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동안 많은 시인 묵객이 바라본 꽃
보름달 휘영청, 옥잠화 환한 다소곳
오늘이 보름이다. 음력 칠월이니 칠석도 지난 그런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다. 보름달, 휘영청 밝을 때 바라보는 옥잠화를 상상한 적이 있는가.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흰색을 순백이라고 한다. 달밤의 순백은 너무 밝아서 눈을 멀게 한다. 당연히 눈길을 끈다. 거기다 슬쩍 반짝이는 흰색은 더더욱 청승맞고 구슬프다. 처량할 정도로 서럽다. 달빛에 서로 뽐내는 옥잠화가 그랬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를 개교하면서 조경설계를 맡았고, 시공까지 직접 완료한 일이 까마득하다. 북향의 건물 아래 식재할 수 있는 음지 식물로 당시 덜 알려진 구상나무를 고집하였다. 물론 주목도 함께 도입하였다. 문제는 지피식물이었다. 나는 전체를 옥잠화로 식재하기로 결정하였고 전체 군식으로 처리하였다.
"늘 그늘지는 북향의 건물 화단에 옥잠화를 심을 생각을 누가 했을까요. 여름방학 전후로 계절을 황홀하게 하는 이곳의 경치는 학교 내의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달라요."
"글쎄요. 누군가의 식재 설계 의도가 개입된 것이겠지요."
그랬다. 1996년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조경계획설계 및 시공을 주도했다. 아주 미미한 예산으로 적재적소의 식재를 포인트로 삼아 자생식물 위주의 조경식재를 시도한 것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 당시는 절대로 흔하게 볼 수 없었던 식물을 식재 목록으로 채택하여 추진한 것이다. 현재의 전문학교 운동장에 조성한 체험 식물원은 없어지고, 건물 주변 화단과 중앙 정원의 식재 식물이 남아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옥잠화가 필 때쯤이면 한번씩 듣게 되는 관심어린 지청구다.
집단미의 화신
20여년 지난 지금 이 옥잠화는 세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갱신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집단미를 보여준다. 늦은 밤 달빛에 어울리는 옥잠화를 보면 몸서리친다. 서늘함과 몸 시리도록 깨끗한 고결한 흰색이 저리고 아파서 전율한다. 오늘 아침 이른 출근길에 만난 저 옥잠화의 심성으로 절로 발길이 머문다. 주변을 돌다가 결국 근처의 잔디밭을 만나고, 잔디를 미끈하게 깎아서 옥잠화의 흰 세상이 빛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본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그린 동궐도에도 옥잠화는 화계花階에 식재되었다. 경사진 곳을 아름답게 조성하는 방법으로 화계가 도입되었다. 동궐도에서 화계는 총 14곳에서 나타나는데, 화계는 관상을 목적으로 한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공간이므로 모란, 작약, 앵두나무, 옥매, 진달래, 철쭉, 조릿대, 옥잠화, 원추리 등 화관목이나 초화류 등을 위주로 심었다. 안평대군도 높고 우아한 꽃으로 매란국죽을 들었으며, 용모가 아름답고 고운 것으로 모란을,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꽃으로 옥잠화, 목련, 치자를 헤아렸다.
옥잠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자기를 위해 뭔가를 하게끔 이끈다
소복이 그렇고 하얀 치아가 그렇다
단순한 표정으로 풍기는 아름다움을 백치미라 했던가
옥잠화는 거기다가 준열한 유혹의 손짓도 가졌다.
아무나 쉽게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가
준엄한 기품으로 함부로 접근하는 틈새를 거부한다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는 무언의 표정으로 반듯하다
참으로 이 아침 기껍다
기어이 옥잠화의 오래된 미소를 되찾는다
피할 수 없는 인연이다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만남이다
얄궂은 게 소리 소문 없이 빙글 돌아와서는
어느듯 슬쩍 다가와 환하게 웃고 있다
비록 구근의 힘이 떨어져 비녀의 크기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모여 핀 꽃들이 밝혀주는 환함은 가히 눈을 씻어내게 한다.
달밤에 이 흰꽃은 더욱 처연하다
옥비녀꽃, 옥잠화玉簪花. 달밤에 이 흰꽃은 더욱 처연하다. 처연함도 목매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 준 셈이지. 조선의 부인들은 옥잠화를 심고 가꾸며, 달빛 밝은 날 선녀가 되는 환상을 지녔을까.
뭉툭 하얗게 피며 비녀처럼 고개를 내밀고는 달빛에 부서진다. 부서진 비녀는 선녀의 날개를 닮아 있다. 찢어진 비녀 자락은 치맛자락처럼 흩날린다. 넓디 넓은 옥잠화 잎은 굵은 잎맥을 따라 염원을 모으고 있다. 그저 잘 생긴 옥비녀 하나 달빛에 훤하라고. 나를 버려 존재하고 있음을 비추어낸다. 옥잠화에게 잎은 잘 만들어진 비단주머니다. 옥잠화의 전설에도 선녀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이 선녀는 세상 물정에 어느 정도 익숙한 나이 든 선녀일 것이다. 옥잠화는 그렇게 중후한 매력을 풍긴다.
오랜 옛날, 중국 석주 땅에 '장'이라는 젊은이가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리를 잘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피리 부는 사나이'라 했습니다. 밤마다 정자에 앉아 피리를 불곤 했는데, 그때마다 강물이 춤을 추고 지나던 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곤 했습니다. 달나라 선녀가 청아한 소리에 반해 정자로 내려와 함께 밤을 새웠습니다. 새벽닭이 울자 선녀는 달나라로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는 선녀에게 정표를 하나 남기고 가라 했습니다. 선녀가 끼고 있던 옥비녀를 빼 건네는 순간 땅에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다음해 그 자리에 하얀 꽃이 피어났으니 옥잠화였습니다.
사람들은 비비추와 옥잠화를 혼동한다
이제는 학교의 화단이나 집 주변과 길가에 심어져 있어 자주 만나는 식물인 옥잠화를 비비추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묻는다. 옥잠화나 비비추는 같은 속에 포함되는 식물이어 매우 가깝다.
옥잠화는 학명이 Hosta plantaginea이고 비비추는 Hosta longipes이다. 중국 자생종인 옥잠화는 우리나라 자생종인 넓은옥잠화와 산옥잠화와는 차이가 있다. 넓은비비추와 산비비추라 부르면 좋을 정도로 비비추에 가깝다. 옥잠화, 산옥잠화, 비비추, 일월비비추, 주걱비비추, 좀비비추의 6종류가 많이 생산되어 이용되고 있다. 햇빛이 드는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기본적으로 음지식물이다. 생육환경에 대한 적응이 좋다. 잎과 꽃이 아름다워 군식과 색 배합이 비슷한 여러 Hosta 종류의 혼식, 강조식재 등으로 연출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잎 모양, 크기와 질감은 다르면서도 유사하여 자연스럽게 공간에 시원하거나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둡고 그늘진 곳에 밝은 느낌을 더해줘서 색을 이용한 조화와 대비를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근계가 치밀하여 토양의 유실을 막고 피복력이 탁월하여 잡초억제력도 뛰어나다. 지피식물로 탁월하다. 내한성도 강하며 서늘하고 보수력이 좋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초봄에 비가 내린 후 구맹句萌을 심는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한 『고농서국역총서4-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옥잠화는 초봄에 비가 내린 후 처음 싹튼 것[句萌: 초목이 처음 싹틀 때 구부러진 것은 ‘구句’, 바로 선 것을 ‘맹萌’이라 함]을 심고 기름진 흙을 부지런히 주면 산다. 나눌 때는 쇠붙이로 된 그릇을 꺼린다."고 하였다. 중국 원산으로 재배하는 다년초이다. 잎은 모두 고사리처럼 뿌리에서 나오는 근생엽으로 윤기가 있다. 꽃은 꽃줄기 끝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끝까지 핀다. 연한 자주색이기도 한 순백색으로 저녁에 꽃이 핀다. 그러니 달빛에 얼마나 숙연한가. 향기가 좋고, 다음 날 아침에 시든다. 열매는 삭과로 밑으로 처지고 씨앗 가장자리에 날개가 있다.
연행 기록인 '부연일기'에 나오는 옥잠화 이야기
『부연일기』는 순조 28년(1828, 청 선종 8) 진하 겸 사은사행進賀兼謝恩使行의 의관 및 비장으로 수행한 저자 미상의 연행 기록이다. 이 책의 '수목樹木'에 책문 이후부터의 나무와 꽃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압록강에서 책문까지는 110리에 달한다. 책문은 사행이 청으로 들어갈 때와 북경에서 돌아올 때, 무역이 활발히 일어났던 지역이다. 이 책문에서 일어난 대청 무역의 형식을 책문무역이라고 부른다. 책문은 가자문架子門 또는 변문邊門이라고 하는데, 압록강 건너 만주의 구련성九連城과 봉황성鳳凰城 사이에 있다. 그 중 옥잠화에 대한 부분의 묘사는 이렇다. 시장에서 옥잠화가 활발하게 거래된다. 집에 분재로 길러 그 꽃을 마음에 둔 사람에게 선물도 한다. 옥잠화의 꽃 향기는 코가 막혔을 때 대고 재채기를 할 수 있도록 콧구멍에 대고 냄새를 맡는 용도로 두루 이용했다. 통 속에 옥잠화의 꽃을 넣어서 유통한다는 것이다.
저자에서 파는 것으로는 옥잠화 제일로 쳐서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이 이것으로, 집집마다 분재하여 꽃을 따서 선사한다. 대저 이 꽃은 향기가 강렬하여 다른 꽃의 비유가 아니고, 비연鼻煙의 재료는 오로지 옥잠화의 향기에 의지하는데, 성안의 비연 파는 자들을 보면 꽃을 따서 비연 통 속에 넣어 판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성환 (역) ┃ 1977
옥잠은 풍류객을 은유하는 잠리에도 사용한다.
근재집謹齋集은 고려 충숙왕 때의 문인 근재 안축의 시문집이다. 조선 영조 16년(1740)에 간행되었다. <관동별곡>, <죽계별곡> 따위의 경기체가 작품이 실려 있다.『 근재집』 제1권, '총석정에서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며 짓다'에 보면,
사선봉이 바닷가에 있어 / 仙峯在海濱
둘러보니 기이하고 장엄하네 / 觀覽奇且壯
난간에 기대 사방을 돌아보니 / 倚欄四回顧
긴 하늘은 안개 낀 파도와 닿았네 / 長天接煙浪
(......)
신라 때의 네 국선의 무리 / 羅代四仙徒
고운 모습으로 정자 위에서 놀았네 / 簪履遊亭上
당시 비석이 아직도 남아 있어 / 當時碣猶存
어루만지니 괜스레 슬퍼지네 / 摩挲空悵望
(......)
위의 고운 모습을 뜻하는 잠리簪履는 선왕先王 때의 옛 신하를 잊지 않는다거나 미천한 옛 신하를 기억하여 등용한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로 풀면 맥락이 잘 통하지 않는다. 안축은 사선(四仙)들의 모습을 표현할 때 ‘잠리’를 사용하였는데, 〈삼일포시(三日浦詩)〉에서는 “배를 타고 맑은 향기 뜨려는데, 고운 풍모 따를 방법이 없네.〔乘舟挹淸芬 簪履無由從〕”라고 하였고, 〈관동별곡關東別曲〉 3장에서는 “옥비녀와 진주 신 삼천의 무리〔玉簪珠履 三千徒客〕”라고 하였다. 곧 잠리는 옥비녀를 꽂고 진주 신을 신은 풍류객이란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 한국고전번역원 ┃ 서정화 안득용 안세현 (공역) ┃ 2013)
이렇게 옥잠은 풍류객을 은유하는 말로도 사용한다.
원(元)나라 의학교수 위역림危亦林이 5대에 걸쳐 선조들이 치료한 경험방을 모아 편성한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에는 우해제독又解諸毒이라는 처방이 나온다. 옥잠화 뿌리를 갈아 물과 함께 복용을 한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독에 사용한다고 하였다. 옥잠화 뿌리는 옥잠화근玉簪花根이라 하여, 곪은 부위를 다스리고 독을 없애며 피를 멎게 한다. 겨드랑이나 목, 귀 등에 멍울이 생기는 증상, 목구멍에 생긴 염증, 목 안에 가시가 걸린 것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옥잠화의 또 다른 쓰임새를 눈여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