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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Jan 21. 2024

불청객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아프면 같이 병원 가 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게 문제지.”

“내가 뭐 결혼 안 하고 싶어서 안 했어? 못한 거지?”

“아니 결혼 안 하면 그렇다고 말하는 건데 너는 왜 그렇게 꼬아서 듣니?”

“안 한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면 그게 나한테 하는 말이지!”

“너 작년부터 뭔 말만 하면 삐딱한 거 알어?”

“노처녀 히스테린가 보지!!!”


엄마가 몇 년 전에 받았던 위암 수술 이후에 또 옆에 떼어낼 것이 생겼다고 해서 내 딴엔 몸보신도 시켜드릴 겸 맛있는 것을 사드리려고 고향 집에 내려갔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소고깃집에 가서 푸짐한 저녁을 사드리고 다음 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점심밥을 다 먹고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마지막에 얼굴을 붉히고 온 것이다.


“왔다 가느라 힘든데 고마워. 돈도 많이 썼을 텐데. 조심히 올라가”

“네

고향 집을 나서면서 엄마의 인사에 나는 단답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며칠이 지나도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작년부터 삐딱해졌다는 말.

‘내가 시집 안 가고 싶어서 안 가? 뭘 어쩌라고.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내가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그저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위기감 같은 것도 없었고, 남들이 결혼 적령기를 넘길까 봐 걱정하고 있을 때 나는 자아실현 따위나 걱정하고 있었으니. 지금 돌아보면 약삭빠른 친구들은 대학에 다닐 때도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플랜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저 운명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뭐 다들 하니까 나도 언젠가는 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근데 작년부터 내가 삐딱해졌다고? 작년… 작년에 내가 무슨 일이 있었지? 마흔이 돼서 왔던 사십춘기야 이미 지난 지 오래고… 아마 회사 때문일까?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면 저녁 먹고 가만히 쉬거나, 주말에도 조용히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충전한다. 그리고 간혹 친한 지인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나는 성장을 원하는 사람이고, 지금껏 그것을 일에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계속 퇴행하고 있고, 일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월급을 받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내 삶이 무의미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몇 되지 않는 간단한 업무 속에서도 소통이 되지 않는 사무실 사람들을 보며 어느 한 곳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감옥 같았다.


올해를 시작하며 더 그렇게 느낀다. 어디를 가도 불청객이 된 듯했다. 그것이 극대화된 것은 최근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다. 계속 몸이 피곤하더니 갑자기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오한이 들고 식은땀이 나다가 콧물이 나고 목구멍이 아팠다. 나는 집에 남아있던 종합 감기약과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주말을 버텼다. 입맛도 없어서 남아있던 피자를 한 조각 겨우 데워 먹고 종일 자다 깨다 하며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다. 요즘 A형 독감이 유행이라 걱정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감기와 코로나는 약 처방이 똑같이 나간다고 하며, 독감일 경우에는 타미플루를 처방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은 감기약을 처방해 줄 건데 약을 먹고도 계속 열이 올라가면 독감 검사를 해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약을 먹으니 좀 나아지는듯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하나 남아있던 코로나 자가검진 키트를 해보았다시약이 검사지에 빨려 올라가는 동시에 2줄이 나왔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코로나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요즘 주변에 코로나 걸린 사람이 흔치 않아서 회사 방침은 작년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출근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다음날이 되어서나 알 수 있었다. 회사 톡방에 알리고 아침에 부리나케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역시 확진이었다. 지침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몸은 천근만근 깔아졌다. 5일 동안 마스크 착용하고 출근이라고 한다. 같이 식사는 하지 말고, 쉬는 것은 개인 연차를 활용하라고 했다. 나는 이미 1월 휴가를 써버린 상태였는데 그날은 집에서 쉬라고 했다.


저녁때쯤, 차장님에게 괜찮냐면서 톡이 왔다. 팀장이 소독약 뿌리고 난리를 떨었는데 혹시 출근해서 그런 거 봐도 너무 기분 상하지 말라고… 팀장은 전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 된통 아팠어서 다시는 걸리지 않고 싶다고 했단다. 누가 걸리고 싶어서 걸렸나. 그리고 마스크 쓰고 출근하라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에탄올 소독약을 챙기고, 마스크도 KF94를 쓰고 점심으로 먹을 인스턴트 죽도 챙겨 출근했다. 누구 하나 괜찮냐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나는 소독약으로 문손잡이, 내 자리를 닦았다. 겉옷도 다 같이 거는 행거에 걸지 않고 내 의자에 걸고, 사무실 문도 항상 열어두고, 물도 사무실 밖에 나가서 마셨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내가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 소독약 냄새가 났다. 팀장이 여기저기 뿌려댄 것이다. 게다가 퇴근하고 나면 또 여기저기 뿌려대는 것 같았다. 소독약이 훅훅 줄어있었다. 공기 중에 뿌리는 용도가 아니고 피부용인데 흡입하면 안 좋고 점막에 자극을 주고 두통을 유발한다고 쓰여있어서 사람들이 뿌리지 말라고 해도 팀장은 그 말을 면전에서 무시한 채 아랑곳하지 않고 뿌려댔다고 했다. 


점심시간에도 비어있는 회의실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밥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소 같으면 팀장은 사무실에서 밥을 먹고 의자에 기대서 잠을 자던데 내가 사무실에 있어서 매일 밖에 나가 다른 곳에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이 지나도록 밥을 못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차장님은 그냥 사무실에서 먹으라고 했다.

“아니에요.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요.”


다음날 다시 자가검진 키트로 검사해 보니 '음성'이 나왔다. 아마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쯤에 병원에 갔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5일은 회사에 마스크를 쓰고 가야 했고, 나는 그동안 계속 바이러스 취급을 당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나 옮기게 될까 봐 최대한 조심했는데 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약을 뿌려서 진하게 풍겨오던 소독약 냄새를 맡을 때마다 수치스러웠다. 가뜩이나 요즘 사무실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는데 나는 더 말수가 없어졌다.




어디를 가나 나는 불청객이었다.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오롯이 나만이 나를 안아줄 수 있다. 나름 명랑한 면이 있는 난데, 요즘은 글도 부정적인 이야기만 쓰게 된다. '어떻게 해야만 덜 고통스러울까?' 주말에 푹 쉬면서 생각해 보려 했다. 몸도 아프지 않고 간만에 푹 쉴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것도 틀렸다. 냉장고를 여는데 뭔가 걸리는 듯 '드드득'하더니 냉장실 문이 닫히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경첩 부분이 고장 나 보였다. 바로 수리센터에 A/S 접수를 했다. 월요일이나 돼야 온다고 한다. 억지로 겨우 닫아놓았지만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열려있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려대는 통에 결국 냉장고 전원을 껐다. 어설프게 닫힌 냉장고 문을 테이프로 붙이며 한숨이 나왔다. 나는 결국 집에서도 맘 편히 쉬지를 못하는구나... 2024년 시작부터 성가신 일들이 너무 많다. 아직 음력으로 2024년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하며 구정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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