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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Oct 07. 2023

자신감은 실력으로부터

첫 직장을 성급하게 결정했던 실수로 나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디자인이 하기 싫어졌다. 겨우 25살이었다. 길을 잃었다. 그렇게 1년을 낭비했다.


짧은 직장생활을 하며 성장하지 못했고 소모만 했다는 생각에 그간의 시간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란 인간의 관성은 어마무시하다. 멈추면 다시 움직이기까지 10배쯤 힘을 들여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 하락과 함께 자존감까지 덩달아 낮아졌고,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수록 모아이 석상처럼 우두커니 박혀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무의미한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앞으로 살아봐야 아무것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없었다.


‘왜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나?’라는 것부터 ‘왜?’라는 질문을 거듭해 보았다. 너무 오래 쉬다 보니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회사에 가서도 뭐든 다 두려울 것 같았다.


편집디자인은 작은 실수도 사고로 이어지니 일하면서 매일 살얼음판이었다. 다시 그 길을 가는 건 나의 성향상 맞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뭘 해 먹고 살고 있는지 둘러보았다. 몇몇을 빼고는 거의 다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생 때 다른 건 다해도 웹디자인만은 절대 안 하겠다고 단언하지 않았던가? (이래서 사람이 쉽게 장담해선 안 된다)


‘웹디자인은 실수하면 바로 고칠 수 있지 않나?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웹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배운 게 디자인이니 그 길밖에 없어 보였다.


이번엔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했다. 나 자신도 인정할 만한 실력을 갖춰야만 자신 있게 내밀 수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결론을 그제야 내렸다.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다. 작심삼일로 끝날 나를 아니까.


웹디자이너로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언니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 언니 역시 긴 공백기가 있었지만, 학원에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취업에 성공했고, 자기가 다닌 곳은 아니지만 실력은 거기가 최고라며 학원을 추천해 주었다. 사이트를 살펴보니 이론과 실력을 다시 갖추고 멋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괜찮은 곳에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기를 내 지원 신청을 했고, 면접에 가지고 다니던 포트폴리오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 수정해서 가지고 갔다. 2차 면접까지 본 후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반은 7명이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왕언니였다. 스파르타 수준의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선 엄격하고 무서우셨지만, 열정 또한 대단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을 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열심히 했다.) 나는 벼랑 끝이었다. 돌아갈 길이 없었기에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었다. 나의 일상을 모조리 올인했다.


지금 돌아보면 회사 일보다 더 빡쌨다. 어떤 날은 과제가 많아서 밤을 샜는데 도저히 잠을 안 자면 안 될 것 같아서 2시간 눈을 붙였다. 혹시나 못 일어날까 봐 맨바닥에 이불도 덮지 않고 잠깐 잠을 청했다. 혼나기도 엄청 혼났다. 내가 왕언니였기에 우리 반 기강을 잡으려 나에게 더 엄격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이 악물고 버텼다. 학원에 갈 때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긴장이 되었지만, 칭찬을 받을 때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수업 과정은 영업비밀인 것 같아서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날이 갈수록 나는 나에게 떳떳해졌다. 그렇게 1년이 흘러 있었다.


수업이 종료되고 웹에이전시에 지원을 시작했다. 서른 군데 넘게 입사 지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원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원하던 회사에 취업한 같은 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달이 넘도록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정말 꼼수 하나 부리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어찌 된 일일까?’

불안했다. 오로지 이것밖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했는데 연락이 한 곳도 오지않다니... 믿고 지켜봐 주신 부모님께도 면목이 없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는 위가 뭉치고 쓰려서 배를 펴지도 못하고 새우처럼 웅크려 잠도 못 잤다. 그러면서도 내가 제일 가고 싶었던 회사 명함에 내 이름이 박혀있는 상상을 매일 했다.


그렇게 두 달이 넘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여러곳에서 한꺼번에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마치 짠듯이 말이다. 연락이 오는 족족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면접 본 모든 곳에서 합격 연락을 받았다. 당장 취업을 해도 되겠지만 마음 한구석엔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버스 안에서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그 회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기했던 것은 직전에 일했던 그 편집 디자인 회사 사장과 내가 가고 싶어 했던 회사의 디자인 실장이 아는 사이였다. 내 이력서에 써진 회사 이름을 보고 평판 조회 겸 사장에게 전화했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로 전해 들었다. 세상은 정말 좁다. 이래서 아무리 싫은 회사여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나와야 한다.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일한 거의 모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같은 학원 출신 선후배, 같이 일했던 상사 또는 동료의 지인. 업계는 정말 좁다. 그러니 아무리 싫어서 회사를 나오게 되더라도 적을 만들지 않도록!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른다. 갑/을로 만나든, 동료로 만나든. 끔찍한 이야기겠지만 그렇게 원수같이 생각한 회사에 재입사할 수도 있다)


나는 1차 실무진 면접과 2차 임원진 PT 면접을 거쳐 목표했던 메이저 웹에이전시에 입사했다. 그렇게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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