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프리카-중동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며칠이나 지났을까. 나는 은행 ATM 앞에 있었다. 오랜만에 통장 잔고를 확인하느라. 그러니까 당시는 PC로 보안카드 비번을 눌러 인터넷뱅킹을 하면서도 ATM기로 통장정리도 하던, 은근한 아날로그의 시절이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작고 귀엽고 소중했다.
그땐 카페에서 카페라테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던, 아직 취향이 확립되지 않은 날 것의 시절이기도 했다. 은행을 나와 향한 곳은 카페가 아닌 자판기 앞이었다. 취향이 아닌 생존의 이유로. 캔커피 '선택' 버튼을 누르려다 '그냥 믹스커피나 한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다시 취업을 해야겠구나 결심이 섰다.
여행을 정리할 틈도 없이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시장은 경력 3년 차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2년 3개월의 경력은 신입보다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신입사원으로 지원할 수도 없었다. 신입사원을 많이 뽑지 않는 업계인 데다 내 나이 서른을 넘어섰으니. 이곳저곳 면접을 봤지만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문자가 속속 들어왔다.(저보다 안타까우실까요... 그렇게 안타까우면 좀 써주시죠...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은 있나요...)
그러다 문득 정말로 아프리카 여행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 재취업은 미뤄두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받아 생계를 해결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일했다. 그 둘이 바뀌기도 했다. 정사각형의 이케아 책상, 얇은 외벽에 기댄 나무 책상 앞에 앉아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보온 물주머니로 발을 데워가며. 집이 너무 추운 날은 가파른 오르막 위에 새로 지어진 동네 도서관의 컴퓨터실에서, 아니 정보화실이던가.
다 쓴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다시 면접을 봤다. 그리고 두 군데에 합격했다. 그중 서울 중심지에 있던 한 회사는 작은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말을 아꼈지만 직원을 보충하는 시기라고 면접관이 말했다. 그제야 빈 책상들이 이해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면접에서 합격하면 당장 일할 직원이 면접관과 나뿐이라는 게, 격무에는 일가견 있던 내게도 부담이었다. 직원이 아무도 없는 이유가 사장이 인격파탄이어서가 아닐까, 월급이 밀렸던 걸까, 머릿속으로는 단편소설 한 편이 쓰이는데... 사무실 청소 정도는 직접 해야 한다는 면접관의 말과 동시에, 책상 옆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이 눈에 거슬렸다. 본 업무 외에 해야 할 일이 쓰레기통 비우기로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마침 같은 시기 면접을 본 다른 회사는 출퇴근 거리가 1시간이 훌쩍 넘는 경기도에 있었지만 연봉이 600 더 많았다. 회사 규모도 컸다. 고민 끝에(뻔해 보이는 조건에도 고민을 많이 했던 건 서울에 있는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더 끌렸기 때문이다.) 후자를 택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은 맞았다. 경기도의 그 회사를 8개월 만에 퇴사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봄날, 벚꽃이 흐드러졌던 딱 요맘때 일요일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회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온몸을 짓눌러 짓이겨진 마음 한 자락이 눈물로 빠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요일 밤마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어!"를 외치며 울던 나는 이직했다. 그 회사 그 직무의 채용 공고가 유난히 자주 올라왔던 것, 왜 그걸 놓쳤던 걸까. 텅 빈 통장잔고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던 걸까.
세월은 또 무심히 흘렀다. 처음 면접을 봤던 때로부터 십수 년 뒤, 합격했지만 가지 않았던 회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보통의 메일링서비스였는데, 무려 사옥을 오픈한다는 소식이었다.(그런데 내가 언제 그 회사의 메일링서비스를 신청했는지 아무리 더듬어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력서의 메일주소가 고객 메일링서비스 리스트에 추가된 것이라면 그 회사의 성공이 이해되기도 한다.) 사무실 청소도 셀프였던 회사가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 올리는 회사가 되었다니. 600만 원에 영혼을 판 것처럼 머쓱해졌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무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잘 안다. 그래서 후회라는 것을 하지 않는 타입으로 살아왔다. 매 순간 고심해서건 즉흥적이건 스스로 내린 선택들을 허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나까지 나를 배신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잠깐이지만 밀려드는 아쉬움을 마주하고 음미했다. (아마 회사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던가 벚꽃은 흐드러졌는데 몸은 회사에 갇혀 있어서였던가 그랬을 테지.)
창립 멤버와 마찬가지였던 상황에서 쓰레기통을 제때 비워가며 혼자 열심히 일하다가 사람들이 속속 합류하고 풍악을 울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사가 들썩이며 성장하고 원년 멤버라는 이유로 포상휴가도 받고, 이어 사옥 오픈 파티에서 내빈들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드레스까지는 아니지만 잘 차려입은 수트의 색깔은 보라색이 좋겠군...
“활보씨, 이거 지금 좀 봐줄 수 있어요?”
불쑥 파티션을 건너온 팀장님의 목소리.
동시에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건 때아닌 “엄마, 깜짝이야!”
딸깍. 날짜 지난 초대장 같은 메일창을 닫았다. 창밖에선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