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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Nov 27. 2023

내 주변 어딘가에 존재하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예쁜 누나들이 더 많아지길

최근 들어 예전에 봤던 드라마나 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이미 봤던 콘텐츠는 아주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시청자로서 부담이 덜 하고, 내 선택에 덜 실망할 수 있으니까 다시 시청하게 된다.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과 퇴근 후에 밥을 먹으면서 편하게 볼 요량으로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배경음악이 마음에 들었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땐 제목 그대로 예쁜 누나로 나오는 손예진의 미모가 무척 예뻤던 기억 밖에 없었는데, 두 번째 시청을 하게 되니 ‘손예진’이 아닌 ’ 예쁜 누나‘라는 캐릭터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도 있을 이 예쁜 누나는 어떤 사람일까.


직장

드라마 속 예쁜 누나는 카페 매장을 관리하는 커피 전문점 대리로 나온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한 그녀는 일도 잘하고 윗사람, 아랫사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예쁨 받는 캐릭터이다.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예쁜 외모에 일도 잘하는 그녀이지만 알고 보니 직장에서 그녀의 평판은 탬버린이라 불린다. 그녀보다 높은 직급의 임원들 중 여자 과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자이다. 회식을 갈 때면 남자 상사는 그녀를 옆에 앉히고 고기를 굽게 하거나, 2차로 간 노래방에서 술 취한 척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거나 해도 그녀는 탬버린을 흔들며 분위기를 띄워왔다. 성추행을 당하고도 나 혼자만 참으면 되겠지,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가던 그녀는 절친의 남동생인 서준희를 만나며 변화한다. 자신보다 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서준희를 통해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눈 감아 왔던, 불편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찾아간다.


가족

드라마에서 그녀의 가족들은 이야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는 서른 중반이지만 아직 가족들과 한 집에 살고 있다. 드라마에서 그녀(손예진)의 남자친구가 되는 서준희(정해인)와 그의 누나는 그녀가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알아온 사이이다. 아버지는 바람난 여자와 살고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신 서준희와 그녀의 친구를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살뜰히 챙겨 왔다. 하지만 그녀와 서준희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엄마는 가족처럼 지내온 서준희를 대놓고 무시한다. 부모도 없고 소위 ‘사’ 자를 가진 직업이 아닌 서준희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만나던 그녀의 남자친구는 판검사 집안에 직장도 좋았지만, 극 중에서 바람까지 피우는 쓰레기였는데도 그녀의 엄마는 다시 만나보라고 부추긴다. 가족은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힘들게 할 뿐이다. 결국 그녀는 마주치면 매번 싸우는 가족들이 힘겨워 독립을 결심하게 된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이렇게 떠밀려서 탄생하는 순간은 아름답지 않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이 잘 되길 바라지만 그녀의 옆에 세워둘 허울 좋은 것을 좇는 것은 오히려 자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드라마의 70%를 볼 때까지 계속해서 고구마 한 상자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한 기분을, 그녀의 독립씬으로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겨우 들이키게 해 준 셈이다.


연애

얼굴도 잘 생기고 믿음직스럽고 나의 일이라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와 주는 서준희가 너무나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랑도 그녀에겐 짐처럼 느껴지게 된다. 가족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만나던 서준희가 마침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고, 서준희는 그녀와 함께 해외로 이주할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독립은 천천히 알아보자 한다. 회사에서는 성추행 이슈의 중심인물로, 가족에게서는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는 철없는 첫째 딸로서 그녀는 미래가 걱정되지만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다. 스스로의 힘으로 본인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 그녀는 부모와 서준희 모르게 서둘러 독립을 준비하게 되고 결국 서준희의 프러포즈를 거절한다. “예전의 나라면 다 버리고 너랑 떠났을 거야. 하지만 널 만난 이후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야”라며.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정점을 보여주는 건 프러포즈를 거절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혼자로서 그녀가 두 발로 서는 느낌이랄까. 이후 그녀는 독립생활을 이어나간다. 가족과 애인으로부터의 자발적 독립인 셈이다. 사내 성추행 문제로 가해자와 법적 싸움을 이어가며 물류창고 과장으로 강등되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몇 년을 버틴다.


예쁘기만 한 누나는 매력적이지 않다.

마지막회에서 그녀는 또 엉뚱한 남자를 만나 그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남동생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서준희를 만나게 되고 그간 힘들었던 그녀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아 누군가에게 다시 의지하고 싶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는데 결국 그 남자와도 헤어진다. 이후 사내 성추행 문제에서 법적 승소를 하며 끈질기게 버텨온 회사를 그만둔다. 같이 일했던 동료가 하는 카페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그녀는 제주도로 내려가며 드라마는 끝이 난다. 출근 준비를 하며 가볍게 볼 드라마로 보려다 글까지 쓰게 된 나는 느끼는 바가 참 많았다.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연출해서 보여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손예진과 정해인의 비주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숨겨진 내용은 너무나 현실적이었기에 아이러니했다. 극 중에서 서준희는 예쁜 누나를 좋아했지만 제삼자로서 스스로 자립할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춘 예쁜 누나들이 내 주변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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