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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Jan 14. 2024

미워하든지 말든지

요즘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저녁 식사를 대충 먹고 바로 불 끄고 잠자리에 눕는다. 전기매트로 따뜻해진 자리에 누워 두툼하고 무거운 솜이불의 무게감은 나를 안도하게 한다. 그때부터 마치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것처럼 회복이 시작된다. 그런데도 화났던 일들과 꼴 보기 싫은 얼굴들이 불쑥 떠오른다. 지칠 대로 지친 것 같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한 공간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어야 하는 것이 끔찍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면 지난 건강검진에서 정상 수치를 넘어갔던 몇 가지 항목들이 결국 지병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이니 말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발뒤꿈치도 보기 싫다더니 정말 그렇다. 나는 그 사람이 매일 페이크 삭스를 신어 드러난 움푹 패인 발목에 아킬레스건만 봐도 기분이 더럽다.




30대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했다. 털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었고, 어떤 그룹에서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나는 꽤 예민한 사람이라서 항상 여러 개의 레이더가 켜져 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친구,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들 관계에도 신경이 쓰여 괜한 오지랖을 부리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너무 신경이 쓰였다. 평화로웠으면 좋겠는데 내가 가장 오래 있어야 하는 회사가 가시방석인 것이 싫었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 그들의 화해를 위해 나섰던 것이다. 나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에게 한 명씩 커피 한잔하러 나가자고 해서 무슨 일 있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며 상대가 전혀 그런 의미로 행동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흘리며 둘의 오해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MBTI인 INFP 열정적인 중재자에 걸맞게 단체에서 어떤 무리와 무리의 중간에 걸쳐 연결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피곤하게 살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신경 안 쓰면 되지!'

나에게 탑재되어 있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신경을 끄고 싶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자길 불러도 주변 소리가 안 들린다는데 나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나는 언제나 멀티태스킹 모드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에 앉아있는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엔터키를 세게 내려치는 것, 오른쪽에 앉아있는 남자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다리를 떨어대는 것에서 신경을 끄고 싶다. 카운터에 이미 나와 있는 음료를 가져가라고 몇 번이나 번호를 부르는데 제발 좀 주인이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뭐 그건 그렇고 상대의 경직된 표정, 눈 찡그림, 시선, 말투 등의 미세한 것들에도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다. 내가 누군가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몇 페이지는 핸드폰으로 찍어놓고 미움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될 때 꺼내보곤 했다. 그만큼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인정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내가 새로 온 팀장을 싫어하는 것처럼 팀장도 나를 싫어한다. 예전 같았으면 그것이 너무도 신경 쓰여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나쁜 년이 아니에요’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싫어하는 티는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싫으면 싫어하라지뭐. 그런 인간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무 타격감도 없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사람과 하루 종일 한 공간 안에 있는 것이 너무 진저리가 난다. 하지만 그런 인간 때문에 내 생계를 위협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딜 가나 돌아이는 있기 마련. 그냥 우리 사무실엔 그 비중이 좀 많은 것뿐이라는 정신 승리를 하고, 최후의 방법은 최대한 접촉을 줄이고 인지하지 않고 사는 방법뿐이다.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올라 회사로 향하며 다짐한다.

‘나는 감정을 집에 놓고 왔다. 아무리 이상한 짓거리 하는 것을 봐도 모른 체 하자. 말 섞지 말자. 나는 내 몫만 하면 된다.’




지금 직장에서 일하기 전 2년 정도 집에서 프리랜서 일을 했다. 아침 9시쯤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씻은 다음, 드립커피 머신에 거름종이를 두르고 전원을 켜면 향긋한 커피 냄새가 방안에 퍼진다. 그리고 나는 분말형 수프를 컵에 타서 식빵 2장을 준비하고 내려진 커피를 한 잔 따라서 아침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점심은 배달 앱으로 시켜서 때우고, 일을 하다가 저녁 6시가 되면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한 바퀴 돌고 온 후, 잠깐 쉬고는 다시 일을 하곤 했다. 평화로운 하루 루틴이었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싫은 인간들과 마주하면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출퇴근 시간 낭비가 없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다. 단점은 손쉽게 세상과 단절된다. 한 달에 만남이 한 번도 없을 때도 있는데 매일 혼자 밥 먹고, 일하고, 자는 것밖에 안 하다 보니 '이렇게 돈을 벌어봐야 도대체 무슨 소용 있나?'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나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프리랜서라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이 없어 쉴 때는 수익도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나는 타고난 성품이 청개구리다. 정직원으로 묶여있으면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30대 중반에 깨달았다. 타협점으로 찾은 것이 회사에 소속된 프리랜서다. 프로젝트로 계약하고 회사원이나 다름없지만 계약이 다르다. 급여에서 3.3% 세금을 떼고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없다. 국민건강보험과 연금보험은 지역가입자로 낸다. 때마다 제출해야 하는 인사 평가서, 승진 같은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에 엮일 필요 없고, 내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이런저런 고민이 있지만 그래도 잘 다니고 있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버티고 있다.


예전엔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든다. 나를 위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떠나든, 어떻게든 버티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내 실속을 챙기든. 나를 미워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내 삶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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