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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기

by 나무기린

의미심장한 마음으로 9월을 시작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귀찮음과 씨름하다 씻고 집을 나서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도 나가야지! 갑갑하고 답답했다.


3일 만에 쐬는 바깥공기. 길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분주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퇴근하는 기분이다.


산책하러 공원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너다가 심장이 철렁했다. 구부정하고 후덕한 덩치에 검은 옷을 위아래로 입은 남자!


휴… 다행히 비슷한 사람이었다. 내 퇴사의 원흉이었던 그 인간인 줄 알았다. 사실 그런 사람은 길에 널리고 널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깊이 각인된 스트레스 반응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10개월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새로운 팀장이 오자마자 본능적으로 그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장이 어디 있어, 돈 벌기가 그리 쉽냐'며 자신을 속이며 버텼다. 20, 30대에 공백을 자주 만들었던 나의 잘못으로 또래에 비래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신 승리 하기엔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인간이 등장하고 한 달쯤 지나자 감기에 걸렸다가 나아지길 반복했다. 연이어 코로나에 걸렸고, 생전 걸려본 적도 없던 방광염을 달고 살았다. 출근길에 눈앞이 까매지며 쓰러질 뻔한 적도 있다. 반년쯤 되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럽고 목구멍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깊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비인후과도, 내과도 가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에 불안장애와 공황 증상이라는 것을 신경과에서 알았다.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비롯한 것이라 했다.


뇌의 편도체는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울리는 경보 시스템을 담당한다고 한다. 내가 사무실에 있는 내내 경보가 울리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편도체는 장기 기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위험한 순간을 오래 기억해야 생존에 이로우니 그럴 것이다. 그것이 아니어도 나는 상황에 대한 기억력이 유달리 좋다. 별수 없이 이 불안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힐 것이다.

[편도체는 대뇌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이다.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 및 불안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처: 나무위키]


1년을 버텼으니 1년을 쉬면 되는 건가? 10월이면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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