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음치다.
다른 사람들이 '도'라고 노래할 때, 난 음을 잡지 못하고 중저음 어디엔가 아무도 인지할 수 없을 소리를 낸다. 말은 '도'라고 하지만 음은 도를 짚어내지 못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왜 그렇게 음을 못 잡냐고 한소리 씩 할 때마다 난 움츠러든다.
난 분명 '도'라고 생각하고 음을 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와는 음이 좀 다르다.
이쯤에서 내가 노래를 못 부르는 음치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런 음치는 아니다.
노래는 음정을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다.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배운 탓인지 어느 정도의 절대음감도 있다.
다만, 인생이란 노래에서 만큼은 음정을 제대로 못 잡는 '인생 음치'다.
인생이란 노래는 내가 음을 잡기에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모두가 '도'라고 하는 음의 높이는 내게 '도'로 들리지 않는다. 어디 샵이나 플랫이 백 개쯤은 붙어야 내가 생각하는 '도'가 될 것만 같아서 난 늘 악보에도 없는 샵과 플랫이 복잡하게 백 개쯤 붙은 '도' 소리를 내다가 면박을 듣곤 한다.
음을 잡는데도 서툰데, 박자도 못 맞추는 박치다.
분명 한 박자 쉬고 들어가야 한다고 악보에 적혀 있어도 난 그 한 박자라는 길이에 감을 못 잡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한 박자란 내가 생각하는 한 박자보다 언제나 길거나 짧았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음치란 것을 인지한 것은 아니다. 음치들이 그렇든 나는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 있는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내 음이 살짝 이상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키득키득 웃거나, 귀를 막았는데, 그것이 나 때문인지 몰랐었다.
그 이후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또 웃으면 어쩌나, 귀를 막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노래를 불러도 부르는 게 아니었다. 특히 합창을 해야 할 때면 내 주위에서 같이 노래하는 이들은 씩씩 거리며 화를 내기까지 했다. 합창을 할 때 음치 소리는 더 도드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생이란 노래를 부를 때 음을 잘 잡고 박자를 잘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무지 부러웠다. 적재적소에 알맞은 행동과 말을 하고, 자제할 줄 알고,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이면 하지 않는, 누구의 귀에도 기분 좋은 소리로 들리는 그들의 노래는 내가 감히 부를 수 없는 노래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래가 늘 장조인 것 같진 않다. 그들의 노래에는 단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듣기에 좋았다. 즐겁게 아름다운 노래도 있었고, 슬프게 아름다운 노래도 있었다. 장조이던, 단조이던, 고음의 소리를 현란하고 매끄럽게 질러내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같은 음치도 음치 탈출을 할 수 있을까?
나도 아름다운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음치는 영어로 'tone deafness'다. 소리를 내는 데 문제가 있다기보다, 기본적으로 음을 듣는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음치를 벗어나려면 일단 들어야 했다. 내가 음을 어떻게 내고 있는지 들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은 음을 어떻게 내는지도 잘 들어야 했다.
내 소리든 남의 소리든 잘 듣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래서 난 '도' 음부터 시작해서 음을 하나하나 튜닝해 보기로 했다.
<부끄럽지만, 그림: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