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건널목

형근 씨의 협착소설.0006

by 온형근

흙길의 부드러운 관용이 끝나고, 도시의 단호한 아스팔트가 시작되는 경계였다. 형근 씨는 그 이질적인 감각을 발바닥으로 읽어냈다. 사람들은 가끔 ‘끝자락’이라는 말을 즐긴다. 형근 씨에게 ‘끝’이라는 단어는 물리적 종결이 아니라, 유예된 판단의 영역이었다. 몸은 늘 목적지 직전에서 가장 가혹한 청구서를 내미는 법이니까.

척추관 깊은 곳에서 신경을 긁는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다. 형근 씨는 건널목 앞에 멈춰 섰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앉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타다, 우리 잠깐 ‘괄호’ 좀 치고 가자.”


형근 씨의 나직한 말에, 손에 들린 타다가 조용히 관절을 펴며 지면에 다리를 내렸다. 괄호. 그렇다. 걷는 문장이 이어지다 잠시 숨을 고르는 부연 설명의 시간. 타다는 군말 없이 형근 씨의 무거워진 엉덩이를 받아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걷다가 멈추는 행위는 ‘단절’이나 ‘실패’로 읽힌다. 연속성을 잃은 이동은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되니까. 하지만 형근 씨는 타다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직립보행의 신화는 과대포장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은 꼿꼿하게 서서 멈추지 않고 걷는 것에 있는 게 아니다. 무너지려는 중력을 거스르며, 기어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그 ‘복원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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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앉았다는 것은 두 번 다시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핍의 기록이 아니라, 끈질긴 회복의 증명이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거대한 도시의 흐름이 붉은빛 하나에 숨을 죽였다. 신호등은 시간을 분절하고, 속도를 규정하며, 타인의 자유를 잠시 압류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강제된 정지는 걷는 자에게 유일한 합법적 휴식을 허락한다. 멈춰도 비난받지 않는 시간. 형근 씨는 그 붉은 허락 속으로 깊숙이 침잠했다.

앉는 순간, 통증의 질감이 변했다.

걸을 때의 통증이 척추를 향해 쇄도하는 날카로운 ‘침략’이라면, 앉아 있을 때의 통증은 성벽 밖에서 서성이는 ‘포위’에 가깝다. 침략은 비명을 부르지만, 포위는 사유를 부른다. 형근 씨는 비로소 공격받지 않는 상태에서 타다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이 알미늄과 플라스틱의 결합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도구가 고장 났을 때 비로소 그 존재가 드러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형근 씨에게 타다는 고장 나지 않아도 늘 말을 건넨다. 내 몸의 연장이자, 내 의지의 외장하드.


“형근 씨, 쉬는 건 멈추는 게 아니야.”


타다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환청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주체가 오랜 시간 살을 맞대며 만들어낸 공명(共鳴)이다.


“그래. 쉼은 멈춤이 아니지. 몸이 보내는 비명을 언어로 번역하는 시간이지.”


형근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어야 선율이 완성되듯, 보행에도 멈춤이 있어야 이동이 완성된다. 우리는 멈추기 위해 걷는 것인가, 걷기 위해 멈추는 것인가. 아마도 그 둘은 서로의 꼬리를 무는 뱀처럼, 생(生)이라는 원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형근 씨는 오늘의 산행을 마음속 법정에 세웠다. 피고는 ‘두 번이나 주저앉은 육체’. 그러나 판결은 신속했다. ‘피고는 여전히 목적지를 향해 의지를 투사하고 있다. 고로 무죄. 아니, 충분히 유죄(有罪)할 만큼 치열하다.’ 살아있다는 것은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고,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세계와 마찰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신호등의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초록불이 켜졌다. 정지해 있던 세계의 빗장이 풀렸다. 엔진 소리가 으르렁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리듬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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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근 씨는 서두르지 않고 엉덩이를 뗐다. 타다를 접어 다시 지팡이로 만드는 동작. ‘딸깍’ 하는 소리가 작은 의식(儀式)처럼 울렸다. 그것은 휴식이라는 괄호를 닫고,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타다야, 가자. 아직 문장이 안 끝났어.”


말은 짧았으나, 그 여백에는 묵직한 신뢰가 고여 있었다. 타다는 대답 대신 형근 씨의 손아귀 안에서 단단한 그립감으로 존재를 알렸다. 말이 없는 자리에 오히려 동행의 확실함이 깃들었다.

형근 씨는 건널목을 건넜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그 짧은 구간은, 단순히 길을 건너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통증이라는 파도를 넘어, 자신만의 속도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조용한 혁명이었다.

두 번의 쉼표가 찍힌 악보였지만,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절뚝이면서도 우아하게, 자신의 생(生)을 연주하며 건너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늘도 여여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