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정취가 심성 가득 널려 있는 그리움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나는 나무

by 온형근

첫 부임지, 첫 학생들의 고즈넉한 심성을 닮아 있는 산수유


이천에 살 때 매년 봄이 되면 백사면의 산수유를 보러 다녔다. 1986년 9월부터 1991년 2월까지니까 이천농업고등학교에서의 첫 교사 생활은 4년 6개월, 9학기를 생활한 것이다.

그때는 산수유 축제니 뭐니 하면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던 때가 아니었다. 다만 제자들이 백사면에서 많이 살아 자랑하였기에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버스로 통학하며 이천읍까지 학교를 다녔는데, 읍내 학생들에게 텃세를 많이 받아 기가 꺾여 있기도 해서 격려하며 좋은 동네에 사는 것을 추켜주고는 했다. 남한강의 절경과 함께 농촌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가 학생들의 심성을 닮아 괜히 친근하고 좋았다.

이천 백사 산수유 축제 계절

산수유 씨앗을 얻고 싶었으나 말을 전하지 못했던 시절


훨씬 후에야 산수유 축제를 매년 개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산수유나무 열매를 벗겨 자녀들 대학 공부를 시킨다는 곳인데 가격이 좋지 않고 중국 제품이 많이 들어와 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열매를 벗긴 씨앗은 어떻게 하니?"


"그냥 버리는데요."


보통 농가에서는 씨앗을 빼고 과육을 취하여 약재로 법제한다. 그러나 나는 씨앗이 필요하니 '열매를 벗긴 씨앗'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산수유 과육을 취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농가와 나무를 파종하여 자생조경수목을 개발하고자 했던 내 입장이 그렇게 달라 있었다. 지금이라면 쉽게 말문을 열고 용건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왠지 씨앗이 필요하다는 말이 불경스러웠다. 아마 노동하지 않는, 일을 통하지 않는 언사에 스스로 제어 동작을 취했을 것이다. '열매를 벗긴 씨앗'을 얻는다고 몇 년을 벼르다가 결국은 실천하지 못했고, 조금씩 모은 씨앗으로 파종하여 묘목을 생산했다.

산수유 열매를 따서 씨앗을 빼고 건재로 유통한다

산수유나무는 2년간 노천매장을 해야 싹이 나온다


산수유나무 파종은 까다롭다. 교과서에는 노천매장 1년을 더 하고 파종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다른 씨앗을 파종하는 김에 함께 파종했다. 그랬더니 1년 동안 싹도 나지 않은 묘상의 제초 작업을 꼬박 했던 기억이 새롭다. 비효율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2년만에 정확하게 묘목이 나왔다. 그러면서 조경수로 각광을 받으면서 아파트 등에 많이 식재되어 꽤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해진 나무이다. 보통 생강나무와 비슷하여 서로 비교되기도 한다. 이천 백사면 송말리에서 도립리를 거쳐 경사리에 이르는 산수유 축제에 대한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글이 그럴듯하다.

매년 4월 초 순 새봄을 알리는 산수유꽃축제가 개최된다. 공해에 약하지만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아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보다 먼저 개화하는 봄의 전령사 산수유 나무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수형과 아름다운 열매로 조경수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큰 그늘을 만들어 여름철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수유나무는 특히 이른 봄에 개화하는 화사한 황금색의 꽃이 매우 인상적이다. 행사 개최지인 백사면은 수령이 100년이 넘는 산수유가 자생군략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백사면 송말리, 경사리, 도립리 등 원적산 기슭의 농가에서 산수유나무로 뒤덮여 있어 초봄에는 노란 꽃이, 가을엔 빨간 열매가 온 마을을 감싸는 전국 제일의 산수유 산지이다. 이천에서 가장 높은 원적산(634m) 아래 자리한 영원사를 향해 가는 길은 송말리에서부터 도립리를 거쳐 경사리에 이르기까지 산수유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원적산 자락을 향하여 조금만 가다 보면 이내 주변 풍경을 노란색 원색으로 물들인 산수유 꽃 군락과 마주친다(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아름다운 봄 풍경에

산수유 군락은 환상이다

꿈을 꾸는 풍경이다

지리산 구례 산동면,

경북 의성 사곡마을,

경기 이천 백사마을 등이

산수유 꽃동산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산수유 군락의 봄 풍경

산수유나무의 꽃눈은 은밀하다


판화가 이철수는 산수유나무의 꽃눈을 보고 은밀하다고 했다. “개울가에 나갔더니, 산수유 가지가지마다 꽃눈이 보인다. 은밀하다! 은밀하다! 봄하고 산수유. 그렇게, 은밀한 내통이 있었구나! 죄많은 봄날이다. 그런 내통이야 무얼로 막나? 아내와 손 잡고 돌아오는 봄길. 부끄러움도 모르는 봄빛이 만장해 있는 간지러운 봄길.(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삼인)”


산수유 꽃은 나무가 꾸는 꿈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산수유 꽃은 나무가 꾸는 꿈이라고 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서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꽃망울 내 몸에 불릴까, 따다가 상처 내면 어쩌나


산수유 꽃망울을 내 뜨거운 몸에 불려 피어나게 할까, 따다가 상처를 내면 어찌 산수유 피는 봄을 맞을까라는 시를 소개한다.

산수유
─화전.50

무엇을 기다렸나 밟히는 곳마다 푹신한 탄력 지독하게 밭으로 내리꽂으며 위용처럼 즐기던 풀들이 삶터로 다시 찾아오고 있다 추위와 밤이슬과 서리에 한풀 꺾이더니 코를 비비면 새 한 마리 움찔하는 마술처럼 발바닥을 톡톡 치며 간질이며 다가온다 아찔한 봄 노래다 내게 주어진 호미자루는 손끝 닳아 마디어진 손톱의 아픔을 되돌려 준다 벅찬 날들이 생활을 바쁘게 이끈다 잠간씩 비쳐주는 햇살을 따라다니기에도 화전으로 하나 가득 널려 있는 그리움을 묻어내지 못한다 터지려고 산수유 노오란 꽃망울 봄내는데

아아 저들 내 뜨거운 몸에 불려 피어나게 할까 따다 상처내면 어찌 봄을 맞을까

(온형근, 연작시집- 화전, 우리글)

긴 겨울이 물러가며 생동하는 봄의 기운에 생명이 움트는 모든 현상을 산수유 꽃 핀 풍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요즘 그 과장된 표현으로 산수유를 광고하는 것을 본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는 카피로 유명한 산수유 가공식품 회사의 광고는 허위·과대광고가 아니라는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왔다. 산수유를 기르며 경제활동을 하는 농민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약초의 수치修治는 법제法製라고도 하며, 약의 성질을 그 쓰는 경우에 따라 알맞게 바꾸기 위하여 정해진 방법대로 가공 처리 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이론에 근거하여서 약용식물들을 가공을 하여서 약용식물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약성을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산수유의 수치법을 보면, 저절로 땀이 나고 식은 땀을 거두기 위하여 열매에 있는 이물질과 씨앗을 제거하고 생으로 이용하거나, 신장을 보호하고 정이 새어나가는 것을 틀어막기 위해 씨앗을 빼내 과육果肉을 온돌에 말리거나 술에 찌는 방법을 사용한다.


임금의 귀는 나귀의 귀처럼 생겼다


산수유는 중국 원산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제2권에는 신라 제48대 경문왕과 관련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설화와 함께 대나무 숲을 베고 대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 외쳤던 대나무 숲

그랬더니 그 뒤에는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났다고 한다. 당나귀는 산수유 앞에 꼬리를 내린 격이다.

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왕후와 나인들은 모두 알지 못했으나 오직 복두장(복두를 만드는 기술자임. 복두는 관의 하나) 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죽으려 할 때 도림사道林寺(경상북도 월성군 내동면 구황리에 있던 절)의 대숲 속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

그 후 바람만 불면 댓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

왕은 이 소리를 싫어하여 이에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그 소리는

“우리 임금님 귀는 기다랗다”

고만 했다.―도림사는 예전에 서울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숲가에 있었다(삼국유사, 제48대 경문대왕).


산수유는 낙엽소교목이라 정원 식재에 적합하다


낙엽 소교목이며 높이 4-8미터 정도 자란다. 수피는 연한 갈색 또는 회갈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불규칙하게 떨어진다. 꽃눈이 잎눈보다 동그랗고 크다. 잎은 마주나며 잎끝의 엽선葉先은 꼬리처럼 뾰족하고 잎밑인 엽저葉底는 둥글며 잎가장자리인 엽연葉緣은 밋밋하다.

산수유 나무의 사계절

잎뒷면은 분백색으로 누운 털이 있으며 맥겨드랑이인 맥액脈腋에는 갈색 털이 밀생한다. 측맥은 4-7쌍이고 엽선 쪽으로 활처럼 굽는다. 꽃은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갖춘 양성화로 꽃잎은 4개이며 뒤로 젖혀지고 수술 4개, 암술대 1개로 이루어졌다. 열매는 9-10월에 빨갛게 익어 한겨울까지 매달려 있다.


『 조선의 산열매와 산나물』에는 산수유 재배에 대한 방법을 과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산수유를 심을 때에는 약간 서늘한 사질양토가 좋고 묘목을 만들기에는 봄의 피안(彼岸 : 춘분의 3일 전과 3일 후 7일간) 때 쯤 9㎝로 높인 묘상에 폭 90㎝로 하여 15㎜의 체로 쳐서 퇴비, 들깻묵, 목회 등을 섞어 파종한 위에 15㎜로 흙을 덮고 얇게 짚을 덮는다. 가을쯤에는 45㎝ 정도의 묘목이 됨으로 다음 해 봄에 이것을 정식하면 좋다. 7~8년째에 왕성하게 결실을 하는데 관상용으로 정원 앞에 심어 두거나 특히 학교의 정원 등에 심으면 풍취가 더하여 좋은 것이다라 하였다.

산수유의 조경적 용도의 확장을 위하여 산울타리로 가능한가를 시험하고 있다

산수유로 산울타리를 시험하는 곳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수목원이다. 이곳에서는 스트로브잣나무도 산울타리용으로 시험하는 것을 보았다. 다양한 조경적 이용에 관한 관점으로 판단된다. 아직 산수유로 산울타리를 만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시도해볼 테마이다.


쉬나무[茱萸, 吳茱萸]ㆍ머귀나무[食茱萸]ㆍ산수유[山茱萸]


『제민요술』에서는 수유와 산수유의 차이부터 설명하고 있다. "수유(茱萸)는 먹는 것이지만 산수유(山茱萸)는 함부로 먹을 수 없다."고 하였고, 『농정회요』에는 수유[吳茱萸 : 쉬나무]와 식수유[食茱萸 : 머귀나무] 및 산수유를 함께 설명하였다. "수유나무[茱萸]의 품종은 2가지가 있다. 오수유(吳茱萸 : 수유)는 곳곳에서 자란다. 껍질은 청록색이며, 잎은 참죽나무와 비슷하나 넓고 두꺼우며 자색이다. 식수유(食茱萸 : 머귀나무, 산초나무류)는 잎은 누렇고 꽃은 녹색이며 열매는 가지 위쪽에 무더기로 달린다. 산수유(山茱萸)는 바로 함부로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옛 명칭으로 한결같이 수유(茱萸)라는 한자를 써오고 있지만, 쉬나무[茱萸, 吳茱萸]는 운향과의 Evodia danielli이고 산수유[山茱萸]는 Cornus officinalis이며 머귀나무[食茱萸]는 운향과의 Fagara ailanthoides이다.


조무연의 『원색한국수목도감』에 의하면


쉬나무는 "내한성이 강하고 해변이나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공해에 강하며 수세(樹勢)가 강건하고 생장이 빠르다. 열매는 삭과로서 제유하여 등유, 머릿기름, 피부병 약으로 사용하거나 디젤기름의 대체 에너지용으로 쓸 수 있으며 조류의 먹이가 된다. 꽃은 꿀이 많아 밀원식물로 좋다. 소엽이 7~16개이고 뒷면에 털이 있으며 열매는 원두인 것을 오수유(E. officinalis)라고 한다."


머귀나무는 "대부분의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3지목(三枝木) 같은 인상을 준다. 양수로서 내건성이 강하고 동백나무나 후박나무, 사스레피나무같은 상록활엽수와 함께 혼생한다. 줄기와 가지에 굵고 예리한 가시가 있어 줄기를 보호한다. 열매는 둥근 삭과(蒴果)로 11월에 익는다. 종자는 흑색으로 광택이 나며 매운맛이 있는데 향기가 적고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된다. 열매는 기름을 짜서 각종 재료로 이용하고 잎은 약제로 쓴다."


산수유는 "우산모양의 수형을 이룬다. 토심이 깊고 비옥적윤한 곳에서 생장이 좋고 내한성이 강하며 이식력도 좋다. 열매는 긴 타원형의 핵과로 광택이 있고, 8월부터 빨갛게 익기 시작하여 10월에 완숙한다.

산수유의 겨울눈이다. 꽃과 열매를 덜어내고 휴식의 시간을 취한다.

산골짜기에 얼음이 풀리고 아지랑이가 피는 3월 중순경이면 화사한 황금색 꽃이 피어 약 보름간 계속되며 가을에 진주홍색으로 익는 열매가 겨울 내내 붙어 있는 아름다운 관상수이다. 잘 익은 열매는 차를 만들어 먹을 수 있고 강정제의 약효도 갖는다. 번식 방법은 가을에 빨갛게 익은 열매를 채취하여 과육을 제거한 후에 반드시 2년간 노천 매장하였다가 봄에 파종하여야 발아한다."고 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여름과 가을 사이에 맑은 향을 담은 비단주머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