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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Dec 12. 2022

혼자 떠나야 얻을 수 있는 것들

코시국에 떠난 오스트리아 혼자 여행을 마치며

혼자서 떠난 오스트리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한국으로 온 지 이제 한 달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마주친 순간들이 떠오를 만큼 여운이 강하게 남았다. 심지어 귀국하는 날 카타르에서 스탑오버를 했는데 마침 비행기가 4시간이나 지연돼 카타르 항공에서 함께 새벽을 지새우며 같이 탑승을 기다린 한국인 두 분. 그리고 먼 타지의 뉴스 방송에 나온 이태원 참사 소식을 함께 보며 마음 아파했던 마지막 날. 혼자 티켓팅을 해놓고 설레지만 무서웠던 순간부터 우연히 만난 타인들까지 너무나 소중하게 남겨져 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2주 후, 오스트리아에서 함께 클래식 공연을 보고 밥도 먹은 부모님 나이뻘인 현주님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행지가 아닌 곳인데도 만났는데 이렇게 반갑고 그때의 느낌이 유지될 수 있는 걸까? 보통은 남녀가 여행지에서 만나 한국에서 보는 것을 기약하고 다시 만나 느끼는 설렘일 텐데 왜 나는 나보다 한참 연배가 있는 이 분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지 ㅎㅎ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 첫 어른의 모습을 갖추신 분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의 화두는 역시 여행이었다. 현주님은 이전에는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었지만 기회가 되어 다시 오스트리아에 오고 싶었던 분이고, 나는 혼자 여행을 한 적은 있지만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 혼자 떠나기가 무서워진 상태였었다. 그렇게 만난 둘이었기 때문에 혼자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격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현주님과 나이가 거의 비슷한 우리 엄마 이야기도 했다. 엄마가 현주님처럼 혼자 해외여행을 가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내가 더 이상 가이드? 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바람도 담아서. 그랬더니 현주님이 현명한 해결책을 주었다. 마치 반려동물의 분리불안을 해결하는 방법과 같은데, 함께 여행을 가서 처음엔 10분, 그다음엔 30분, 그다음엔 1시간, 그다음엔 하루씩. 자유 시간을 점차 늘려보는 것이다.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어 엄마에게 그대로 전했더니 엄만 웃으신다. 일단 다음에 꼭 해보는 걸로..?




혼자서 여행을 떠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계획되었든 계획되지 않았든 우연히 마주한 상황들 속에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나란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니 놀라운 순간(가족 단위 온천 풀장에서 혼자 수경 끼고 잘 놀더라..)들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처해졌을 때 드러나는 나의 새로운 인격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가족들과 커플만 있는 수영장에서 혼자서도 수영을 잘 즐기는 사람이구나.

나는 저녁에 호텔방에서 클래식 영상을 보며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서 책 읽는 걸 즐기는 사람이구나.

나는 클래식 공연을 보고 울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달리면서 다른 러너들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좋아하는 과자를 위해 공항 가기 한 시간 전, 도보 15분 거리 마트에 가서 3통을 사 오는 사람이구나.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타지 사람의 작은 도움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나는 급박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나는 꽤나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한인민박을 박차고 나와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대범한? 사람이구나.

나는 아침햇살을 즐기는 주근깨 잘 생기는 사람이구나.

나는 강아지들을 꽤나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자기의 비행기가 연착된 줄도 모르는 처음 본 한국인에게 손을 건낼 수 있는 인류애가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혼자 있어도 잘 놀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난 대로 10분 만에 하나씩 써보았는데, 이 만큼이나 된다. 더 있는데.. 참겠다.




그리고 생각보다 혼자서 여행을 가본 적이 없거나 가길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이유는 혼자 가서 뭘 하냐는 것이었다.

뭘 하긴!! 그냥 즐기면 되지 바보들아. 시간이 아까우니 당장 떠나!!! 라고 속으로 내 안의 들라크루아가 외쳤지만 언젠가 이 사람들도 혼자 여행을 떠나 즐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냐며 나 스스로를 가라앉혔다. 그래요? 혼자 가면 정말 좋은데.. 나중에 꼭 가보세요ㅎㅎ라고 말할 뿐. 사람들에겐 저마다 각자의 타이밍이 있겠지.


다음에도 나는 혼자 여행을 가볼 계획이다.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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