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풀리는 집

내가 겪은 미스테리한 일(1)

by 나무기린

연이은 폭염. 40번째 여름인데 해마다 처음 겪는 것처럼 적응이 안 된다. 예전에는 이맘때 납량특집이 편성되어 연예인들이 모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천장에서 귀신 인형이나 떨어뜨리는 식상(?)한 방송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 매일 똑같은 지긋지긋한 일상을 보내다가 자극이 필요해서 보기 시작한 것이 공포 사연 유튜브다. 시청자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자신이 겪었던 무서웠던 일을 이야기하는 채널인데 이제는 일상이 되어 매일 아침마다 올라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출근하다 보면 지옥철 스트레스도 조금 사그라든다.


날도 더운데 그 김에 내가 겪은 미스테리한 일을 적어볼까 한다. 사실 공포 유튜브를 보기 전까지 내가 겪은 일들은 ‘그냥 이상했던 일’로 각각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몇 년간 이런저런 사연을 듣다 보니 내가 겪은 일들과 비슷한 일들을 여럿 듣게 되었고 그제야 그 일들이 하나로 이어진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 이 일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견해이며, 무섭다고 하기엔 생각보다 시시한 이야기이니 큰 기대는 말아주길 바란다.





1. 안 풀리는 집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시 나는 사촌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언니가 결혼하게 되면서 따로 방을 구해서 나오게 되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근처에 친구도 살고 있겠다, 구로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한 층에 네다섯 집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꼭대기 층 구석방인지라 창이 두 군데에 있어서 채광과 통풍이 잘되어 좋았다. (그 덕분에 외풍도 심했지만....) 지은 지 2년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 있고, 중문을 열면 방이 있고, 방에서 이어지는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계약서엔 5평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4평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20대 후반밖에 되어 보이지 않던 중개보조인이 보여준 집이었는데 1층에 관리 아저씨가 상주한다고 했고, 꼭대기 층에는 주인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며칠 살다 보니 다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내가 살던 아래층까지는 주거용 오피스텔이었지만 내가 살던 층은 근린생활시설로 등록이 되어있었다. 월세이니 보증금이 전세처럼 큰돈은 아니지만 작은 돈도 아닌데 계약할 때도 주인을 본 적도 없고 입주하는 날 집주인 칸에 도장이 찍힌 것을 보고 나도 서명을 한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겁도 없이 허술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여하튼 전에 살던 집엔 에어컨이 없어서 매년 여름마다 더위를 먹어 고생했는데 에어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집에서 7년을 살았다.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사실 그렇다 할 기억은 별로 없다. 왜 그리 오래 살았냐고? 글쎄...? 나는 7년 만에 고립에서 탈출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다 안 풀린 집이었다.




이사를 하고 얼마 후부터 당시 오래 사귀어왔던 남자친구와 사이가 틀어져 가기 시작했다. 오래 만나긴 했었지만 싸운 일도 거의 없었던 그와 나는 매일 전화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의심하고... 지옥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결국 그와는 마침표를 찍었다. 다 큰 어른이 엉엉 소리를 내며 울 일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 집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건 옆집도 다르지 않았다. 방음이 잘되지 않아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내용까지 알 수 있었다. 옆집은 매번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계속 세입자가 바뀌었다. 사람은 매번 바뀌었지만 소리를 지르며 누군가와 다투는 일은 마냥 똑같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 집에서 살던 7년 중 3년을 백수로 보냈다.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틴 건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취직하면 생각지 못한 일로 계약이 종료되어 퇴사하게 되고 또 백수가 되고... 그러고 나면 바로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못하고 1년이 넘도록 무기력하게 집에 있기를 반복했다.


그 집은 들어가면 밖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이틀만 집에 있어도 답답할 지경인데 그땐 일주일씩 두문불출하는 일이 허다했다. 잠을 잘 때는 바닥에 큰 구멍이 뚫려 끝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어지럽게 잠이 들었다. 자도 자도 계속 잠이 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과 자신감 실종으로 '도대체 내 삶이 뭔가 나아지기는 할까?' 하며 암담하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끔은 자고 있는 나를 뒤에서 누군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너무 실감 나서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화장실은 좀 기분이 나빴다. 외벽 쪽이라 단열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겨울에는 결로가 생겨 곰팡이가 많이 생겼고, 여름에도 습하고 후끈후끈했다. 그래서 습기, 냄새 제거를 위해 향초를 자주 켜놓곤 했다. 문을 열면 바로 세면대가 있었는데 좁고 답답해서 항상 문을 열어놓고 세수를 했다. 문손잡이가 벽 끝에 닿도록 활짝 열고 세수하다 보면 어느새 문이 움직여 손잡이가 나의 엉덩이를 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문이 뻑뻑한 편이어서 저절로 움직일 일이 없는데 말이다.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는데 그 일을 바라보는 내가 좀 이상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떤 알 수 없는 존재가 나에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상하게 매번 세면대 앞에서 세수할 때마다 그동안 잊고 있던 화나는 장면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괴로웠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이 그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호통을 쳤다.


“저리가!!!”




‘내가 미쳐가는 건가?’

두려웠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고립되어 살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아주 조금씩 생활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밥도 정성껏 해 먹으려 애쓰고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 동네 카페라도 갔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이사를 나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흔쾌히 이사를 도와주셨다.


그렇게 이사를 일주일쯤 앞뒀던 새벽이었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핸드폰을 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워낙 방이 작았기에 화장실까지는 겨우 4걸음이면 되었다.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세면대 앞 공중에 하얗다고 하기엔 투명에 가까운 아지랑이가 뒤엉키는 듯 아주 천천히 피어오르더니 점점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무수히 들락이던 화장실이었다. 그런 것을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가끔 아랫집에서 담배 냄새가 올라오긴 했지만 연기가 올라올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연기보다는 아지랑이에 가까웠고 속도도 아주 천천히 공중에서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당시 밤낮이 바뀌어서 생활하고 있을 때라 비몽사몽에 본 것도 아니었다. 나는 싱겁게 ‘어? 뭐지?’ 하고 볼일을 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 사라지는 아지랑이를 보고 나는 이상하게도 ‘아, 이제 다 잘되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이사를 앞둔 그 며칠 사이에 연락이 뜸했던 지인의 제안으로 졸지에 일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나는 드디어 그 집에서 탈출해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 대형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역시 원룸이긴 했지만, 이전 집보다 넓기도 했고, 수납공간도 아주 많았다. 층고도 높아서 개방감이 좋아 답답하지도 않았다. 대로 옆에 있어서 늦은 시간 귀가해도 안전할 것 같았고, 지하철역도 가까웠다. 보러 다녔던 집 중에 가장 햇빛이 잘 들고 밝아서 그 집을 선택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젊은 남자가 살고 있었다. 잠깐 마주쳤을 때, 잔뜩 근심 어린 표정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이 나누는 이야기로는 한 달만 채우면 1년인데 11개월 만에 이사를 나가는 거라며 부모님이 아프셔서 그 병원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해서 급하게 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큰 가구가 없어서 아빠 차로 이삿짐을 다 옮겼다. 비록 원룸이지만 그날 이사를 도와주러 온 아빠, 엄마, 남동생과 나까지 4명이 다 눕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한방에 줄줄이 누워 하룻밤 자고 내려가셨다.


이사 간 지 이틀째 되던 날, 처음으로 그 집에서 혼자 잔 그날. 꿈을 꾸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옷장 앞에 서 있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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