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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Sep 10. 2023

어쩌다 디자이너

나는 UI/UX 디자이너다.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면 그냥 웹디자이너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 입시 미술을 했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며, 광고인을 꿈꾸다 잠깐 편집 디자인에 몸담았다가 현재는 10년 넘게 UI/UX 디자이너로 주로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다. 마흔이 되며 지난 삶에 대해 돌아보기도 했지만, 그간 먹고 살았던 커리어에 대해서도 돌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뒤돌아보니 참 방황을 많이 했다. 그냥 그 길을 쭉 온 줄만 알았는데 다양한 포지션에서 이러저러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이게 내 적성에 맞는 길인가 하는 의문도 들지만, 아직은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업으로 삼아 먹고 산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고 인정도 안 될 것 같다.


크게 나의 디자인 커리어는 아래와 같다.

인쇄·편집 디자이너

디자인 학원에서 포트폴리오 준비

메이저 IT 에이전시에서 구축과 운영을 경험

대기업 계약직 디자이너

아웃소싱 소속 파견 디자이너

프리랜서

에이전시와 프로젝트 계약 프리랜서


참고로 난 02학번이다. 한참 지난 구닥다리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동년배들의 공감이 될까 하고 매주 그 여정을 적어볼까 한다.




01. 어쩌다 디자이너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은 비슷하지 않을까? 어릴 적 그림 그리기와 책상 앞에서 끄적거리기 좋아하고, 엄청나지는 않지만, 또래 사이에서는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편에 속했던 조용하지만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아이.


내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을 때는 중학교 2학년 때 한 드라마 때문이었다. 그때 푹 빠져 있던 드라마가 최진실, 안재욱 주연의 ‘별은 내 가슴에’. 계모와 이복형제들의 핍박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나아가 꿈과 사랑에 성공하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나는 꽤 진심으로 빠져들었다.


1997년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주인공 '연이'는 패션 디자이너였고, 그 때문에 드라마 중간중간 패션 일러스트들이 등장했는데 나는 그걸 보고 당시 집에 있던 펜티엄 컴퓨터로 그림판을 열어 서툰 마우스 질로 흉내를 내 퇴근한 아빠에게 보여드리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전까지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조사할 때마다 내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지만, 그 후 몇 년간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잡지 보는 것을 좋아했다. 쎄시, 신디더퍼키, 에꼴, 보그, 바자 같은 패션 잡지를 사서 탐독하면서 연습장에 오리고 붙이고, 멋진 사진을 보면 연습장에 그려보곤 했다. 패션에 관심은 많았지만, 중학생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가끔 부모님이 옷을 사주실 때면 너무도 신중해져서 시내의 거의 모든 옷 가게를 들어가 고르고 골랐다. (지금은 절대 못 할 짓이다. 고르기 귀찮아서 거의 안 산다.)


흠뻑 심취해 있던 난 어느 날부턴가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멋진 화보 속의 인물이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임에도 나의 키는 171cm였고, 말랐기에 패션모델을 꿈꿨다. 런웨이를 워킹하는 모델들을 볼 때면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돌아보면 내가 그렇게 꿈에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을 졸라 1999년 당시 35만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프로필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내가 뭐에 씌었었나 보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꿈에 투자를 해주셨던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순수한 열정이었다. 스튜디오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했던 그 열정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극적이 되어 제대로 지원조차 해보지 못하고 끝이나 버렸다. 프로필 사진이 맘에 들지 않게 나온 것도 있고… 지금은 부끄러워서 그 사진을 꺼내볼 수도 없지만.




고3이 되어서야 진로 고민에 빠졌다. 딱히 가고 싶은 과도 없고,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림 그리기였는데 고3이 되어버렸는데 이제와서 미술학원을 간단 말인가?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아니면 고1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림을 그려왔는데, 고3 4월에 미대 입시를 시작한다는 건 너무 늦어버린 일이었다.


어느 날 아빠와 진로 고민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리며 솔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놨다. 아빠의 표정은 엄청나게 심각하셨고, 바로 다음 날 하교 한 나를 미술학원으로 끌고 가셨다. 직장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자녀를 둔 동료분에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학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엄청나게 짜증을 내면서 울었다. 이제와서 뭘 할 수 있겠냐고… 하고는 싶었지만, 막상 진짜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학원에 가서 간단한 그림 테스트를 받았다. 학원에서도 가능성이 없으면 등록이 불가하다고 했다.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끝내고 그렇게 나는 미술학원에 다니게 됐고, 대입까지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석고소묘에만 매진하기로 했다. 내 관심과 전혀 관련이 없는, 그저 점수에 맞는 학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이 미술이었기에 일단 뭐가 될지는 몰라도 미술 관련한 학교에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비너스, 아그립파, 쥴리앙... 석고상을 매일 각도를 바꿔가며 그렸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꾸준하게. 수능이 끝나고 다른 친구들은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놀고 있을 때 실기 준비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에 3장을 그렸다. 한 장을 그리는 데는 3~4시간이 걸린다. 마치 프린터기가 된 듯 그림을 뽑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등받이도 없는 그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하루에 최소 10시간을 어떻게 앉아있었나 싶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데, 그러고 나면 정말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진짜 열심히 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이다. 항상 학원에 선생님보다 먼저 오는 학생, 학원 문이 열리면 청소도 강사 선생님이랑 같이하고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도 한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살았던 시기인 것 같다. 가끔 너무 하기 싫어서 울면서 그린 적도 있고, 그림을 쭉 널어놓고 어제보다 못 그린 사람을 불러내 각목으로 엉덩이를 때릴 때면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다음 해부터 체벌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학에 가서 뭘 하고 싶은지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들 지원하는 시각디자인 쪽을 선택하게 된 것이지 큰 고민은 없었다. 가서 뭘 배우게 될지도 잘 몰랐고, 그렇게 해서 무슨 직업을 갖게 되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1학년 땐 산업 디자인학부였고, 2학년 때 공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선택해야 했다. 공업디자인을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당시 공업디자인과는 제도 수업이 있다고 해서 그게 싫어서 안 갔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오래된 이야기라 지금 쓰다 보니 기억이 하나, 둘 난다.


당시엔 Photoshop 8.0을 사용할 때였고, 이전 선배들까지만 해도 과제를 에어브러시로 직접 그렸다. 거의 우리 학번부터 컴퓨터 작업을 했다. 카메라도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던 초창기. 아 말하다 보니 내가 정말 오래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닥쳤을 때 선택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앞날의 계획을 세웠던데 나에게 큰 그림 따위는 없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방황을 했나?


대학 수업에는 여러 과목이 있었지만, 나는 광고디자인 수업이 재미있었고, 교수님께 칭찬도 받으니 광고 공모전 동아리 활동까지 했다.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까지 하며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화려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제일 싫어했던 수업은 웹디자인이었다. 과제를 하면서 이건 정말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냥 그 과목을 맡아서 자기도 조금씩 공부해서 그때그때 알려주는 거면서 까칠하기까지 했던 교수님이 싫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웹 디자인은 절대 안 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 10년 넘게 이걸로 먹고 살고 있다니… 진짜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번역되어 이끌려 오나 보다. 그렇게 목표 없이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나와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 사회에 방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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