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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Jul 19. 2017

여름 고뿔차에 기대어

누군가는 뜻하지 않은 복에 겨워하고

연옥같은 나날들이 후딱 접혀지고 있다.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 삶의 서툰 방식으로

여름 한 가운데에서 뜨겁게 황차를 우린다.

언제부턴가 유일하게 차 우리는 시간이 내게 집중하는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짧지만 긴 시간이다.

여름 황차는 장마 기운이 있다. 쌉싸름하면서 새큼한 앵두를 닮았다.

샤프란차나 메밀차를 우려 차게 냉장고에 들여놓고 공무원반 아이들에게 몇 번 마시라고 주었더니 어제는 중간에 차를 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니 아침에 네 개의 스텐레스 물주전자에 우려 담는 일도 일과처럼 관행이 된다. 觀行이라고 말 하는 건 무심코 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의 얼굴을 떠 올리며 내가 싱긋 웃기에 하는 택어이다.

덩달아 나도 차게 만든 차를 마시곤 했는데 줄인다.

여름 황차로 든다. 화려하거나 깔끔하여 짜릿한 여흥은 없지만 눅눅하고 어눌한 맛이 일부러 젖어들지 않으면 접해 볼 수 없는 세계이다. 다행이다. 부족하고 어눌하고 빈한함에 나를 의탁하기에 고맙다.

충분하지 않은 아이를 충분한 조건으로 설정하여 끊임없이 편책하고 주마가편으로 함께 했기에 본인들도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손에 들고 인사하러 일부러 찾아온다. 믿기지 않는 함박 웃음이다. 충분히 준비하였기에 거기까지 도달한 거다. 준비되지 않은 어떤 학교의 응시생들을 본 적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대체 시간을 어찌 활용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어느해 모학교의 조경기능사 시험이었다.

여름 황차는 그런 면에서 다시금 부족함을 대하는 소중한 이치를 스미게 한다.

그 사이 네 주전자의 메밀차를 우려 냉장고에 넣었고 여름 황차로 지친 심성을 다스렸다.

여름 황차에 홀로 기대는 정서 또한 나 아닌 누군인 듯 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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