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집

내가 겪은 미스테리한 일(2)

by 나무기린

* 이 일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견해이니 재미로만 즐겨주길 바란다.


[이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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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선의 집


이사 간 지 이틀째 되던 날, 처음으로 그 집에서 혼자 잔 그날. 꿈을 꾸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옷장 앞에 서 있었다.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것처럼 얼굴이 하얗고 푸른 빛을 뿜어내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넓고 각진 얼굴형에 다부져 보이는 체격, 160cm 후반 정도의 키를 가진 건강한 혈색의 남자였다. 깜깜한 밤, 옷장 앞에 서 있던 그 존재는 나를 보더니 무언가 잘못됐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사라져 버렸다. 무서운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이사 와서 처음 꾼 꿈에 저승사자라니... 꺼름직 했다. 그런데 순간 전에 살던 사람의 사연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 근처로 이사를 가야해서 방을 뺀다는… 나는 밑도 끝도 없이 ‘혹시 부모가 아니라 그 남자가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서 방을 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와 함께 나의 일상은 오랜만에 활력을 찾았다. 언제 일주일씩 집에 처박혀 우울하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일로 바빴고 오랜 백수 생활로 처참했던 재정 상황도 점점 나아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유독 이상한 꿈을 많이 꿨다. 특히 뱀이 나오는 꿈을 많이 꿨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뱀이라 꿈을 꿀 때면 말도 못 하게 끔찍한 기분이었다. 마당 양쪽 귀퉁이에서 뱀들이 우글우글 대는 꿈, 가로수에 뱀들이 여기저기 걸쳐져 있는데 후드득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같은 층, 같은 라인에 있는 집에서 실제로 커다란 뱀이 나왔다는 끔찍한 이야기와 사진까지 보았다)


자려고 누워있으면 항상 2~3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밤, 그때 역시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워있었는데 현관 쪽에서 갑자기 빈 플라스틱병이 타일 바닥에 탕탕탕 떨어지는 큰소리가 났다. 현관에 커다란 가방을 두고 재활용품을 모아놓았는데 거기서 빈 생수병이 떨어졌구나 싶어 불을 켜고 현관을 보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일은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나중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찌뿌둥해서 어떤 때는 기지개를 켜다가 등에 담이 들리고, 누워서 베개 옆에 있는 핸드폰은 잡다가 담이 들렸다. 오죽하면 동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내가 진찰실에 들어가면 “오늘은 또 어디 아파서 왔어요?”라고 할 정도로 병원에 자주 다녔다.


눕는 자리의 영향을 받나 싶어서 자는 방향을 매일 옮기며 시험해 보았다. 다행히 침대를 사지 않고 이불을 펴고 잤기 때문에 손쉽게 가능했다. 현관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이상한 꿈을 꾸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심지어 그렇게 누우면 창문 쪽으로 발을 놓고 자게 되는데 머리카락 몇 가닥으로 발등을 간지럽히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반대로 창문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잤더니 웬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심한 어깨 통증으로 놀라 잠에서 깼다. 양쪽 어깨 근육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통증 때문에 깨기 직전 꿈속에서 방바닥에서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듯 마르고 창백한 손이 올라와 그 길쭉한 손가락으로 내 양쪽 어깨를 꽉 잡는 것 같았는데 양쪽 쇄골 아래 두 군데를 꽉 누른 듯한 고통은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 갔다. 그 이후 그쪽으로 다시는 머리를 두고 자지 않았다. 결국 가장 애매하게 방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잠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2021년 9월 2일,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그 일을 겪자마자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놨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던 저녁이었다. 당시 나는 재택 프리랜서를 하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밤늦게까지 일을 할 생각에 일찍 이부자리를 폈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시원해서 창문은 조금 열어 놓았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 때문인지 나는 금방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키보드 자판을 손으로 아무렇게나 쾅쾅 쳐대는 소리였다. 마치 아기들이 장난치듯이 말이다. 눈을 떠 시계를 보자 시침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윽고 소리는 멈추었다.

항상 반응이 싱거운 나는 그때도 ‘뭐지?’라고, 생각하며 다른 집에서 들린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에는 여전히 비가 쏴- 하며 내리고 있었기에 내 책상 위 키보드에서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납득이 갈 만큼 큰소리였다. 잠을 깨울 만큼.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9월 6일. 그날도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또 같은 루틴으로 저녁을 먹고 잠깐 눈을 붙였다. 왼쪽으로 누워 자고 있었는데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이 떠졌다.


쩌-억. 쩌-억.


맨발로 장판 위를 걸을 때 발바닥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누군가 내 뒤를 걷고 있었다.


쩌-억. 쩌-억.


눈만 껌뻑거리며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었다. 금방 그 소리는 멈췄다. 시간을 보니 저녁 8시였다. 무섭기도 했지만 ‘일어나서 일하라고 깨워줬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갑자기 남동생이 서울로 취업을 하게 되어 잠깐 같이 살게 되었다. 오랫동안 혼자 살다 보니 심심하기도 하고 무서운 적도 있었는데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남동생이 같이 있으니 한결 든든했다. 동생도 가끔 구석에서 누가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고 하긴 했지만, 그 전처럼 이상한 꿈이나 현상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집에서 2년을 채우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월세로 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전세를 놓고 싶다고 해서 겸사겸사 나오게 된 것이다. 동시에 동생도 회사 근처로 집을 구해 독립하게 되었다.


내가 이사 갈 곳은 살던 집과 너무 가까워서 이삿짐센터를 부를 것도 없이 그냥 짐을 옮길 생각이었다. 기존에 살던 세입자가 일찍 방을 뺐다는 소식을 듣고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


"헉, 이게 뭐야!"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붙박이 책상 위에 놓인 서슬 퍼런 커다란 부엌칼이었다. 이사 올 집 첫인상이 부엌칼이라니... 심지어 싱크대면 이해라도 하겠다. 책상 위에 저게 무슨 매너인지.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아니, 여기 책상 위에 부엌칼을 놓고 갔어요."


전 세입자와 통화해 보겠다는 답을 듣고, 청소를 시작했다. 잠시 후 중개인에게 전화가 왔다.


"그게 원래 자기들 오기 전부터 있었다고 놓고 갔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처리하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이 쓰던 칼을 쓰기도 꺼림직하고 갖고 있긴 더 싫었다. ‘칼 버리는 법’을 검색했다. 환경미화원분들이 다치지 않도록 잘 감싸서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된다고 했다. 박스를 잘라 튼튼하게 감싸고 테이프로 둘둘 말았다. 쓰레기봉투 겉면에 ‘칼 조심’이라고까지 써 붙여 성가시게 처리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가다 ‘검색 해볼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사 왔는데 전 세입자가 부엌칼을 놓고 갔어요.’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미신 비방이라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있었던 액운을 끊고 가기 위해 칼을 놓고 가는 것이라 했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직 살고 있던 집 계약기간이 널널하게 남아서 천천히 짐을 옮겼다. 그 타이밍에 아빠가 코로나에 걸려서, 엄마는 정리도 도와줄 겸 서울에 올라오셨다. 마침 엄마가 올라오신 날은 새집으로 짐을 다 옳긴 상황이었다. 후련한 마음으로 엄마와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엄마가 말을 꺼냈다.


"사실은 네가 무서워할까 봐 말안했는데... 너 2년 전에 이사한 날 엄마, 아빠도 같이 그 집에서 잤잖아. 나 그때 이상한 꿈 꾼 거 있지? 아빠가 너 무서워한다고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그랬었어."


“무슨 꿈인데?”


"꿈에서도 그 방에서 우리들이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는데 어떤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남자가 서서 요렇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바로 꿈에서 깼는데 너무 생생해서 얼굴이랑 행색이 아직도 기억나."


“뭐야... 완전 소름 끼쳐”


나는 팔에 곤두선 닭살들을 비벼댔다. 그러니까 그 집에서 첫날은 엄마가 이상한 까까머리 남자가 나오는 꿈을 꿨고, 나는 다음날 저승사자가 나오는 꿈을 꿨고 그 집에서 살면서 겪은 아이러니한 일들, 그리고 시선... 그럼 내가 잘 때마다 누가 내려다보는 것 같았던 기분도 우연이 아니었던 걸까?





새집에서 처음 잠을 잔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번엔 이상한 꿈은 안 꿨지?”

“응, 안 꿨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처음엔 부엌칼 때문에 꺼림직하긴 했지만, 전 집에서 당연하게 느껴졌던 누가 쳐다보는 듯한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편안하다. 기억에 남을 만큼 끔찍한 꿈을 꾼 적도 아직까진 없다. 요즘도 동네를 거닐다 그 뒤숭숭한 일들을 겪었던 집 앞을 지날 때면 혹시나 엄마 꿈에 나왔던 그 까까머리 남자가 나를 알아보고 쫓아오는 건 아닐까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부디 이 아늑한 평화로움이 계속 이어지길.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