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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y 15. 2024

언니 결혼 안 한다던데?

“너 점 보러 갔다 온다더니 갔다 왔어? 뭐래?”

“좋은 소리는 하나도 없었어. 원래 부모님까지만 얘기해주는데 언니 것도 해줬어. 이직을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는데 그만두고 알아보지 말고 다니면서 알아보래.”

"야,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야? ㅋㅋㅋ 점쟁이 아니어도 그런 얘긴 하겠다. 결혼 같은 건 얘기 안 해?"

"결혼 안 한다던데?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고 그랬어."

"결혼을 안 하는 거겠니? 못하는거겠지..."

"근데 신기한 게 나보고 집에 옷 좀 치우래. 버리지 왜 그렇게 쌓아뒀냐고..."


이직에 관한 이야기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니 신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을 안 한다는 이야기도 흘려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동생네 집에 옷 좀 치우라는 말에 갑자기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네 식구가 사는 집에 작아져서 못 입는 옷, 오래된 옷, 빨래할 옷들이 옷 무덤이 되어 여기저기 쌓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결혼에 대한 큰 위기감(?), 필요성에 대해서 별생각 없이 살다 보니 마흔이 넘은 것뿐이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고 싶었고, 안 하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식을 낳아봐야 괴로운 인생을 주어지게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이 더 컸다. 상처받고, 경쟁하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하며 살아갈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인생 살아 볼 만해. 너도 한번 살아보렴”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긴 고통과 찰나의 행복, 그게 인간의 삶이긴 하지만.


스물다섯에서 서른네 살. 그 황금 같은 시간을 한 남자와의 긴 연애로 흘려보냈다. 일상에서 그 빈자리를 내 삶으로 오롯이 되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제야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네’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버렸다. 결혼이라는 것이 이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이라 쳤을 때, 나는 일반적인 가임기를 훌쩍 넘어버린 나이 든 여자가 되어있었다.


그저 점쟁이의 한마디라고 치부하기엔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문제는 바로 백수 시절이다. 직장을 퇴사하고 나서 이직을 하기까지 매번 1년 이상이 걸려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 그 점쟁이가 정말 족집게라고 생각했다. 내가 또 예전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장기 백수로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말 그대로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할 수 있다.




5월은 가정의 달. 어버이날을 앞두고 가족들이 모여 식사할 땐 별생각이 없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지나고 여동생 카톡 사진이 카네이션 사진으로 바뀌어있었다. 올해 6학년인 동생의 딸이 하굣길에 사 왔다는 말을 들으니 그렇게 사랑스럽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키우면서는 힘들었어도 얼마나 기특할까 생각이 들었다. 어느 유튜버가 남편에게 그토록 바라던 임신 소식을 알리는 영상과 입덧이 끝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영상을 보는데 그 두 사람이 너무도 행복해 보여 눈물이 났다.

‘나는 아마도 누릴 수 없는 행복이겠지...’


그럼 노력하면 되지 않냐고? 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왜 그 점쟁이의 말을 믿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니 내가 여기까지여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만 할 뿐 노력까지 할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큰 생활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이렇게 혼자 살 것 같다.




오래전에 'SIMS'라는 게임에 빠져 밤새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사람 캐릭터를 만들어서 키우며 인생을 만들어가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나와 최대한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고 이름까지도 내 이름을 붙였다.


게임이다. 게임 속에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이런저런 곳을 여행을 떠나거나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가져봐도 된다. 심지어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진지하게 게임에 임했다. 그때도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나 보다. 기본으로 주어지는 단출한 집에 싸구려 컴퓨터를 사서 계속 글을 쓰게 했다. 글쓰기와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작가 직업 레벨은 높아졌고, 글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이사를 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직업이니 사람들과 교류도 하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글만쓰며 있었더니 재미 지수가 바닥을 치기에 집에서 식물을 가꾸는 취미를 가져 수경식물을 재배하기도 하고 과일나무나 채소, 꽃을 심어 가꿨다. 그렇게 사람들과는 거의 단절한 채 글만 쓰며 지냈더니 드디어 최고 레벨의 작가가 되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나를 투영한 캐릭터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머리는 백발에 등이 구부정하고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그제야 위기감을 느끼고 동네에서 꽤 괜찮은 돈도 많고 멋 좀 부릴 줄 아는 영감과 뒤늦은 결혼을 했다. 노인이 되었기에 사랑을 나누며 아기를 가지려 노력해도 임신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의 사신이 찾아와 남편을 데려가 버렸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내 캐릭터는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결국 내 캐릭터에게도 사신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이 세상을 떠났다. 이웃과 친구들이 묘비 앞에서 슬퍼해 줬지만, 나의 핏줄은 끊겼고, 대대손손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게임에서 말해준 것이 나의 미래일까?


물론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 주구장창 글을 쓴다고 해서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고 해서 당연하게 레벨업을 하며 유명하고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충격적인 것은 그 캐릭터를 키운 것처럼 지금 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갑자기 내 캐릭터가 한순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의 미래를 예언해 준 것 같아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노력해서 어떻게든 가정을 이뤄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하고, 삶의 재미를 찾아가며 살아야 하는 것일지... 아무도 답을 모르겠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아마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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