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송 부장은 매사에 꼼꼼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10년을 함께 일하며 지켜보았지만 흔한 실수 한번 하지 않는 로봇 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늘 들고 다니는 두툼한 검은색 수첩에는 회의 내용이 꼼꼼히 적혀있어서 한 번도 해야 할 일을 빠뜨리거나 잊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꼼꼼함에 가장 놀랬던 순간은 그의 우산 손잡이에는 매달린 이름표를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가 반듯하게 코팅되어 우산 손잡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우산을 잃어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니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송 부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사무실 이곳저곳을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분명히 들고 나온 핸드폰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야 한 번쯤 겪어본 흔한 일이지만 송 부장에게는 평생 처음 겪어보는 재난 같은 것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며 나라 잃은듯한 표정을 짓는 송 부장. 혹시 이게 앞으로 펼쳐질 불운의 징조는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송 부장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했습니다. 송 부장은 이미 수첩을 펼쳐 들고 핸드폰 분실 시 대처방안을 하나씩 적고 있습니다. 통신사에 분실 신고를 하는 것부터 오늘 지나온 장소들을 하나씩 적으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추리하는 송 부장. 저는 송 부장의 펜을 빼앗아 그의 수첩에 한 문장을 추가해주었습니다.
“혹시 모를 인연에 대비하기”
2014년 2월, 뉴욕에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 매트(Matt)는 평소 자주 가는 단골 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마침 바에서는 단돈 20달러에 와인 한 병을 마실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어서 그는 평소보다 많이 마시며 흠뻑 취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매트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아이폰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급히 자기 아이폰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는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 매트의 아이폰은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1년 후. 소파에 앉아 친구들과 새로 산 아이폰의 사진을 돌려보던 매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찍지도 않은 수십 장의 사진들이 아이폰 앨범에 올라와있는 게 아니겠어요? 사진에는 험상궂은 표정에 삭발을 한 동양인의 셀카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었습니다. 매트는 이 남자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사진을 돌려보던 친구들도 깜짝 놀랐지요. 그 남자의 얼굴은 영화에서 보던 아시아 조직폭력조직의 조직원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짖은 눈썹, 매서운 눈매, 험상궂은 표정.
험상궂은 남자 사진 외에도 이상한 식물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오렌지 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를 배경으로 그 험상궂은 남자는 살기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죠. 더 소름 끼치는 건, 그날 이후 계속해서 그 남자와 오렌지 나무 사진이 매트의 아이폰 앨범에 올라왔습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이며, 왜 이런 사진들이 매트의 아이폰에 올라오는 걸까요? 누군가 매트의 아이폰을 해킹해서 협박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걸까요? 매트가 아시아 폭력조직의 타깃이 된 건 아닐까요?
겁을 먹은 매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폰 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매트의 이야기를 들은 매장의 직원은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아이폰 잃어버리신 적 있나요?"
직원의 설명은 놀라웠습니다. 아마도 매트가 1년 전에 잃어버린 아이폰을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데, 그 아이폰에 클라우드 계정이 아직 연결되어 있어서, 지금 매트가 사용하는 아이폰에 잃어버린 아이폰의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헐, 이럴 수가. 1년 전에 바에서 취해 잃어버린 아이폰을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다니. 게다가 그 아이폰과 지금 아이폰이 연결되어 있다니.
그리고 도난당한 그 아이폰은 아마 중국에 있을 거라고 합니다. 도난당한 아이폰들의 대부분이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팔려나간다고 하네요. 어이없는 설명에 매트는 당황스러웠지만, 점차 자기도 모르게 이 험상궂은 남자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답니다. 무서운 표정이지만 오렌지를 아끼는 듯한 남자의 모습을 보며, 매트는 점차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매트는 이 남자의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했습니다.
"Who is this man and why are his photos showing up in my phone?"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지? 왜 내 아이폰에 이 남자 사진이 계속 올라오는 걸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트위터에 접속한 매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올린 트윗에 수십 개의 답글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매트의 트윗을 본 중국 네티즌들이 답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매트의 트윗은 중국의 트위터인 Weibo에 올라가서 한 시간 만에 만건이 넘게 공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놀란 매트는 Weibo에 계정을 만들고 이 남자와 오렌지 나무 사진에 대해 올렸습니다. 그러자 하루 만에 5만 명의 팔로우어들이 생겨나고 일주일 만에 10만 명까지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매트의 트윗 하나로 매트는 이미 중국에서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오렌지 나무를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주겠다며 매트의 글을 여기저기 실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오렌지 남자를 찾았다는 트윗이 올라온 것입니다! 우연히 매트의 트윗을 보게 된 오렌지 남자의 여동생이 사진 속 오빠의 얼굴을 알아본 것입니다. 오렌지 남자와 매트는 드디어 인터넷 상에서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두 남자는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에 의해 "Bro Orange"라고 불리는 이 남자는 몇 달 전에 지인으로부터 아이폰을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 살고 있는 매트의 아이폰에 올라오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백만의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매트와 오렌지 남자는 매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오렌지 남자가 물었죠.
"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오렌지 남자가 사는 곳은 중국 광둥성 동북부에 위치한 메이저우라는 곳이었습니다. 뉴욕에서 메이저우에 가기 위해서는 뉴욕에서 베이징까지 13시간의 비행을 하고, 다시 베이징에서 산터우라는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한 시간 반을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총 20시간의 여정이지요. 매트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오렌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 먼 여행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중국의 수백만의 네티즌들은 매트와 오렌지 남자가 만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트윗이 두 사람의 만남을 기원했죠.
2015년 3월 18일. 매트는 드디어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험상궂은 얼굴의 오렌지를 사랑하는 남자.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가슴 설레고 긴장되는 여행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 먼 곳에서 혹시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지요? 만약 오렌지 남자와 중국인들이 자신을 반기지 않으면 어떡하죠? 놀러 오라는 말에 떠나긴 했지만 매트는 잔뜩 걱정과 고민을 안은채 중국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15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중국 산터우 공항에 내린 매트는 깜짝 놀랐습니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오자마자 번쩍거리는 플래시와 함께 수천 명의 중국인들이 매트를 보고 환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몰려드는 군중들 사이로 오렌지 남자도 꽃다발을 들고 나와 매트를 환영했습니다. 드디어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친구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네요. 만남의 기쁨도 잠시, 매트는 이미 이 작은 도시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수천 명의 환영인파와 기자들은 할리우드 스타라도 만난 듯 매트를 둘러싸고 취재를 했습니다. 매트와 오렌지 남자는 이들을 간신히 헤치고 준비된 차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호텔까지 가는 길에 매트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오렌지 남자와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물론, 통역이 함께 했다고 하네요. 간신히 도착한 호텔에도 세명의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매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힘든 하루를 보낸 매트. 이렇게 중얼거리며 간신히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WHAT THE FUCK IS MY LIFE???"
(도대체 내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마치 믿을 수 없는 꿈을 꾼듯한 매트.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뜬 매트는 그것이 꿈이 아니란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매트를 태우러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는 매트와 오렌지 남자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오렌지 남자는 매트를 태우고 그 순간부터 믿기지 않을 최고의 여행을 선물해 주었답니다
오렌지 남자는 매트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기가 운영하는 식당에 데려가서 최고 중국음식을 대접하고, 마을의 자랑인 진흙 찜질장에도 데려갔습니다. 오렌지 남자의 환대를 받으며 매트는 점차 이 남자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렌지 남자가 살고 있는 메이저우시 사람들에게 매트의 방문은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매트가 가는 곳은 어디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지역 신문들도 매트의 방문을 대서특필하며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다녔습니다. 이들의 관심을 피할 수 없었던 매트는 기자들이 준비한 기자회견에도 참석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는 큰 플래카드에 "Orange Bro & Matt Press Conference"라고 쓰여 있었고, 백여 명의 기자들이 매트에게 질문을 쏟아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한 중국인들은 매트와 오렌지 남자를 미국과 중국의 우정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7일 동안, 매트는 오렌지 남자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두 남자는 7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함께 하며 우정을 키워나갔다네요. 매트도 오렌지 남자에 대해 더욱 알게 되면서 친구로서의 우정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기자들과 사람들로부터 도망가서 오렌지 남자의 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렌지 남자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무덤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 낚싯배 사업을 했지만 실패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소중한 아들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워졌습니다.
매트가 떠나는 마지막 날, 오렌지 남자는 차마 매트를 혼자 보내지 못하고 베이징까지 따라와서 배웅했습니다. 둘은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고 하네요. 두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은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겠죠?
매트와 오렌지 남자의 열흘간의 만남은 트위터와 Weibo를 통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매트는 여행에서 돌아오곤 난 후, 트윗을 통해 자신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태평양을 넘어 친구가 된 이 특별한 경험에 대해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후 이 이야기는 뉴욕타임스, CNN, 허핑턴포스트 등 주요 미국 매체에도 실리며 전 세계 사람들을 웃음 짓게 했습니다. 그다음 해 4월에는 오렌지 남자가 매트의 초대를 받아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오렌지 남자는 매트와 함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공연도 함께 보고 뉴욕 여행도 함께 하며 그들의 우정을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방송제작사의 러브콜을 받아 워너브라더스의 "엘런쇼"에도 출연했답니다! 2016년에는 워너브라더스 사가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다며 캐스팅에 나섰다고 하네요.
잃어버린 아이폰이 가져온 이 놀라운 이야기.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불운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만들어 준 희망의 이야기였습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우리 송 부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회사 대표전화를 통해 어떤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성분이 송 부장의 핸드폰을 갖고 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출근길에 들렀던 커피숍에서 송 부장이 QR 인증을 하고서는 실수로 계산대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핸드폰이 송 부장에게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