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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Jun 02. 2022

고양이에게 파란 이빨을 임플란트 하는 치과는 없나요?

너의 생각을 블루투스로 공유하고 싶어

우리 집 고양이는 '야옹'하지도 않고, '애옹'하지도 않고, '엄마'라고 한다. 울음소리가 매번 '엄마~'하는 것 같아 고양이가 울면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내 귀에만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분명 '엄마~'라고 한다. '엄마~~'라는 소린 우리 집에 와서 배운 것 같다. 날 부르는 '엄마' 소리가 우리 집엔 가득하니까...   


내가 고양이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눈빛과 우는 소리, 날 휘감는 꼬리의 움직임이다. 눈빛과 울음소리, 꼬리가 언어로 대체되었다.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의 언어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듯 천천히 고양이의 언어를 익히고 있다.


고양이는 어쩌면 이렇게나 다양한 눈빛을 가졌을까? 시각을 잃은 사람은 청각과 촉각, 다른 감각들이 발달하는 것처럼 언어가 없는 고양이는 눈빛이 발달해 있는 것 같다.  


둘만 남겨진 어느 하루, 고양이 앞에서 춤도 춰보고, 큰 소리로 노래도 하는 날이면 고양이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의 자유를 펼쳐 볼 수 있는 때 고양이가 나의 관객이 되어주니 고맙다. 하지만 눈빛이 말한다.

"너 지금 뭐하니???"

초코파이도 아닌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눈빛이다. 사람 같은 눈빛이 신기할 따름이다.


배가 고파 뭔가 먹고 싶으면 애처로운 눈빛을 감아쥔다. 이 세상의 모든 애절함은 다 모아 눈에 넣은 것 같다.

"엄마, 나 정말 배고픈데 습식 쫌만 더 먹으면 안 될까?" 이땐 눈빛 발사 말고도 꼬리로 내 다리를 휘감으며 몸을 문지른다. 이런 눈빛을 보내는데 먹이를 안 줄 수 없다. 배가 통통하게 차올라 걱정이기도 한데, 눈빛을 보고 외면하기 어렵다.

 

양치를 하거나 진흙 묻히고 들어온 발을 닦아 줄 땐, 잔뜩 화가 나 마뜩잖은 눈빛을 보낸다. 배신당한 이의 눈빛이라고나 할까?

"저리 썩 꺼지거라."

눈빛으로 말을 한다. 무섭다. 그런 눈빛은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라도 무섭다. 눈빛에 이어 꼬리까지 바닥에 탁탁 친다. 심기가 불편하실 때마다 화풀이라도 하듯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친다. 하지만 삐짐도 잠시다. 다시 와서 부빈다.


녹아내리는 눈빛을 던져줄 때도 있다. 턱을 만져주거나 목덜미를 긁어줄 때, 이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몸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듯한 게슴츠레한 눈빛을 던진다. 그렁그렁하는 푸르럭 푸르럭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나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는 눈빛을 흘린다. 동공이 풀어진 눈빛이다.


내가 말한 적도 없고, 낌새도 주지 않았는데, 진드기 약을 발라야 할 때면 눈치가 삼백 단이라 바로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어버리고는 새초롬한 눈빛을 보낸다.

"흥, 내가 다 알고 있으니, 약 뿌릴 생각은 하덜 말어."

경계 모드에 돌입해 레이저를 발사한다. 이럴 땐 정말 힘들다. 약 안 먹으려는 아이를 붙잡고 어르고 달래며 약 먹이는 부모의 심정이다.


하지만 어떨 땐 정말 내가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먹이를 줘도 내 다리를 부비기만 하고, 밖에 나가게 해 줘도 다시 돌아와 부비고, 뭘 원하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땐 블루투스라도 서로 달고 고양이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데 답답하기만 한다.


그 눈빛은 사랑인 걸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지만 그저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주는 그런 눈빛인 걸까? 고양이와 함께 파란 이를 하나씩 임플란트라도 해서 고양이의 마음을 읽고 싶다. 그런 치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잔디를 즐기는 고양이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날 바라보는 고양이



비는 이제 물러가고 햇살이 뒤뜰에 내려앉았다. 해바라기 하려고 고양이가 뒤뜰 잔디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저런 고양이의 눈빛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저 잔디의 폭신함을 즐기고 있는 걸까?


잔디에 한참을 앉아 있던 녀석이 난데없이 와서는 부비기 시작한다. 턱을 긁어주니 벌러덩 눕는다. 부드러운 털이 가득한 배를 만져준다. 내 마음까지 햇살 담아 보드라워지는 것 같다.


블루투스가 없어도 이건 알 수 있다.


"엄마, 나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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