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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Oct 30. 2023

주말에 아팠다.

주말에 아팠다. 작년 봄에 코로나에 걸렸던 후로 처음이다. 금요일에 휴가라서 신이 났었다. 지인을 만나 삼겹살에 술 한잔 기울이고, 카페에서 밀린 수다를 떨고 들어오는 길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마셨던 아메리카노에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두통은 점점 내려와 턱관절까지 아프기 시작했고, 이윽고 연달아 몇 번의 재채기를 하자 나는 완벽한 감기 환자가 되어있었다.




목구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래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노력했지만 빠져나올 생각이 없었다.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는데 살갗까지 따가웠다. 서랍을 뒤졌다. 코로나 때 비상약으로 사놓았던 약들이 다행히 몇 가지 남아있었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우니 평소에 찌르르 찌르르 들리던 이명이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카페인의 각성과 내 몸에 전기가 관통하는 듯 점점 커지는 이명, 메마른 코로 아린 숨을 쉬며 새벽이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어쩌다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니 주말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나마 코로나에 걸렸을 땐, 동생과 함께 살고 있어서 같이 밥이라도 시켜 먹고 말동무라도 했는데... 적적했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평소에 항상 틀어놓는 것인데 몸이 아파서 그런가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었다. 누워서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니 괜히 더 고립된 기분이었다. 이 가을, 가장 날씨가 좋은 날 중 하루일 텐데 이렇게 침대 안에서 낭비하다니...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로 떠났겠지?


가족밴드에다 아프다고 엄살을 부려볼까 했지만 그러면 부모님이 전화할 것 같아서 그것도 싫었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하... 너무 귀찮았다. 그렇다고 빈속에 약을 먹었다간 몇 달을 고생했다가 간신히 괜찮아진 위염이 바로 도질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 다행히 죽과 수프를 여러 개 사놓아서 너무 다행이었다. 전자렌지에 1분 30초. 끼니가 준비됐다. 재빨리 책상 앞에서 양송이 크림수프를 먹어 치우고 약을 먹어야 했다. 누워만 있다가 의자에 앉으니, 엉치가 결렸다. 좁디좁은 방이라 몇 걸음 걷지도 못한다. 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앉으면 엉치가 아프고. 마음으로는 걸으러 나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힘은 없었다. 혹시나 코로나일까 자가검진 키트를 했다. 다행히 음성.


밖은 너무도 밝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지만 집이 서향이라 그런지 내 방은 쌀쌀하고 축축했다. 지지난 주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짐이 되어 주말에 꼭 올리려고 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누워있으면서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내 일상에 큰 변화가 없는 한 계속 혼자 살게 될 것 같은데 늙어서 혼자 아프면 이렇겠다고 생각하니 쓸쓸함이 허무하게 덮쳐왔다.




일상은 건강을 바탕으로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끼며 1년 중 몇 안 되는 쾌청한 가을 주말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혼자 살기 위해선 항상 넉넉하게 상비약을 준비해 놓고, 간단하게 먹을 요기 거리도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점을 체크리스트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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