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할아버지 Aug 18. 2021

천천히 걸어온그 길,뒤돌아 보니...

고개 하나 넘으니 또 한고개가, 그렇게지나온 내 삶의 단편들

고개를 넘고 또 넘다 보니 머리엔 흰머리가 가득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무 장난감을 만드는 목공 할아버지가 되어있다. 십여 년 전 큰 아이 혼사를 치른 이듬해 생각지도 못하게 희귀병에 걸린 홍여사, 그런 이유로 내려온 시골 생활은 일 순간에 나의 삶 전부를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손녀를 위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주는 나무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쁘게 지나던 서울 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목공에 대하여 문외한이었지만, 영하 이십 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추위가 홍여사를 위해 오래된 농가 주택의 단열 작업을 하도록 만들고 편히 쉴 수 있는 데크와 유리 온실도 만들게 하면서 목공에 대한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찾아와 준 손녀 덕분에 확실한 목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하던 홍 여사와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던 암울했던 시간들 겨우 발걸음을 띄며 상원사를 오를 때만 해도 지금의 이런 시간들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좋은 공기를 찾아 시골 생활을 택한 것도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던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 개의 커다란 슬픔이 백 개의 즐거움을 만들어 주었다.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바뀌고 슬픔도 기쁨으로 녹여내니 십 년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손녀가 우리 곁에 찾아오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 호칭을 좋아하게 되면서 나무 할아버지가 만들어졌다.

좀처럼 호전되지 않던 홍여사의 병세에도 손녀를 위한 나무 장난감 만들기가 많은 위로가 되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 장난감도 함께 쌓여 간다.

버려진 나무 조각이 자동차도 되고 기차도 되는 것을 보면 손녀는 분명 나의 생각의 샘 이자 모든 것의 시작점인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고 덕분에 나무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점점 더 익숙해졌다.

꼭 할아버지와 자겠다는 손녀는 잠자기 전 할아버지와 끝말잇기를 하자 하고 채 열 개의 단어를 잇기도 전에 잠이 든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지만 언제나 힘주어 꼭 안기는 손녀가 있어 행복했다. 

어느 날 손녀에게서 카톡으로 온 문자에는

"할아버지! 지금 내 기분이 안 좋은데 이럴 때 이야기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너무 좋아"

어쩌면 이 한마디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첫 글에 도무지 글머리가 잡히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