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없는 54분

형근 씨의 협착소설.0005

by 온형근

통증이 부재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통증의 존재를,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한다. 아프지 않은 날의 걸음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축복에 가깝다는 사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는다. 연구소까지 쉬지 않고 걸어온 54분의 기록은 단순한 시간 단축이 아니라, 그의 몸이 그에게 건넨 기적 같은 화해의 손길이었다.

형근 씨는 연구소 입구에 서서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 없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54분. 평소라면 1시간 30분, 통증이 심한 날엔 1시간 40분도 넘게 걸리던 3.7km의 산행 출근길이었다. 5년째 이어온 ‘산출 시즌 5’의 220번째 기록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숫자는 언제나 냉정하다. 하지만 오늘의 숫자는 냉정하지 않았다. 숫자 하나가 사람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몸이 “살아 있다”고, 그리고 그 살아 있음이 늘 같은 모양은 아니라고. 어제의 법칙이 오늘의 법칙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은 이렇게 가끔 한 번씩 증명한다.

형근 씨는 제 손에 들린 타다를 내려다보았다. 접힌 채로, 오늘 한 번도 펼쳐지지 못한 채로.


“타다, 너 오늘… 한 번도 펴지질 못했구나.”


타다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형근 씨는 그 침묵이 묘한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느꼈다. 보통의 출근길이라면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한 번,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며 또 한 번, 그리고 청련암 입구에서 반드시 타다를 펼쳐 엉덩이를 붙여야 했다. 척추관 협착증이 보내는 통증의 신호는 그만큼 규칙적이고 집요했으니까.

그 규칙은 늘 “통증의 규칙”이 아니라 “생활의 규칙”이 되었다. 형근 씨는 이미 통증에 맞춰 시간을 짜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음을 접고, 마음을 접기 위해 다시 타다를 펼치는 사람이었다. 통증이 사람을 망가뜨린다기보다, 통증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 가진 적응의 능력이고, 동시에 적응이 가진 서늘함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건널목의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는 짧은 순간조차 그는 쪼그려 앉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청련암을 지날 때도 다리는 묵직한 통증 대신 경쾌한 리듬을 탔다. 2026년 들어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형근 씨는 그 ‘없었던 일’이 오늘 일어났다는 사실 앞에서 기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몸이 잠깐 마음을 풀어준 날에는, 마음이 괜히 몸을 시험하려 들기 때문이다. 기쁨이 지나치면 곧바로 방심이 되고, 방심은 통증의 귀환을 부르는 초대장이 된다. 그는 그것을 너무 여러 번 겪어왔다.

형근 씨는 목과 귀를 감싸고 있는 두툼한 방한용품을 만지작거렸다. ‘수진’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보통은 산을 오르다 보면 체온이 올라 겉옷을 벗고, 모자를 벗고, 장갑을 주머니에 찔러 넣는 부산한 과정을 겪는다. 몸이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두툼한 귀마개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 몸이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혹은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오직 ‘걷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했다는 증거였다.


"이상한 날이네. 귀마개 때문에 그런가?"


말은 타다에게 던졌지만, 사실은 몸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원인이 뭔지”를 알면 안심할 수 있다. 인간은 원인을 알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몸의 세계는 늘 통제보다 ‘허락’에 가깝다. 오늘의 54분은 형근 씨가 뭔가를 ‘해낸’ 시간이라기보다, 몸이 그에게 잠깐 내어준 ‘통행증’ 같은 것이었다.

잠깐—형근 씨는 문득, 타다가 오늘 유난히 조용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라면 앉힐 자리를 찾느라 눈이 먼저 바빠지고, 펼칠 때마다 마음이 한 번씩 꺾였을 텐데 오늘은 그 꺾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허전했다. 기쁨 속에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느껴졌다. 그 자리가 글의 자리였다.

형근 씨는 피식 웃었다. 맞다. 그의 ‘협착일기’는 역설적이게도 통증이 주는 선물이었다. 타다에 앉아 쉬어야만 하는 그 틈새의 시간에,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쓴 글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통증이 없으니 쉴 틈이 없었고, 쉴 틈이 없으니 문장이 태어날 시간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곤 걷는 도중 렌즈 방향만 대강 짐작으로 찍은 흔들린 셀카 몇 장뿐이었다.


“형근 씨,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질주였네요.”


타다가 정말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아니, 말하지 않았는데도 들리는 소리였다. 동반자란 원래 그렇다.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말이 없어도 대화가 성립해서 동반자다.


“그래. 덕분에… 글을 하나도 못 썼어.”


그는 그 말을 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못 썼다는 사실이 불만이 아니라 증거였기 때문이다. ‘글을 못 쓸 만큼 아프지 않았다’는 증거. 오늘의 결핍은 오히려 축복의 영수증이었다.

형근 씨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고통이 없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통증이 부재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통증의 존재를,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한다. 아프지 않은 날의 걸음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축복에 가깝다는 사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는다. 연구소까지 쉬지 않고 걸어온 54분의 기록은 단순한 시간 단축이 아니라, 그의 몸이 그에게 건넨 기적 같은 화해의 손길이었다.



삶의 많은 진리는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통증이 잠깐 물러난 자리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이 정도가 원래였구나.” 원래의 상태를 잠깐 되찾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감사하게 된다. 감사는 도덕이 아니라 생리다. 살만하면 고마워진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후배 김 박사였다. 형근 씨는 올라오던 흥분을 잠시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일상의 업무가, 원고 마감이 다시 그를 현실로 잡아당겼다. 현실은 늘 기적의 뒤통수를 치듯, ‘할 일’로 사람을 붙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붙듦이 덜 억울했다. 몸이 가벼우면, 의무도 덜 무겁게 느껴지는 법이다.

통화를 마치고, 형근 씨는 타다를 연구소 벽에 기대어 세웠다.


“그래, 기록은 언제나 깨지라고 있는 법이지.”


그 말은 체념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기술에 가까웠다. 기록이 깨진다는 건, 기록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살아 있는 것은 늘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대체로 죽어 있다.

형근 씨는 오늘의 기쁨이 내일의 일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 욕심일지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욕심인지 아닌지는 내일이 판단할 일이고, 오늘은 오늘의 몫으로 충분했다. 아니, 당장 오늘의 퇴근길이 기대되었다. 세상에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를 기록의 날.

그는 가벼워진 허리를 펴며 연구실 문을 열었다. 몸도 마음도 맑은, 참으로 드문 아침이었다.


“타다, 오늘은… 고맙다. 네가 펼쳐지지 않은 날이라 더 고맙다.”


타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늘의 여운을 오래 남기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