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아침 출근길이었다. 매일 나서는 오피스텔 뒤쪽 입구로 나갔다. 건물 앞쪽 입구는 대로변이지만 뒤쪽은 2차선 도로가 있는데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건널 수 있어서 주로 이용한다. 그런데 입구를 나선 순간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입구 앞에 서 있는 하얀 승용차 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당 의자가 바짝 놓여 있던 것이다. 등받이 부분을 차 쪽에 붙여서 말이다. 그렇게 가깝게 놓은 거라면 차를 세워놓고 의자를 갖다 놓았을 것이다. 차에 바짝 붙여서 놓은 것 보니 번호판을 가리려고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차는 뭐가 켕기길래 번호판을 가리려고 했지?’ 하는 찰나의 생각을 하고 가던 길을 평소와 다름없이 걸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양쪽 등을 깜빡깜빡 켜고 나와 속도를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 차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시선을 끌고 창문을 열어 놓고 자기 위로를 하는 변태를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옆눈으로 보이는 깜빡깜빡하는 라이트가 마치 자기 좀 봐달라는 것처럼 성가셨지만 발걸음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무시하고 걸었다.
그 길은 외진 길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심지어 앞에서는 하수구 관련으로 보이는 공사까지 하고 있었다. 오피스텔 입구에서 내가 길을 건너야 하는 사거리까지 불과 25m 정도 되는 짧은 거리이다. 나는 끝까지 무관심을 유지하며 서둘러 길을 건넜다. 그리고 멀리서 그 차를 흘깃 돌아보았다. 그 흰색 승용차는 직진-좌회전-우회전도 하지 않은 채 사거리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었다.
회사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꺼림칙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에 하필 왜 나를 기다린 듯이 건물 앞에 번호판을 가리고 서 있다가 내가 나오니까 그러느냔 말이다.
'혹시 그놈인가?'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3년전 여름. 저녁이 가까워져 오던 오후에 산책을 나섰다. 그날은 매일 다니던 길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상가로 쭉 늘어선 길이지만 길 건너는 공사를 많이 하고 있어서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적이 드물지는 않았다.
'촉'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 하얀 외제 차가 세워져 있었다. ‘공사장 가림판밖에 없는 곳에 왜 서 있는 거지?’ 순간 생각하면서 가는데 내가 그 차 옆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그 차가 나의 옆을 따라왔다. 나와 속도를 맞춘 채... 처음엔 길을 물어보려는 건 줄 알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차의 창문을 내리지도 않았다. 선팅 때문에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 변태인가? 다른 변태들처럼 창문을 열고 따라 오는 것도 아니었다. 저 차를 먼저 보낸 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보는척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동시에 차도 멈췄다. 나를 따라오는 것이 같다는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 벌렁거렸다.
뛰었다. 그러자 그 차도 동시에 속력을 냈다. 머리가 하얘졌다. 뛰려고 해도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기지를 발휘해 앞에 보이는 사거리에서 직진할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었다. 그 차는 그 사거리 중간에 서서 이리 가지도 저리 가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차를 따돌린 후,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미션임파서블의 주인공도 아니고 차를 왜 따돌려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저 차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했을지 꺼림칙했다. '변태였나? 길을 물어보려고 했나? 혹시 아는 사람이었나?' 하는 별별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날 이후, 나는 차와 반대 방향 인도로만 다녔다. 흰색 외제 차만 보이면 혹시 그 차일까 봐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또 꺼림칙한 일이 일어났다. 집 근처 편의점에 가기 위해 그 길을 다시 걷게 되었다. 하지만 그 차를 봤던 반대차선이다. 차와 반대 방향이기에 지난번 같은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걷는 길에 또 하얀 외제 차가 정차해 있었다.
‘뭐 저런 차가 한두 대도 아니고 어차피 차와 반대 방향이니까 괜찮을 거야’ 다독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차 옆을 지나는 순간 그 차는 후진을 하며 나를 따라왔다. 상상도 못한 전개다.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동요도 없는 듯 평온한 척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 들어섰으니 더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니 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차는 내가 들어선 편의점 앞에 멈췄고 운전자는 내려서 편의점에 들어왔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색 정장을 입은 단정하고 멀끔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담배를 사서 바로 편의점을 나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지 않던가? 꺼림칙한 마음에 이미 살 것을 골랐는데도 괜히 진열대를 어슬렁대며 시간을 끌다가 계산대로 향했다. 멤버십 할인에 포인트 적립까지 다 하고 나왔는데도 그 차는 여전히 편의점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오자, 출발했다. 나는 편의점 옆에 보이는 샛길을 통해 대로 쪽으로 나가 집에 빙 돌아서 갔다.
그날 이후 '혹시 누가 나를 스토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더운 여름에도 블라인드도 못 열고 살았다. 혹시 동일한 일을 있었는지 동네 커뮤니티에 검색해 보았지만 관련 글을 찾을 수 없었다. 인적이 드문 인도 옆에 자동차(특히 하얀 자동차)가 서 있으면 다른 길로 돌아서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일을 잊고 살았는데 2년이 흐른 며칠 전 아침 또 비슷한 일을 겪은 것이다. 그때와 다른 차종이었지만 흰색인 것은 동일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기 전에 창밖으로 또 그 차가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없었다. 이제는 그 길로 아예 다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지도 앱을 열어 그 일들을 겪었던 곳을 살펴보았다. 그 3개의 사건이 모두 한 블록 안에서 일어났다. 오피스텔 라인이 있는 이 뒷길은 2차선 도로라서 인도와 가깝고 주변에 학생과 회사원들이 많이 산다.
물론 그 3개의 사건이 모두 한 사람이 벌인 일인지, 재수 없는 우연의 일치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걸어가는 나의 옆을, 속도를 맞춰 따라오는 것은 같았다. 마치 나를 겁주고 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개의 사건이 만약 한 명이 벌인 일이었다면 아마 번듯한 외제 차로 그런 식으로 여자들을 겁주면서 묘한 우월의식을 느끼는 건가? 오피스텔 뒷길 한 블록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이 동네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 테고, 아침과 오후 시간에 머무는 것은 회사가 근처인 사람?'
마치 프로파일러라도 된 듯 추리까지 해보았다.
회사 동료와 동생 등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증거라도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며칠-몇 시-몇 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 카톡에 남겨놓았다. 혼자 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모를 것 아닌가? 최대한 떠벌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TV 탐사 프로그램에서 본 것 중에 여러 명에게 직접적으로 카톡과 전화를 하며 스토킹했는데도 겨우 벌금 10만 원이 나왔다던데 아마 내가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한다면 망상병 환자 취급을 당할 것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음부턴 당황하지 않고 영상으로 바로 찍어놓아야겠다는 결론 하나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집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뒷길로 다니지 않는 것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