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너무 심심하다. 주식 시장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퇴사한 지 10개월. 백수에게 가장 큰 불안은 돈 아니던가? 여전히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요즘 주식에 몰두하고 있다. 회사도 가기 싫고, 사람도 마주하기 싫으니 가장 소극적인 경제활동 중이다.
새벽 4시에 잠들었어도 9시면 눈이 떠진다. 주식시장이 9시(일부 종목은 8시)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뻑뻑한 눈으로 핸드폰부터 들고 주식 차트부터 확인한다. 거래시간인 9시부터 3시 20분까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물론 팔아야 돈이지만 오르면 신나고, 떨어지면 속상하다. 요즘 내 일상 유일한 도파민이다.
처음 주식을 시작한 건 36살 재테크 강의를 들었을 때이다. 아무도 나에게 청약, 저축, 주식에 대해 알려준 적 없었기에 재무설계사가 하는 4주짜리 오프라인 강의를 들었다. 처음으로 주식거래 계좌를 개설했다. 20대 후반에 증권사에서 디자인한 적도 있는데 그때 시작 안 한 것도 아이러니다. 오랜 시간 금융권에서 디자인 일을 해왔으면서 돈에 무지하게 살아왔다니 참 무심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들처럼 이미지를 다루는 친구들은 투자나 숫자에 밝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가 그렇다.
계좌를 개설하고 첫 난관에 부딪혔다.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몰랐다. 복잡한 UI 화면, 하한가, 상한가가 뭔지 시장가에 주식이 사진다는 것도 몰랐다. 무모하고 용감하게 좋아하는 브랜드, 요즘 유행하는 제품, 왠지 전망이 있을 것 같은 회사 주식을 몇 주씩 샀다. 코로나 때 '동학개미운동'이라며 유행처럼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했을 때 나도 샀다. 미국 주식이 투자하기 손쉽게 바뀌었을 때 테슬라와 애플 주식을 매수했다. 물론 오른 주식도 있지만 대부분은 팔 타이밍을 놓쳐 오랫동안 방치하다 최근 손절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한 투자 아니 '도박'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있다. 코스피, 코스닥, S&P500이 뭔지도 모르고 투자를 했으니 말이다.
- 코스피(KOSPI):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대표적인 지수로 대기업 중심으로 상장
- 코스닥(KOSDAQ):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 중심으로 상장
- S&P500(Standard and Poor's 500):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00개의 가장 큰 기업들의 주가 성과를 추적하는 주가지수
12.3 계엄과 탄핵 정국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동안 정치와 시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내외 정세와 미국, 일본, 중국과의 관계가 시장에 주는 영향, 코스피 지수와 환율의 관계도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미국 금리 동향, 상법 개정안과 국가 간 정상회담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투자로 이어지진 않는다. 꽤 오른 주식도 있지만 몇 번은 상한가를 쳐야 겨우 본전인 종목도 있다. 전망이 보이지 않아 큰 손해를 보고 정리한 종목도 있다. 신도 모르는 것이 주식 시장이라 하지 않는가? 트럼프가 달라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펜 때문에 다음날 모나미 주가가 상한가를 친 것처럼...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말이 있듯이 돈의 습성처럼 돌게 해야 내 손을 거쳐 가는 돈도 많아지지 않겠는가! 지금 내 자산의 절반은 주식에 투자했다. 반은 국장-반은 미국 시장에. 운이 좋게도(?) 10개월 쉬는 동안 자산이 크게 줄지 않고 적정선에서 유지하고 있다. 물가가 자꾸 오르니 예·적금을 열심히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마이너스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라는 오랜 세뇌에서 40살이 넘어서야 벗어나는 중이다. 정확히는 ‘주식을 도박처럼 하면 패가망신한다’가 맞는 말일 것이다. 누가 오를 거라고 알려주는 어떤 사업을 하는지 모르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회사에 투자하는 그런 것 말이다.
초 단위로 오르내리는 차트를 보고 있다 보면 망설임과 성급함이 ‘껄무새'를 만든다.
그때 살걸! 그때 팔걸! 그때 더 많이 살걸! 그때 다 팔걸!
매도 타이밍 결정 순발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어떤 날은 단타로 밥값이라도 벌면 뿌듯해하다가, 욕심내서 다시 들어가면 여지없이 손해를 본다. 뭐든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삐끗한다.
쉬고 있는 동안 그동안 무지하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핑계 좋은 도피처는 아닐까 고민한다.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이제 멈춰있던 나에게 조금씩 기름칠을 해서 움직이는 하반기를 만들길... 그리고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