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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Dec 09. 2022

호주는 망고가 한창이고, 내 마음도 망고가 한창입니다.

한국에선 뜨거운 여름과 어울리는 과일이 분명 수박일 테지만, 호주에선 후끈한 공기가 느껴지면 수박과 함께 망고를 찾게 된다. 호주에 산지 이제 15년이 넘었는데, 내가 온전히 망고를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망고와 친해지는데 15년의 세월이 걸렸다기보다, 망고를 싫어했던 내가 망고를 다시 좋아하기까지 15년이 걸린 셈이다.


내가 처음으로 망고를 맛 본 곳은 사이판이었다. 처음 사이판에 놀러 갔을 때 먹어본 망고의 맛은, 뭐랄까...

트로피칼 향이 짙게 베인, 밀크향이 나는 새콤 달콤의 비율을 완벽히 갖춘 맛이었다. 신기했다. 겉은 파랗기만 한데, 안은 짙은 노란색이었다. 하지만 망고의 새콤달콤한 좋았던 첫인상이 오래 가진 않았다.


일 년 내내 여름인 사이판에 살게 되었을 때 밤낮없이 지붕으로 떨어지는 망고 소리는 지겨우리만큼 견딜 수 없는 소음이었다. 망고가 떨어지면 내 마음도 철컹 내려앉았다. 예민한 나는 그 소리가 싫었고, 늘 긴장하고 살았던 그땐 망고 떨어지는 소리마저 고통스러웠었다.


처음 맛보았을 때 날 사로잡았던 망고는 내가 사이판에 살게 되면서 쳐다도 보기 싫은 과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던 집은 커다란 망고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망고향이 온 집을 늘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망고향이 가득 채워지는 것은 또다시 망고 떨어지는 소리를 견뎌야만 하는 밤을 알려주었고, 그래서 난 그 망고향마저도 싫어하게 되었다. 밤새 우박처럼 떨어진 망고는 흙바닥에 으깨져 떨어져 있었고, 뭉개진 망고가 썩어가며 나는 냄새는 역겨웠다. 거기에 악착같이 달라붙은 벌레를 보면 마치 뭉개진 내 마음을 벌레가 갉아먹는 걸 보는 것 같아 힘들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을 하며 망고는 더더욱 쳐다보기 싫은 과일이 되어버렸다. 밀키 한 망고의 맛은 견디기 힘든 속이 거북한 맛이 되어버렸다. 나를 뺀 온 가족은 망고가 너무 맛있다며 한 양재기를 쌓아 놓고 먹었지만, 나는 옆에서 먹는 것만 보아도 속이 거북했다. 억지로 참고 있는데, 자꾸 먹어보라 권하는 것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도저히 먹을 수 없겠는데, 어른이 권하시니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망고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일이 되어버렸다. 입덧은 끝났지만, 난 다시는 망고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망고가 더 이상 지붕으로 떨어지지 않는 호주로 왔지만, 망고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여름만 되면 매대에 진열된 망고 박스들에 곁눈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망고를 싫어한다고 나머지 가족들의 망고 먹을 권리를 박탈할 순 없었다. 남편은 사이판에서 자란 만큼 망고 러버였고, 아이들도 망고를 좋아했다. 난 망고향도 맡기 싫었지만, 여름만 되면 망고를 사다 날라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맛있게 망고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나도 이제 다시 망고를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다시 한 조각 입에 넣어보았다. 아직 나에게 망고의 그 밀키 한 새콤달콤은 사이판에서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하며 난 여러 번 포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맛나게 망고를 먹는 여름만 되면, 나만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무언가 외롭고도 허전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렇게 15년이 지나, 올해도 어김없이 망고 철이 되었다. 매대에 진열된 박스에 소복소복 담긴 노란 망고들이 자길 데려가라며 손짓을 한다. 같이 장을 보러 간 둘째 녀석은 망고를 사자고 졸라댄다. 그렇게 망고 두 박스를 사 왔다.

 

이젠 내가 망고를 잘라주지 않아도 될 만큼 아들이 컸다. 열세 살 아들은 자기가 손수 망고를 잘라 내 입에 넣어준다. 신기하게도 망고가 맛있기만 하다. 망고만 먹으면 다시 생각났던, 사이판에서 느꼈던 한증막 같은 습한 공기도, 며느리로서 힘들었던 숱한 기억들도, 입덧하며 겪었던 힘들었던 몸과 마음도, 밤잠을 설치게 했던 망고 소리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이건 호주의 망고다. 호주의 망고를 온전히 느끼게 되었다. 새콤달콤 밀키 한 망고의 맛이 호주에 와서 내가 느낀 자유와 아이들을 키우며 즐거웠던, 남편과 함께한 시간들을 불러일으킨다.


냉장고 과일 칸엔 이제 망고가 가득하다. 망고 두 박스를 사 오며 차에 남은 망고향이 향긋하기만 하다. 이젠 가족들과 함께 망고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망고 덕에 다시 느끼게 되었다.


망고에 오랫동안 묵혀둔 나의 슬프고 아픈 감정들이 이젠 지나가려나보다.

15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서야 난 망고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다.

모든 아픔과 슬픔은 다시 즐거움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걸, 망고가 내게 가르쳐 준 셈이다.


호주는 망고가 한창이고, 내 마음도 망고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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