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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y 30. 2022

뒤로 물러나 뛰어 올라본다

하늘을 볼 때 내가 정지해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지구에 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구름이 지나갈 때이다. 구름이 움직이는 걸 보면 그제야 지구가 움직이고 있구나 싶어진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은 내가 살아있는 지구에 살고 있는지를 잊게 한다. 구름만 잔뜩인 회색빛 하늘도 내가 움직이는 지구 위에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 오로지 맑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갈 때,  멈추지 않고 살아 있는 지구에 내가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파랗기만 한 하늘은 나를 나태하게 만든다. 내가 살아있음을 잊게 만든다. 구름만 가득한 흐린 하늘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일어설 엄두를 내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그저 동화에 나오듯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조각 흘러가야 살 맛이 난다. 그런데 인생이란 동화 같지만은 않다. 그러기란 참 힘들다.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만 가진 인생은 없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맑은 하늘에도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기 마련이고, 구름 가득했던 하늘도 결국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로 돌아온다. 지구가 살아있고 움직이는 한 여러 모양의 하늘을 우리에게 보여주듯, 우리가 살아있는 한 여러 모양의 인생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지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 역시 멈추지 않고 인생을 걸어 나간다.




비가 많이 온 후 곳곳에 물 웅덩이가 생겼다. 안일하게 원래대로 걸아간다면 신과 발이 흠뻑 젖을 것이다. 웅덩이를 피해 폴짝폴짝 뛰어본다. 웬만한 크기의 웅덩이는 그 자리에서 뛰어넘기만 하면 되지만 크기가 제법 커지면 그 자리에서 뛰어선 웅덩이를 피할 수 없다. 그땐 뒤로 물러나 도움닫기를 해 멀리 뛰어본다. 더 많이 물러날수록 더 멀리 날아간다. 도움닫기를 하고 내 몸이 공중을 날고 있음을 느낄 때, 내가 뛰어 온 목적이 단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함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난 날고 싶었다.


예기치 못한 폭우에 내 인생에도 웅덩이가 생겼다면 폴짝폴짝 뛰기도 해야 하고, 내가 감당할 만큼의 웅덩이가 아니라면 뒤로 물러나 달려와 날아야 한다. 두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는 단 몇 초의 날아오른 경험은 내가 웅덩이를 만나 뛰어 올랐을 때 밖에는 하지 못한다. 웅덩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웅덩이 물이 줄어들기만을 바라고 있으면 날아오르는 짜릿한 경험을 놓치게 된다. 어쩔 수 없다며 웅덩이를 저벅저벅 걸어간다면 내 발과 몸이 젖고 진흙이 튈 것이다. 갑작스레 생긴 웅덩이에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 달려본다면 날아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일이 어렵다. 이제까지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뒤로 돌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겸손이 필요하다. 그런 용기와 겸손을 갖춘 자만이 비상을 경험하게 된다. 뒤로 물러나야만 날아오를 수 있다.


내 맑은 하늘에 구름이 흘러 들어왔다고 놀랄 필요 없다. 구름은 흘러갈 것이다. 또 다른 구름이 다시 내게 올 것을 알지만, 그 마저도 흘러갈 것이다. 구름 때문에 우린 우리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인생이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야 지구가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숲을 걷다 올려다 본 하늘에 구름이 흘러간다>




<사진: 숲을 걷다 마주한 물 웅덩이, 출처:나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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