 앉아 귀룽나무 가지를 꺾어 두르고 봄날의 소풍을 즐길 만하다. 『남북한 말 비교 사전』에 삿자리는 남한에서 갈대로 엮은 자리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갈대나 구름나무(귀룽나무) 껍질 같은 것으로 걸어서 만든 자리라고 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귀룽나무의 속껍질로 결은 삿자리를 '구름자리 또는 귀룽자리'라고 한다.

귀룽나무는 대단한 위용을 지닌 큰 몸집을 자랑한다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의 귀룽나무


운동장 가장자리에 귀룽나무가 있다

대단한 위세의 큰 몸집을 가졌다

이 나무가 꽃을 피울 때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현관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그 정도 거리에서야

귀룽나무의 위엄이 제대로 읽힌다

저절로 발길이 운동장 가로질러 바싹 들어서게 한다

다가가선 괜히 쳐다보고 서성거리면서 즐긴다


예전 이곳은 수목 식별을 공부하는 학교의 수목원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이제는 나무들이 모두 커서 도태된 나무들 속에 우세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학교 체육대회에 학과별로 자리 잡고 응원하는 장소로 매년 쓸모 있게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다.

빠르게 경관을 짜임새 있게 만들고 그늘을 이용할 수 있다

융건능에는 작은 물길 건너 평탄한 습지가 있다. 여기에 귀룽나무 숲이 전개된다. 잎이 무성할 정도로 나왔을 때, 이미 꽃송이를 매달아 아래로 쳐진다. 작은 꽃들이 모여 꼬리 모양으로 길게 달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무 가득 주렁주렁 푸짐하다. 나무 전체가 뭉실뭉실 피어나는 꽃송이다. 다만 너무 빨리 자라는 속성 나무이기에 작은 집안에 심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벚나무 종류로는 가장 생장이 빨라 단시일에 경관을 짜임새 있게 만들고 그늘을 이용할 수 있다. 고온 건조하고 척박한 곳에는 식재를 피하는 게 좋다. 귀룽나무 관상의 포인트는 전정을 하지 않고 자연형으로 늘어지는 가지의 유연함에 있다. 수피는 흑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며 매우 크게 자란다.


구황식물로 입맛을 내게 하는 쓴맛


우리나라에서 귀룽나무의 식용성이나 구황성이 기술된 것은 『조선의 구황식물과 식용법』이다. 새싹 잎은 이른 봄에 데쳐서 나물로 먹으며, 열매는 숙기에 날로 먹는다. 새싹 잎은 어떻게 해도 쓴맛이 강하다. 잘 삶아서 충분히 물에 불리면 가능한 대로 쓴 정도를 완화할 수 있다. 이것을 기름에 둘러 삶게 되면 다소라도 쓴맛을 거두게 되고 다소 쓴맛이 오히려 입맛을 자극하여 식욕을 돋우게 된다. 꽃이삭, 열매 및 새 잎의 소금절이, 햇나물의 구황 및 식용적 가치가 있다. 우리네 선조들은 이를 즐겨 먹었다.


귀룽나무-모음.jpg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7월에 까맣게 익는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7월에 까맣게 반짝이며 익는다. 까만색 익은 열매는 버찌와 유사하다. 이 나무의 열매로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중국본초도감』에는 귀룽나무의 열매를 '취리자臭李子'라고 하고, 안덕균의 『한국본초도감』에는 '앵액櫻額'이라 한다. "비위脾胃 기능을 강화시켜 설사를 그치게 하고 소화력을 높인다."고 하였다. 구룡목九龍木은 귀룽나무의 가지를 말하는데, 몸에 풍이나 습한 기운이 침범하여 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 허리 통증, 관절통, 척추 질환, 설사를 치료한다.


귀룽나무는 공공 장소의 조경수로 훌륭하다


귀룽나무는 관상 가치가 높다. 햇빛을 좋아하나 내음성도 있고 추위에 강한 수종이다. 맹아력도 강하다. 꽃이 필 때는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이므로 공원이나 학교의 조경수로 쓸모가 뛰어나다. 열매가 많아 야생 조류의 서식 환경 조성에도 유효한 나무이다. 수형이 웅장하면서 단정하니 그늘을 만들어 주는 녹음수로 적당하다. 초봄에 가장 일찍 잎을 내는 수종으로 연녹색의 새로 나온 가지가 특징이며 가을철 붉은 단풍도 매력이다. 야외 정자 근처 등에 심어 꽃과 그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예전부터 궁궐이나 마을 어귀, 사찰 주변의 습윤하고 비옥한 사질 토양에 많이 심었다. 공공 장소의 넓직한 공간을 활용하는 조경수로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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