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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Sep 23. 2023

가족회사? 도망쳐!

이렇다 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준비 없이 사회로 방출된 나는 한동안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몇 군데 대기업에 지원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설렁설렁해서 합격할 리가 없었다. 시간은 잘만 흘러갔고 내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이러느니 어디라도 들어가 보자'고 결심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오픈했다. 생각보다 빨리 몇 군데서 연락이 왔고, 나는 처음 면접을 본 곳에 취직하게 되었다.


7명의 작은 그래픽 디자인 회사였다. 신생 회사도 아니었고, 규모에 비해서는 꽤 이름있는 기업의 일들을 했다는 것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돌아보면 이미 출근 첫날 신은 어서 여기서 도망치라고 나에게 모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면접을 보던 대표는 중간에 갑자기 자리를 비우더니 내 생년월일을 가지고 사주를 따져보고 온 이상한 면접. 첫 출근부터 별 이슈도 없이 밤 10시까지 한 야근. 대표와 사장이 서로 남매인 가족회사. 직원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점. 게다가 그 전 직원들은 말도 없이 갑자기 단체로 그만뒀다고 했다.


출근한 지 하루 만에 들은 이야기로도 예견된 결말이었는데 나는 왜 그 회사에 다녔을까?


'사람들이 다 바뀌었으니 괜찮을 거야'라는 안일함, '내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라는 이유 없는 자신감, 또 다른 곳에 면접을 보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귀찮음… 그리고 인간은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막상 그 안에 있으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회사 대표는 여자였고, 사장은 남자였는데 알고 보니 둘은 누나와 동생 사이였다.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힘든 사람은 직원들이었다. 가족회사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곳에서는 조금의 장점도 없었다. 회사 시스템에 체계가 없었고, 어릴 적부터 집에서 얽혀온 복잡한 감정들이 회사 일까지 영향을 끼쳤다.


대표와 사장은 영업을 해온다는 이유로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으니, 직원들만 오롯이 회사를 지키고 있었다. 둘이 서로 말을 하지 않으니 지금 회사에서 어떤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 리가 만무했다. 대표가 가져온 일로 야근까지 하며 바쁜데 갑자기 사장이 자기가 따온 일이 내일모레까지 기한이라며 들이미는 일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그 일을 일주일 동안 사장이 가지고만 있어서 시간만 흘려보냈던 것이었다. 1명의 기획자와 4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직원들은 1~2시간씩 돌아가며 회의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을 하느라 3일 동안 퇴근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한 탓에 10장도 안 되는 카탈로그 디자인을 나누어서 한두 쪽씩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표는 대학원과 골프 모임을 다니며 얻은 인맥으로 돈 되는 일이라면 다 받아왔다. 카탈로그, 리플렛, 광고지면 같은 그래픽 디자인을 다루는 회사에 패션쇼가 웬 말이며, 증권사 홈페이지를 어떻게 만드냔 말이다. 던져놓으면 끝인 이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든 소화해 내려고 애쓰는 바보같이 성실한 직원들이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그때 그 대표 나이쯤이 되었다. 별로 역지사지를 해보고 싶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인지 대표는 기댈 곳이 필요했는지 미신에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도 사주를 보고 뽑고, 가끔 어떤 날 출근을 해보면 사무실에 무슨 비방을 했는지 쑥 태운 냄새로 가득했다.


웹디자이너로 전직하기 위해 디자인학원에 다녔을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성공한 프리랜서란 없다.’

혼자 일하던 프리랜서 디자이너도 잘되게 되면 일의 규모도 커지게 되고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은 그렇게 회사를 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턴 일이 없어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한다. 의뢰가 오는 어떤 일이든 아쉬우니 마다하지 않고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부분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할 수 있는 일을 가져와야지 개발까지 해야 하는 증권사 홈페이지는 노력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무능력한 사람으로 몰면 안 되는 것이다. 물갈이되기 전 그 일을 재수 없게 맡게 된 직원은 꽤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html을 열어보니 코드에 쌍욕을 적어놓았고 다음 날부터 출근을 안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그 일은 몇 달을 표류하다가 전문적인 회사로 넘겨진 것 같았다. 


작은 회사에서는 자질구레한 일들도 회사 일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진다. 디자인 업무 외에 대표의 자동차 범칙금을 내러 간다든지, 회사 통장 정리, 회사에 온 손님 차 타다 주기, 설거지, 사무실 청소 같은 것들. 심지어 대표의 개인적인 일에 동원될 수 있다. (내가 겪은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대신 작업해야 한다든지, 전시 준비를 위해 주말에 불려 나가는 것 같은 것들... 


호프집 알바생이 더 많이 벌 것이라고 넋두리할 정도로 적은 월급으로 나의 일상이 송두리째 저당 잡혔다. ‘신입이라서 뭐든 다 경험하면 좋아’라는 열정이 누군가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뭐 잘하기만 했느냐고?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실무의 수박 겉핥기처럼 경험을 해보는 수준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실무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나는 경력도 없는 생신입이었고, 다른 디자이너가 있었지만 각자 자기 일을 쳐내느라 사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편집 디자이너의 실수는 금전적인 피해까지 이어진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인쇄되어 납품하게 되면 본전이고, 오타가 하나라도 있으면 사고다. 재인쇄를 해야 한다던가, 스티커 작업을 해야 하는 일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그 단계에서 실수를 발견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미 다 배포가 된 인쇄물에 금액이나, 전화번호를 잘못 기재했다면? 어후... 상상도 하기 싫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납품을 하고도 불안함을 안고 살았다. 혹시나 잘못된 것이 있어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날 일 때문이었다. 카탈로그 디자인을 해서 인쇄할 필름을 뽑아 충무로 인쇄소로 보내기 전 필름을 검수했는데 그때 여러 명이 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중요한 부품 사진이 생략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쇄소에 넘겼다. 당시 나는 일러스트레이터 CS2로 작업을 했는데, 필름을 뽑은 업체의 버전이 더 낮아서 생긴 충돌 오류였다. 대표와 나는 감리를 위해 충무로 인쇄소로 향했다. 인쇄가 시작되었고 기계에서는 폭포수가 쏟아지듯 종이가 쏟아져 나왔다. 샘플을 보는데 거기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실수를 발견한 순간에도 종이는 나의 절망감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대표에게 상황을 바로 말했고, 다시 필름을 뽑아 퀵으로 받고 그걸 다시 인쇄를 걸고... 아주 번거롭고 절망스러운 하루였다. 그날 이후, 나는 일하는 것이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여러 명이 검수했음에도 아무도 찾지 못한 것인데, 나는 모든 것이 내 탓 같았고, 자신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을 했다.


일도 일이었지만 별다른 업무 없이도 퇴근 시간에 서로 눈치 보느라 퇴근하겠다는 말도 못 하고 있다가 느지막이 사무실에 온 대표가 “야, 밥 시켜”라는 말에 어이없는 야근을 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당연히 야근수당 같은 것은 없었다) 지금 같으면 눈치 안 보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하고 퇴근할 텐데 그땐 그 한마디를 아무도 못 했다. 


나도 융통성이 없는 신입이었다. 우리 회사에 지면광고를 맡기고 있던 거래처에서 광고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 "앞으로는 여기와 거래를 끊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네, 알겠습니다."하고 끊었다. 대표가 뒤늦게 출근했을 때, 그 전화 이야기를 하니 노발대발 나에게 화를 냈다. 다시 생각해 봐 주시면 안 되느냐, 뭐가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었는지 물어봐야지 알겠다고 하고 끊어버리면 어떡하냐고... 대표입장에서는 거래처 하나하나가 아쉬운 마당에 갓 들어온 신입이 거래처를 하나 날려버리게 생겼으니, 속이 터졌을 것이다. 근데 들어온 지 한두 달 된 신입이 뭘 알겠는가? 어떻게 할지 모르면 '대표님께 연락드리라고 하겠다'고 하고 넘기면 그만이었던 전화였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 계속 거래를 유지했고, 알고 보니 다른 직원의 실수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일 때문에 대표는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6개월을 간신히 채우고 그 회사를 그만뒀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방향도 정하지 못하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시간만 죽이다 조바심이 생기니 성급하게 내디뎠던 그 한 발짝 때문에 나는 오랜 시간 방황을 하게 되었다. 디자인 업계에 대한 실망 그리고 나에 대한 실망. 내가 꿈꿨던 멋진 커리어 우먼도 아니었고, 감각적이고 폼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별 보람도 없이 밥 먹듯이 야근하던 찌질한 회사 생활. 더 이상 디자인이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된 길이라는 판단이 서면 다시 다른 길로 수정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한번 들어서면 어떻게든 가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6개월이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다시 좋은 곳을 찾아서 시작하면 되는 시간이었는데 주저앉은 것이 문제였다. 겨우 20대 중반에...


그래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이력서를 몇 군데 넣긴 했다. 꽤 괜찮은 곳의 면접을 보기도 했다. 속으로는 디자인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대답을 하니 면접관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면접을 보면서도 속으로는 '혹시나 합격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단 한 군데에서도 합격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제 나 뭐 해 먹고 살지?'

나는 정말로 길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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