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할아버지 Aug 19. 2021

무척이나 추웠던 그해 겨울

아내의 희귀병 치료차 이주를 했던 시골집, 그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추운 겨울 아침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냉기가 무척이나 차가웠고, 그날따라 평소와는 달리 늦게 잠을 깬 아내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섬뜩 하리만큼 부자연스러웠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 마치 백치가 된 듯 문고리 조차 찾지 못하는 모습에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다. 

왜 그래 홍여사! 하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다. 급히 서둘러 평소 다니던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진찰을 받았다. MRI를 비롯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뇌졸중입니다." 짤막한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벌써 수년을 알아온 희귀병에 뇌졸중 까지, 모든 것이 끝인 듯 아득하기만 했다. 

몇 년째 다니던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 희귀병,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좋은 공기를 찾아 내려온 시골집 그곳에서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것, 남아있는 홍 여사와의 시간을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럼 무엇을 먼저 하지?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이 집을 안 밖으로 내 손길이 모두 닿아 있으면 홍 여사가 편안하게 잠이라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뇌졸중이 오게 된 원인부터 해결하려면 50년이나 된 시골집 단열 작업부터 해야지. 그렇지만 목공 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렵기만 하였다.

열심히 자료 찾고 귀동냥하며 다른 사람 손 하나 빌리지 않고 외벽 단열 작업을 완벽하게 해냈다. 다음 작업으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밝은 색으로 도배를 하고 싱크대도 베이지 계열 시트지를 붙여 밝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시골집 작은 마당에는 홍 여사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데크를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그때는 데크가 있는 곳이 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사진도 찍고 유심히 관찰하여 단점들을 개선한 나만의 데크를 만들었다. 데크를 본 동네 분들은 전직이 의심스럽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초보 같지 않은 데크가 되었다.

이 데크 역시 홍 여사가 편히 쉴 수 있고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 손을 조금도 빌리지 않고 오로지 혼자 만의 힘으로 만들었다. 데크에는 유리로 온실을 만들고 현관 앞에는 비닐로 온실을 만들어 이듬해 겨울을 맞았다. 이것이 나의 초보 목공의 시작이자 백가지의 취미를 갖게 된 시작이 되었다.

모든 것이 끝인 것 만 같았던 시간들 하지만 그 끝은 새로운 시간들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야!"를 품고 살던 나였는데 거듭되는 깊은 나락들이 나를 잠시 혼미하게 하였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경험들은 좋은 남편을 만들어 주고 좋은 아빠에 좋은 할아버지로 만들어 주었다. 

홍여사를 위해 시작한 시골집 단열 작업이 데크를 욕심내게 하고 테이블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버려지려던 나무 조각들을 모아 손녀의 장난감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런 모든 것은 깊은 나락이라고 생각한 순간 더 이상 슬퍼지지 않으려고 힘든 생각은 조금만 하고 즐거운 생각은 많이 한 덕분이다. 그래서 누구에게 라도 자신 있게 하는 이야기는 큰 시련 하나와 즐거움 백개를 맞 바꾸었으니 크게 남는 장사를 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커다란 시련 하나가 나를 나무 할아버지가 되게 하고 좋은 할아버지가 되게 만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천천히 걸어온그 길,뒤돌아 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