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향기 Oct 14. 2022

캠핑의 맛

호주 캠핑

주말도 아닌데, 캠핑을 다녀왔다. 주말을 피한 이유는 캠핑에서 좀 더 공간과 여유를 즐기고 싶어서다. 사람들로 가득한 캠핑장은 내가 자연에 묻혀 있음을 때론 망각하게 하기에,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평일을 택해 휴가를 내었다.


TV 프로 '삼시세끼'가 한동안 인기였다. 빡빡한 삶에서 그들처럼 벗어나고팠던 현대인들의 간절한 욕망은 그들의 삼시 세 끼를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주었다. 사실 우린 그 삼시 세 끼를 오래전부터 찍고 있었다. 캠핑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기에 틈만 나면 캠핑을 갔다. 캠핑을 가서 하는 주된 일은 그야말로 삼시 세 끼 챙기는 일과 불멍과 걷기다. 현대인들의 원시체험. 그것이 캠핑이다.


캠핑장에선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캠핑장이라 전화도 인터넷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연을 즐기는 일과 멍을 때리는 일 외에는 신경 쓰지 말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하다.


호주의 캠핑장은 그야말로 야생이다. 한국의 캠핑장처럼 시설이 좋은 곳보다는 원시에 가까운 생활을 즐겨야 하는 곳이 더 많다. 하지만 이번엔 이제껏 야생으로 즐겼던 캠핑장이 레노베이션을 해서, 좀 더 쾌적한 캠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샤워 시설도 생겼고, 공용 키친도 생겼다. 좀 더 편한 캠핑을 즐기게 되었다고 생각해 좋았는데, 막상 가보니 편한 그 무언가가 날 불편하게 한다. 역시 캠핑은 고생이 맛인데, 좀 덜 고생하니 캠핑 맛이 안 난다.


한국 사람들은 먹는 것에 목숨 거는 민족이라, 캠핑장에서도 화려한 삼시 세 끼를 선보인다. 우리가 공용 키친에서 요리를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슨 요리냐고 기웃거린다. 그래 봐야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일 뿐인데, 신기한 듯 바라보며 맛있겠다고 입맛을 다신다. 우린 이렇게 거나한 한 끼를 차려 먹지만, 호주 사람들은 끽해야 빵조각을 뜯을 뿐이다.


첨엔 캠핑 와서도 근사한 요리를 선보이며 어깨가 으쓱했다. 하지만, 이젠 빵조각만 뜯는 그들이 이해가 된다. 아니 부럽다. 그들은 이곳에서만큼은 오롯이 자연을 즐기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간편한 준비로 간편하게 먹고, 홀가분하게 움직이는 그들이 부럽다.


뭘 그리 잘 먹어보려고 나는 그렇게도 바리바리 짊어지고 갔던 것일까?

내 삶도 불필요한 짐을 너무 많이 지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출한 삶의 기쁨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나란히 앉아 노을 멍을 즐긴다. 이 시간만큼은 키친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도 없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없고, 다들 가만히 와인잔만 들고서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본다.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이라도 치르듯, 서로 아무 말 없이 노을을 가슴에 담는다.


남편은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노래를 기타로 튕기고 있고, 옆 텐트 사람은 노을 지켜보다 조그만 캠핑장을 채운 기타 소리가 좋다며 고맙다 한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노을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신이 나를 그렇게 달래는 것 같다.


호주 O’reilly 국립공원 캠핑장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캠핑의 꽃은 불멍이다. 불을 피우자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든다. 우린 불 곁에 은박지에 싼 고구마를 던져두었다. 역시 한국인은 틈새를 노려 뭐라도 하는 민족이다. 호주 사람들은 그런 우릴 보며 신기해한다. 은근한 숯에 잘 익은 고구마를 나누어 먹었다. 숯향 머금은 고구마를 먹으며 불멍을 하면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삶의 희열은 이리도 작은 것에서 오는데, 난 무엇을 쫓아 그리도 바쁘게 움직였던 것인지...

고구마가 달다.




아침이 되자 캠핑장은 순식간에 오락실이 되었다. 갖가지 이름 모를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저마다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오락실에서나 들릴 법한 삐용삐용 소리가 요란하다. 새들이 알리는 아침 소리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엔 여덟 시가 되어도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새벽에 일어나 이미 트래킹을 다녀왔다. 집에서만큼은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지만 이상하게 캠핑만 오면 요란한 새소리도 자장가로 들려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난다.


캠핑장 바로 위에 있는 새들이 모여 산다는 커다란 나무에 갔더니, 새들이 단풍처럼 내려앉아 모이를 쪼고 있다. 솔로몬은 들의 백합만큼도 못 차려입었다는데, 아무리 예쁜 옷을 입어도 저 새들만큼 차려입을 수 있을까 싶다. 예쁜 새들이 단풍이 내려앉듯, 머리 위에 와 앉기도 하고, 팔 위에 내려와 앉는다. 사람이 낯설지 않은지, 아무 경계심 없다. 고운 소리를 내고, 멋지게 차려입은 그들이 나와 친구 먹어주니 고맙기만 하다.

<O'reilly 국립공원>




캠핑은 자연과 친구 먹을 시간도 주고, 나 자신과 친구 먹을 시간도 준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나를 희열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속삭여 준다.

그 모든 속삭임과 친구 먹은 이들을 담아 산을 내려간다.




<10년전 왔던 O’reilly 캠핑장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 아이들의 장래희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