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근 씨의 협착소설.0009
형근 씨는 내복을 단단히 챙겨 입고 산행을 나선다. 마침 아들 ‘결’을 꼬드겨 함께 산을 오르기로 했다. 오늘도 형근 씨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서 쪼그리고 앉아 쉬는 일이 없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번 산행 내내 별 탈 없이 협착 통증을 소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굳어진다.
내원재를 오르며 결하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형근 씨는 자신의 옷차림을 눈여겨 살폈다. 입고 있던 파카의 지퍼를 내려 상의를 오픈했다. 벗기에는 아직 이르다. 옷을 양팔에 걸친 채 천천히 오른다.
확실히 바람이 거센 도시의 길을 지나 숲에 들어오면 바람은 잔잔해지고 고요가 찾아온다. 이 고요함이야말로 숲이 주는 가장 큰 자산이다. 오는 길가에서는 내복 덕분에 찬 바람이 몸을 뚫지 못했는데, 유난히 엉덩이 쪽만은 차갑게 느껴졌다. 다른 곳은 내복과 여러 겹의 옷들로 무장되었는데, 왜 하필 엉덩이 쪽으로만 한기가 틈입하는 것일까.
아무튼 산속에 들어오니 그 한기마저 사라졌다. 오로지 한 발 한 발 내원재를 오르며, 숲에서의 하루를 격렬하게 즐길 뿐이다. 다시 시작이다.
발길에 채인 잎이 바스락대는 소리가 살짝 햇살을 튕기며 형근 씨의 청각에 담긴다. 햇살이 마른 낙엽을 비추고 반사되는 빛은 시각을 찌르지만, 낙엽이 발에 채이며 긁히는 소리는 햇살의 파편과 함께 귀에 도달한다.
“낙엽... 밀려오는 소리는 햇살의 파편에 실려서 귀에 도달한다.”
형근 씨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런 표현이 좋다. ‘햇살’이다. 햇살의 파편에 실려 귀에 닿는 소리. 날씨가 추워 입이 얼얼하여 발음이 쪼개지지 않는다. ‘아예’ 하며 입을 풀기도 한다. 이 순간의 안온함에 몇 번이고 속으로 흐믓해 한다.
감각은 겹쳐진다. 소리는 빛과 함께 오고, 촉각은 시각과 뒤섞인다. 형근 씨가 느끼는 세계는 단순한 오감의 합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교차하고 융합하며 빚어내는 감각의 교향곡이다.
“타다야, 오늘은 소리가 빛으로 들리는구나.”
형근 씨의 나직한 고백에 타다는 묵묵히 낙엽 밟는 소리로 화답했다.
오른쪽 길 옆으로 하얀 비둘기 떼가 앉아 있다. 저것은 일본 목련의 낙엽이다. 일본 목련 잎이 떨어져 뒤집히면, 그 은빛 뒷면이 마치 비둘기가 앉아 햇살을 쬐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저 많은 비둘기 군락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산속에 떨어진 일본 목련 씨가 자연 발아하고, 새들을 통해 전파되어 곳곳에 군락을 이루었다. 사실 이쪽 목련들은 주변 공공사업소 주변 울타리로 심었던 것들이 번져나간 것이다. 그래서 곳곳에 떨어진 잎들이 햇살에 반짝일 때면, 형근 씨는 비둘기 군락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형근 씨는 오르막길에서 그러한 발견들을 즐긴다. 착각이 아름다움을 만들고, 아름다움이 곧 형근 씨의 진실이 된다. 비둘기가 아니어도 좋다. 비둘기처럼 보이면, 그 순간만큼은 비둘기인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착각도 때론 훌륭한 풍경이 되지, 그렇지?”
타다는 말없이 은빛 낙엽 위를 짚으며 동의했다.
좋은 동무인 산행 앱을 본다. 2025년을 대비해 오늘로서 224회째 산행 출근을 함께했다. 오늘이 26일이니, 앞으로 4~5일이 더 남았다. 연말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걷는다면 229회, 혹은 230회 언저리에서 2025년은 마무리될 것이다.
형근 씨는 작년보다 기록이 상당히 충실해졌음을 실감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무엇보다 분당 병원의 주사 치료 결과가 좋아, 이번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째 협착 통증 없이 걷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대단한 발견이고, 축복이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기쁜 일이다. 2025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이런 큰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올 한 해 형근 씨가 성실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자신을 정직하게 이끌어왔음을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다.
기록이란 숫자가 아니다. 태도다. 224회를 걸었다는 것은 224번 포기하지 않았다는, 224번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결은 아빠에 비해 뒤쳐져 보이지 않는다.
“빨리 와라.”
옷을 다 벗기에는 땀에 젖은 어깨 쪽이 춥고, 파카 지퍼를 내린 가슴 쪽은 몹시 차다. 등은 땀으로 젖었고 가슴은 차가우니 앞뒤의 온도 차가 극명하다. 그러니 옷을 벗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는, 그 애매한 상태로 산행을 이어간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형근 씨는 이제 2km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여전히 왼쪽 둔부에 뻐근한 기운이 살짝 찾아오는 순간, 완이제(玩怡岾) 고개를 만난다. 기쁨을 즐겁게 완상하는, 기쁨을 바라보는 고개. 예전엔 거뜬했던 완이재 쯤에서 오늘은 둔부 뒷면에 뻐근한 기운이 확 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큰 통증으로 번질 것 같지는 않다.
“결아, 잘 따라오고 있니?”
“네.”
아들의 대답은 짧지만 분명했다. 돌아보니 아이의 얼굴 양 볼이 빨갛다.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키득거리며 즐거워한다. 아마 혼자 중얼거리며 연기하듯, 산행 중에도 딴생각에 빠져 혼자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다.
형근 씨를 바짝 따라오면서도, 아빠가 대체 무슨 말을 하나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부모는 그 세계를 엿볼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의 세계는 겹쳐지고 있으니까.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건널목에 앉아서 신호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식은땀 탓인지 바람이 차갑다. 무릎을 타고, 내복을 뚫고 차가운 기운이 밀려들어온다.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추위. 하지만 형근 씨는 웃는다. 오늘도 아들과, 그리고 타다와 함께 걸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하루였다.
“수고했다, 타다.”
형근 씨는 타다를 접으며 낮게 속삭였다. 타다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형근 씨의 품 안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