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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Dec 31. 2023

꾸준했던 한 해, 나에게 고마워

2023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 9시, 알림 소리에 눈을 떴다. 그동안 매달 부었던 적금이 만기 되어 자동 해지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이자가 붙어 조금 더 커진 눈덩이로 돌아온 통장잔고에 내년엔 더 큰 눈덩이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연휴엔 늦잠 자는 게 최고의 힐링인데 작은 알람 소리에 눈을 번쩍 떠버린 것 보니 잠을 더 자기엔 그른 것 같았다. 지난 1월에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결제했던 영어 공부 앱을 열어 매일 그렇듯 30개의 단어학습을 하고 문장 완성 문제도 풀었다. 며칠 깜빡했던 것 빼고는 올해 꾸준히 매일 공부했던 나 자신이 기특했다. 1년만 해보고 해지하려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내년도 꾸준히 할 생각이다.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사 먹었던 까눌레를 너무 맛있게 먹었던 탓인지 갑자기 까눌레가 먹고 싶었다. 나에게 빵이란 손쉽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수단 정도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음식인데 신기할 노릇이었다. 무슨 매력으로 까눌레를 먹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디저트였는데 이제야 그 겉바속촉의 맛을 알아버렸다. 배달앱을 켜서 괜찮아 보이는 빵집을 찾았다. 그런데 최소 주문 금액이 19,000원이었다. 까눌레는 2,800원인데 말이다. 메뉴와 리뷰를 번갈아 보며 구미가 당기는 사과파이와 소금빵, 산딸기 피낭시에를 추가로 담았는데 900원이 부족했다. 집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셔도 되지만 왠지 카페의 아메리카노의 맛이 그리워 아메리카노도 추가로 주문했다. 25분 후면 도착한단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덕분에 전기요로 따끈따끈한 이불속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다.


먹을 자리를 세팅해 놓고 기다렸더니 빵과 커피는 금세 도착했다. 문 앞에 놓고 벨 눌러 달라고 요청했기에 벨을 누르고 가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나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앞에 놓고 간다고 전화하는 건가? 꼼꼼한 사람이네.' 하며 그러려니 하고 전화는 받지 않았다. 현관문을 빼꼼 열어 빵 봉지와 커피를 안으로 들이는데 그제야 왜 배달 기사가 전화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커피가 넘쳐 종이컵이 얼룩덜룩 되어 있었고, 뚜껑을 열자 1/3의 커피가 사라져 있었다.


'아… 커피 괜히 시켰네' 생각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커피가 쏟아져서 죄송하다는 배달 기사의 문자였다. 고객센터에 연락하면 다시 요청하실 수 있다고 거듭 사과 문자를 보내왔다. 평소 배달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와도 번호가 노출될까 봐 답문하지 않는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할 수 있지 뭐. 고작 커피 좀 쏟은 거.'

만약에 흘러넘쳤는데도 아무 이야기도 없이 두고 갔다면 나도 기분이 상해 컴플레인을 제기했을 텐데 이런 대응이 고맙기도 했다. 아니었다면 마지막 날 아침 기분을 망쳤을 텐데 말이다. 그분도 괜찮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꽤 괜찮은 어른의 대처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 뒤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일들이 별로 없다.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직장에서 변함없이 같은 일로 비슷한 일상을 보냈다. 만나는 친구도 자주 가는 장소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 말은 일상에 변화를 줄 만한 나쁜 일 또한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와 가족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있어서 감사하고, '지겹다, 지겹다'해도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 감사하고,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을 수 있어 감사했다.


매일 영어 공부를 하고, 매주 브런치에 글을 게재하고, 꾸준히 부은 적금처럼 뚜벅뚜벅 걸어온 한 해였다. ‘꾸준히’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데 꾸준하게 한 것들이 있어서 그런지 올해의 마지막이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연장선처럼 느껴져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서 새해가 시작되어서 좀 더 추진력이 생기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변화가 없었던 한해여서 그랬는지 나는 매일 날이 서 있었다. 감각들은 더 예민해져서 작은 자극에도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나만 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지,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내 밥을 더 늦게 갖다주는지, 왜 나에게만 성의 없이 응대하는지, 왜 내 앞을 새치기하는지! 못난이처럼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 섞인 얼굴로 못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2024년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꾸준함은 유지하면서 좋은 변화를 만들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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